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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Sep 26. 2019

눈 코 입 귀 고작 네 가지만으로

Only the things, but still different

노랑색 선글라스가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은 까만 반곱슬 머리의 스물셋 조조가 내게 물었다. 낡은 책들이 즐비한 북 페어에서 인물사진집을 발견하고 누군가가 남긴 누군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각기 다른 얼굴, 각기 다른 개성, 다양한 사람들’ 같은 당연한 말을 늘 이제 막 깨달은 것처럼 새삼스럽게 해왔었는데, 그녀의 물음은 확실히 신선했다. 왜냐하면 이 물음의 방점은 참으로 다른 타인들의 생김새가 아니라 얼굴을 이루는 구성. 눈-코-입-귀라는 재료의 한계에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완성되어 있다는 현상이 그녀의 문장으로부터 새롭게 다가왔다.     


자음 19개, 모음 21개는 40만 개가 넘는 단어를 짓고, 7개의 음계는 끝없이 멜로디를 잇고, 컴퓨터는 숫자 두 개로 도무지 알 수도 없는 체계를 엮고, 타인과 나는 각자 가진 한 개의 입으로 서로를 놀라게 하고, 1년은 365개의 날 수를 반복하는데도 내일과 모레와 글피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처음이다. 유한한 것에서 무한한 것이 나올 때 우리는 감탄한다. 그리고 곧 익숙해진다.     


생각해봤다. 나에게서 나왔던 어떤 것들에 대해. 나라는 유한한 개체가 만들어냈던 혹은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뭘까. 여전히 새롭다고 느끼는 것, 혹은 정말 새로운 것, 오래 가지고 있어서 더는 대견스럽지 않은 것들이 뭘까. 손톱이 자라거나 내 날숨에서 나온 소량의 기체가 끼치는 영향 같은 것을 제외하고.     


예전의 나는 꽤 카운슬링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소리를 썩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재주를 가졌던 것이었는데, 그때는 사려 깊어 보이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멋진 줄 알았다. 더는 어줍지 않은 참견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상대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를 리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험치를 떠나 내가 누군가보다 무언가를 더 세심하게 깨닫고 있다는 착각, 그 자체가 부끄러워졌달까.      




나는 뭘 만들어낼까.      


내가 만들어낸 것으로 나라는 사람의 가치의 고저가 매겨지는 걸까.     


유한한 능력을 가진 나로 무한한 무언가를 만들려 해서 괴로움을 느꼈지 싶다. 꼭 보이는 무언가를, 이왕이면 특별한 것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에 조바심을 냈던 거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생김새를 당연하게 인정하는 것처럼 능력의 다름을 당연하게 인정하고, 거기에 더는 단서가 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해본다. 우리가 가진 각기 다른 눈 코 입 귀로 각기 다른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끔 신통하다는 듯 깨닫게 되는 것처럼, 비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각자의 가치를 서로 깨달아주면 좋겠다고.      


이런 눈, 코, 입, 귀로 만들어진 내 얼굴로, 이 정도의 키와 팔 길이, 지금까지 듣고, 보고, 읽어 온 것으로 지어진 사고로, 간혹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고 미지근하기도 한 심성으로.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야 라고 여겨지는 중의 한 사람으로, 이만큼만 자리를 차지하면서 비슷한 듯 다르게 살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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