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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뫼 Oct 07. 2019

음악을 흘려 당신을 봅니다

01. 내가 사랑은 아니어서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아침이네요."

 글을 써보고자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은 것은 순전히 이 문장 때문이다.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이곳, '브런치'를 소개받았지만 좀처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은 단지 이제껏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커피 한 잔을 좋아하며 그것과 맞이하는 아침을 사랑하고, 관심이 깃든 인사를 좋아하는 필자가 이 문장을 마주했던 시간이 커피를 마시던 '익숙한' 아침이었을 때, 비로소 '글 쓰기'로부터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음악을 만들고 있다. 흔히 작곡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그 일을 한다. 기억이란 것이 있을 때부터 피아노와 함께 있었으며 예술고등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작곡을 배웠다. 대학교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으며, 군악대에서 작곡・편곡병으로 근무했다. 약 13년을 오롯이 작곡을 위한 생生인 것이다. 정작 사람들 앞에 작곡가로 소개된 것은 불과 1년 반 전이지만.


 '작곡가', 긴 시간을 꿈꿔온 것이 개인의 수식으로 자리 잡던 순간, 기쁨을 넘어선 생각지도 못한 중압감에 놀랐다. 그것은 직업에 걸맞은 자격의 유무를 논한다거나 앞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마치 "당신은 이것이니 마땅히 이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고정된 삶의 모습, 그 모습에 대한 싫증과 죽은 이후 돌이켜 음악뿐인 삶을 후회할 것만 같은 본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감이었다. 




"작곡가님, 커피 한 잔에 음악 쓰기 좋은 아침이네요."

 몇 글자만 바꾸었을 뿐인데 아니나 다를까 그사이 피곤함이 몰려온다. 커피 한 잔과 음악을 쓰는 '익숙한' 아침이 매일인 작곡가에게 좋은 아침이란 없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 뜻하지 않게, 익숙하지 않은 아침을 보내고선, 음악만 쓰기에는 이 아침이 너무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좋은 아침이었다.


 여전히 음악을 만들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음악만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다르게 맞이 하는 아침은 안개가 걷히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론 햇빛을 눈앞에까지 보내 깨우기도 하며, 새가 언제, 또 어떻게 지저귀는지를 알게 하고, 나무를 통해 바람의 소리를 듣게 하며, 생각보다 부산한 이웃집 사람들의 소리로 그 움직임을 상상케 한다. 작곡가에게 익숙했던 아침과 그렇지 않은 아침이 반복되어 그 경계가 허물어질 때 즈음, 새로이 만드는 작품들 속엔 음악을 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된 일련의 것들이 돌아와 음악이 되어있음을 알아차렸다.


 둘러싼 모든 것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삶에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여유'라 일컫는 그것은 사소한 경험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고, 그 시간은 아름다운 찰나를 얻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기 위한 충분한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아름다움은 결코 멈춰 있는 자에게 우연처럼 오지 않으며, 아름다움을 치열하게 얻어내지 못한 자는 악보 위에 그것을 온전히 가둘 수 없다. 필자에게 '익숙한' 아침의 음악은 이유 없이 반복되는 불편한 강박이었으며, '익숙하지 않은' 아침의 이면과의 단 한 번의 마주침은 "음악이 아니어도 된다"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결론에 도달하게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음악만을 위했던 지난 13년의 과거를 부정하는 이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말보다도 필자와 음악을 굳건히 세우고 있다.




" 한뫼님, 커피 한 잔에 무엇을 해도 좋은 아침이네요. "

 "좁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의 기쁨을 이해하여, 사소한 것으로부터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어둠의 포근함을 알아, 무엇으로부터도 동요하지 않으며, 어둠이 또한 부정적인 것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면......". < 내가 사랑은 아니어서 > 필자가 작사, 작곡한 대중성 짙은 가장 첫 음악이다. 새로운 아침이 가져다주었던 첫 번째의 아름다움, '이유 없이 곁에 있는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사랑'에 대해 질문하는 노래이다.


 새로움은 익숙한 것을 비우고 비워낸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겹겹이 쌓이는 것이며, 모두는 버릴 것 없는(버릴 수 없는) 지난 아침들로 다음 날을 맞이할 뿐이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어느 한 날도 헛될 수 없다. 아침은 밤을 위한 것이고 밤은 아침을 위한 것이며, 새로움은 익숙함을 위한 것이고 익숙함은 새로움을 위한 것이다. 글은 음악을 위할 것이고, 음악은 또한 글을 위할 것이니, 아무것도 상관없다. 사랑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사랑일 것처럼,


커피 한 잔에 무엇을 해도 참 좋은 아침이다.





< 내가 사랑은 아니어서 >

 작사 / 작곡 강한뫼


내가 사랑은 아니어서

좁은 문 틈새로 들어오는 기쁜 햇빛을 알지 못해 

언제나 그렇듯 내게 왔으니까 이것이 사랑일까  


내가 사랑은 아니어서

지친 내 마음을 알고 다가오는 어둠의 포근함을 이해 못해 

언제나 그랬듯 내게 있었으니까 이것도 사랑일까


내게 뭐하나 바라는 것 없고 그저 내게로 와 머무르네

알듯 모르게 다가와선 내가 어떻든지 어찌하든지 묵묵히 바라보네


그대는 사랑이라 사랑을 감출 수 없고 내미는 그 손길은 사랑이 아닐 수 없으니

사랑이 스스로 내게 구애함은 나로 사랑이 되게 하려 함이니


그래 , 참 소박하구나

그래 , 그게 전부구나 

사랑이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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