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스존은 스칼렛의 답장을 받아 든 순간, 그의 가슴은 폭발할 듯 뛰기 시작했다. 그 작은 종이에 적힌 문장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는 그 문장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포도원 담장 옆 정자에서 매일 저를 기다렸다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요. 다음번의 산책에서 꼭 뵙고 싶어요." 그녀의 답장 속, 그 문장이 그의 운명 어떤 의미일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철저하게 점검하겠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했다. 그 소중한 작은 종이를 얼마나 쥐어댔는지 땀에 젖어 글자는 얼룩덜룩 번지고 종이는 해졌다.
"정말 사실인가요…" 이 문장을 반복하며 자꾸만 되뇌었다. ‘정말 사실인가요’—그녀의 질문을 델스존은 간단히 해석할 수 없었다. 스칼렛의 목소리가 그의 뇌리에 조금씩 크게 맴돌며 점점 괴로움을 더했다. 그녀는 사실, 나를 시험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했던 고백을 비웃으려는 것인가? '기다렸다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요?' 이 질문 속에는 그녀에게 전한 그 고백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지나치게 집착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꼭 뵙고 싶어요…"—그 문장은 그에게 더 큰 불안을 안겨주었다. 왜 꼭 만나야만 하는 걸까? 이런 적극성은 오히려 그녀가 그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 거 아니냐, 아니면 단순히 예의상으로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오히려 자신이 완전히 소유한 남자에 대한 묘한 조롱이 담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델스존의 심장은 점점 더 조여갔다. 자신이 너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그가 바라는 것을 넘어서 진지하게 대답했을까? 아니, 아니겠지. 그저, 그런 말로 피하고 있을 뿐. 그녀의 마음에는 자신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델스존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그는 그 어떤 것에 쫓기듯, 집안의 풍경을 한참 바라봤다. 침대는 누렇게 변색된 커버에 덮여 있었고, 창틀은 먼지로 가득했고 죽은 벌레들이 그곳에 묻혀 있었다. 창 옆쪽으로 오래된 적갈색 추상문양이 새겨진 벽지가 있었는데 그곳엔 자주 앉아 있던 구석진 자리, 그가 미칠 듯이 고민하던 작은 검은색 원목의자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서 그의 신분과 처지가 바뀌지 않는 한, 그는 스칼렛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에게 나 같은 사람이 있을 자리가 있을까?' 델스존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느끼는 열등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옷차림, 신분, 지위... 모든 것이 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얽혀 그는 스스로를 습관처럼 비하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꼴을 하고 그녀 앞에 나가겠다는 말인가. 나같은 가난뱅이가…" 델스존은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옷차림이 그녀에게 어떻게 보일까? 내가 아무리 고상한 척 해도, 그저 한낱 무명의 음악가에 불과할 텐데… 아니, 아니야. 그건 아니다. 내 자신을 믿어야 해. 내 재능을." 그는 스스로를 타이르려 애썼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부족하고, 부유한 귀족들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그녀와 함께 걸어도, 내 옷차림과 신분은 언제나 그들보다 못한 것 아니겠는가?" 그의 생각은 폭발할 듯 이어졌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방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같은 경쟁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화려한 외모와 성격, 그들은 언제나 자신보다 뛰어날 것이다. "그들은 나보다 더 부유하고, 그녀를 끌어들일 능력이 있다… 하나같이 한심하게 처먹기만 하는 우둔한 부류이나 그들에겐 힘이 있어 그녀가 만약 그들의 하찮음을 꺠닫지 못한다면. 나의 재능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나를 믿고 있는 걸까?"
점점 더 그의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아니야. 나는 너무 부족해. 내 신분, 내 옷차림, 모든 것이…" 그는 손끝으로 가슴을 찔렀다. "이건 고백이 아니다. 이건 그녀를 더럽히는 것이다. 나는 이 자격이 없다."
그는 급기야 자기를 억제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몸을 떨며 울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몰려오며,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 같은 자가… 이토록 기다려야 한다니…" 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종이에 자신이 쓴 편지를 보고, 그 모든 말들이 거짓처럼 여겨졌다. 그가 그녀에게 쓴 편지들은 전부 자신을 낮추고, 고백할 가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이젠 그녀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이미 끝났다." 고백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끊임없이 그의 뇌리를 맴돌았다. 결국 그는 자신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기다릴 거야."
그는 거의 미쳐가는 상태에서, 마침내 결정했다. 옷을 갈아입고, 고요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그는 대체로 침묵 속에 걸음을 옮기며, 스칼렛이 기다릴 그 장소로 향했다. 하루 종일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리며,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