what is the afraid thing on you?
비가 왔고 바람이 많이 불었고 숙소 앞에 펼쳐진 잿빛 바다의 파도는 대차게 넘실거렸다. 그런 바다를 보면서 자전거 타기, 놀이기구 타기, 어둠 속에 혼자 있기 등.. 내가 저 파도만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줄줄이 늘어놓자 그가 내게 물었다. 그럼 니가 두려워하지 않는 건 뭐냐고.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어떤 건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를 묻고 답하는 건 쉬웠다. 세상엔 무서운 것, 어려운 것, 처음 보는 것, 많이 봤지만 여전히 모르겠는 것, 전혀 무섭지 않아도 무서운 척해야 하는 것 천지니까. 그래서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고 또 했던 질문이었고, 이내 대답했던 질문이었으며 이내 대답을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역으로 뒤집고 나니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것.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혼자 여행하는 것. 내가 두렵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 그렇다고 다른 모든 일들이 두려운 것은 아니나 이상하게도 저 한 가지 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정말 저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두렵지 않은 일의 반열에 올릴 만큼 다른 일들이 대단하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남섬의 서쪽과 남쪽, 동쪽의 몇 개 도시를 돌 계획을 세우고 출발한 여행 첫째 날. 호주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러 뉴질랜드에 온 니스는 그날 아침 비가 퍼붓기 전 숙소에 도착하기 위해 10km를 허벅지 터지도록 달려온 날이었다. 백패커는 한산했고, 2층의 라운지는 따뜻했다. 우리들은 조용히, 천천히 움직이며 게으름을 즐겼고 창밖으로는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미친년 널뛰듯 바쁘게 팔락거렸다. 파도는 여전히 해변가 곁에 있는 오피스를 곧 집어 삼킬 것처럼 달려왔다가 물러나길 반복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뒀다고 그게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는데, 문 밖을 나서면 두려운 날씨가 벽과 창과 문으로 사방이 막힌 내부에서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바깥 날씨가 내부를 더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들어 주는 듯도 했다. 그러고 보면 두려움은 비바람 몰아치는 날 창밖의 나와 창 안의 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 끗 차이랄까.
대답을 해야 했다. 그가 물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지금처럼 혼자 여행하는 것. 그것 밖에는 생각이 안 나.
넌? 넌 뭐가 두렵고 두렵지 않니?
오래 지난 일도 아닌데 그가 두렵지 않다고 말했던 것들이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약간 생각하더니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처럼 누군가 나에게 두려운 게 뭔지 물어보는 순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꽤 일반적인 생각인데도 문장이 힘 있게 다가왔다. 공감됐으니까.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이십 대의 나는 자신 없는 모습, 조금 추상적이지만 우리가 약한 모습이라 부르는 감정, 행동들을 겉으로 드러내는 게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해 보이는 것이 어쩌면 진짜 강한 것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두려운 것이 있다고 해서 약한 사람, 의존적인 사람으로, 두려운 것이 없다고 해서 강한 사람, 독립적인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이 오류임을 알지 못했다. 물론 두려운 것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건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지도 몰라.
특히 니가 사랑하는 사람, 가족, 오랜 친구들에게만큼은 때로 너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아주 가끔씩만.
그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공감했는지는 모르겠다. 틀에 박힌 대답이었으나 진심이었다.
각자의 저녁을 가지고 와 같은 식탁에서 먹으며 그와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특히 외국인과 장시간 대화를 나누는 일을 두려워했다. 당장 이제 이런 일 따위 두렵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그 역시 낯선 사람이자 또 외국인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바지 무릎이 가로로 10센티는 찢어진 바지를 기우느라 옷핀을 좀 고정해달라고, 바늘귀에서 실 빼는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는 그런 낯선 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