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줄기 볶음과 울 엄마

by 동물의삽


전 어렸을 때 부유하진 않지만 밥을 굶거나 육성회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닌,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동네에 튀김 아저씨나 각종 반찬용 채소를 파는 리어카, 그리고 딸랑딸랑 종을 흔들며 아침에 새로 만든 뜨끈한 두부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까지 참으로 정겨웠는데요. 워낙 물가가 쌌던 시대라서,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어머니 화장대에 올려둔 동전 몇백 원과 오백 원 지폐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우리 형제의 최애 반찬은 고구마줄기 볶음이었는데요. 어묵볶음이나 메추리알을 곁들인 돼지고기 장조림도 좋아했지만, 이맘때면 밥상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고구마줄기 볶음만 나오면 우리 형제는 마냥 행복했었습니다. 까르르 웃으며 고구마줄기를 앞다투어 입에 넣는 아들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천천히 먹으라며 미소를 띠시곤 했었죠.



어느덧 30여 년이 흘러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한 외식자리에서 밑반찬으로 고구마줄기 볶음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냉장냉동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수많은 재료들이 사시사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 시절 가을의 기억이 문득 눈앞을 스쳐가더군요.


아직 대학생이던 시절, 어머니를 졸라서 고구마줄기 볶음이 먹고 싶다고 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어머니셨다면, 흔쾌히 그럼 조금만 기다리라며 만들어 주셨을 텐데요. "아이고, 딴 거 많이 해놨다. 그건 나중에 먹자." 하시더군요. 살짝 실망한 저는 시장에 들러서 처음으로 고구마줄기를 구입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실제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야생의 포스가 폴폴 풍기더군요.


(이걸 다 일일이 손으로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사 온 고구마줄기 다발을 보신 어머니는, 같이 다듬어 보자며 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요. 한 삼천 원어치나 되었을까 싶던 고구마줄기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손톱이 보랏빛으로 물들다 못해 새카매질 때까지 다듬어야 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죠.


저는 그저 만들어 주시면 먹을 줄만 알았던 철없는 아이에서, 비로소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해 쏟으신 수고를 겨우 손톱만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싸고 흔한 반찬일 줄만 알았는데,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가서 어느덧 제 맘속에 소울푸드로 자리 잡은 마법 같은 손맛이었던 거죠. 오랜만에 식당에서 고구마줄기 볶음을 먹으면서, 남몰래 목이 메어와 괜히 헛기침을 했습니다.


지난 추석에 어머니를 찾아뵈러 시골로 다녀왔는데요. 가방에 더 이상 넣을 자리가 없다며 극구 사양하던 제게, 밑반찬과 국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그 손이 눈앞에 선합니다. 근처에 아주 싸고 신선한 채소 가게가 있는데요. 내일은 혹시 고구마줄기가 나오지 않았나 들러야겠습니다. 그리고 제 손으로 정성스레 다듬어서, 잔뜩 볶아 봐야죠. 그리고 주말에는 죄송하고 감사한 어머니께 드리고 와야겠네요.


40줄이 넘도록 철이 채 들지 못한 아들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계속 코를 훌쩍거릴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