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는 싸늘했다.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하늘은 짙푸른 먹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뿌연 안개가 들판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었다. 델스존은 두터운 외투를 여미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밟히는 이슬 젖은 풀잎이 그의 부츠 밑에서 간헐적으로 바스락거렸다. 정적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정적은 그에게 평온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는 목이 바짝 말라 혀끝으로 입술을 적셨다. 그의 심장은 오래된 낡은 시계처럼 불규칙하게 뛰었고, 손끝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땀으로 축축해졌다.
그가 가고 있는 이 길은 한때는 평온하고 낭만적인 산책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은 단순한 흙길이 아니었다. 그것은 심판대였고, 판결이 내려지는 곳이었다. 창백한 얼굴로 그의 운명을 맡기러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스칼렛이 모습을 드러내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의 삶이, 그의 존재가, 그의 정신이 결정될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녀가 나올까? 아니면 나오지 않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곧 더 깊고 음습한 다른 질문으로 바뀌었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예의로 던진 한 마디였을까? 나는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심과 불안이 델스존의 가슴속에서 검은 물결처럼 차올랐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길은 점점 더 길어지는 듯했다. 두 발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는 조금이라도 몸을 가볍게 하고 싶어 외투의 단추를 하나 풀었지만, 그가 느끼는 압박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층 더 짙어졌다.
포도밭이 가까워지자, 델스존은 코끝으로 스멀스멀 퍼지는 그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축축한 흙 내음과 새벽녘의 신선한 공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 향기는 그에게 안정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는 이 포도밭 주변을 수없이 서성였고, 이곳의 공기와 풍경을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포도나무 덩굴이 길 양옆으로 뻗어 있었다. 포도나무의 마른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마치 죽은 손가락처럼 꿈틀거렸고, 희미한 달빛이 가지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기괴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그림자들은 델스존의 걸음을 따라붙으며 그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는 시선을 땅으로 내리깔았지만, 그곳에도 길게 뻗은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손처럼 길게 뻗어 그의 발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다시 스칼렛의 문장을 떠올렸다. "정말 사실인가요?"
그녀가 정말 그 말의 의미를 궁금해했던 걸까, 아니면 그를 시험해 본 것이었을까?
그가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녀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모든 것들은 델스존의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그를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정자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곳은 마치 안갯속에 잠긴 유령처럼 보였다. 델스존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정자를 주시했다. 어둠과 안개로 인해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 그녀가 있을까? 아니면 아무도 없을까? 그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시험받는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는 걸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듯이 다리를 내달리듯 걸어갔다.
그는 마침내 정자 앞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순간, 델스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바보처럼 멍하니 그곳에 서서 정자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이곳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안이 검은 파도의 밀물처럼 현실로 치닿고 있었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 그녀가 너무 일찍 왔다가 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아니면 애초에 올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그의 숨소리가 약간 거칠어졌다. "나는… 나는 무엇을 기대한 거지?"
그녀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걸까? 아니, 그보다는 그녀가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정자의 난간에 힘없이 기대어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스칼렛…" 그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처럼 그녀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곳에 남은 것은 그 자신뿐이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그녀는 여기에 있었고, 그와 함께 걸었으며,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는 여기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의 가슴속에서 커다란 공허함이 차올랐다. 이 순간, 그는 확신했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평정이라고 해야 할 인내심을 지금껏 간신히 붙잡고 있던 마지막 실타래가 서서히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땀으로 축축해진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려 했지만, 아니 납득시키려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오지 않는다.
그날, 정자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델스존의 마음속은 점점 더 무너져갔다. "왜… 그녀는 오지 않는 거지?"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광란의 발작처럼 돌아다녔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이상해졌고, 그의 뇌리엔 끊임없이 ‘왜 그녀는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의 온몸은 차가운 땀으로 젖어 있었으며,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고,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복하며 정자의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가슴속에서 울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스칼렛, 왜 오지 않았나. 편지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