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의 겨울: 브래드 델프가 남긴 외로운 영혼

그저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한 남자 이야기

by 동물의삽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풍경은 유난히 쓸쓸하고, 실내에 있으면서도 괜히 움츠러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Boston의 "A Man I'll Never Be". 1978년 발표된 이 곡은 표면적으로는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갈 수 없는 한 남자의 애절한 고백이지만, 이 노래를 부른 브래드 델프(Brad Delp)의 삶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린다.


vintage-vinyl-records-0393_a6c8c6b7-38a3-43a1-b097-791389d94e19.jpg 이 곡이 담긴 앨범, <don't look back>


"If I said what's on my mind, you'd turn and walk away, disappearing way back in your dreams."


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마음속 말을 하면 당신은 돌아서서 떠날 거라고, 당신의 꿈속 저 멀리로 사라져 버릴 거라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속을 터놓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남자의 아픔이 담긴 듯 느껴진다.


브래드 델프는 Boston이라는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목소리는 3옥타브가 넘는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록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성 중 하나로 꼽힌다. 1976년 데뷔 앨범 'Boston'은 1,700만 장이 넘게 팔리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데뷔 앨범 중 하나가 되었고, 한 번 투어를 하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공 뒤에는 긴 침묵이 있었다. Boston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였던 톰 슐츠(Tom Scholz)는 MIT 출신의 천재 엔지니어이자 극단적인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지하실 스튜디오에서 거의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년이고 앨범 작업을 이어갔다. 첫 앨범 이후 두 번째 앨범까지 2년, 세 번째 앨범까지는 무려 8년이 걸렸다. 1976년부터 2013년까지 37년 동안 Boston이 발표한 정규 앨범은 단 6장. 평균 6년이 넘는 작업 시간은 다른 밴드의 3배가 넘는 것이었다.


"I can't get any stronger, I can't climb any higher, you'll never know just how hard I've tried."


더 이상 강해질 수도,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없다는,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거라는 이 가사는 브래드 델프의 현실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톰 슐츠에게는 다행히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그는 Polaroid에서 일했고, 자신의 이름을 건 음향기기 회사 Scholz Research & Development를 운영하며 Rockman이라는 히트 제품을 만들어냈다. 음악은 그에게 완벽을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프로젝트였고, 몇 년이고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있어도 경제적 압박은 없었다.


하지만 브래드 델프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에게는 Boston이 전부였다. 새 앨범이 나오지 않으면 투어도 할 수 없었고, 투어가 없으면 수입도 없었다. 세계적인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브래드 델프는 긴 공백기 동안 생계를 위해 다른 밴드에서 활동하거나 세션 작업을 해야 했다. 그는 RTZ(Return to Zero) 같은 다른 프로젝트도 시도했지만, 결국 사람들은 그를 언제나 "Boston의 보컬"로만 기억했다.


"You look up at me, and somewhere in your mind you see, a man I'll never be."


당신은 나를 올려다보고, 당신의 마음 어딘가에서 내가 결코 될 수 없는 남자를 본다고. 이 후렴구가 반복될 때마다, 나는 브래드 델프가 되고 싶었지만 결코 될 수 없었던 그 사람을 떠올린다. 자신만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었지만, 톰 슐츠라는 거대한 천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아티스트. 37년 동안 고작 5~6장의 앨범에만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그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


같은 시대 다른 밴드들은 1~2년마다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갔다. Led Zeppelin은 10년 동안 8장의 앨범을 냈고, Queen은 70년대에만 7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브래드 델프는 30년이 넘는 보컬 활동 기간 동안 톰 슐츠가 완성할 때까지, 그가 허락하는 만큼만 노래할 수 있었다. 6년씩 기다리며 나이 들어가는 보컬리스트. 만들고 싶었던 음악들, 보여주고 싶었던 재능들은 그 긴 기다림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2007년 3월, 브래드 델프는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나는 외로운 영혼(lonely soul)"이라는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수백만 명이 그의 목소리를 사랑했지만, 정작 본인은 깊은 고독 속에 있었던 것이다.


https://youtu.be/gZxP3bMn0as

스튜디오 녹음과 별반 차이가 없던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 브래드 델프


한겨울 추위 속에서 "A Man I'll Never Be"를 들으며, 나는 브래드 델프를 떠올린다. 이 곡은 단순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아니다. 톰 슐츠라는 천재 곁에서, 그의 완벽주의적 비전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날개를 펴고 싶었던 한 아티스트의 처연한 고백이다. "당신의 음악을 사랑하지만, 나는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악기가 될 수 없어. 나도 내 음악을 하고 싶은 한 사람의 아티스트야."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하지만 "A Man I'll Never Be"를 들을 때마다, 나는 브래드 델프가 되고 싶었지만 결코 될 수 없었던 그 사람을 기억한다. 톰 슐츠가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보았던, 완벽한 악기로서의 보컬리스트. 하지만 브래드 델프 자신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었다. 이 추운 겨울날, 그 간절했던 바람과 이루지 못한 꿈이 이 곡 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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