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팔 할, 20세기 조립 컴퓨터 이야기(11)

90년대~00년대 PC 부품 변천사

by 동물의삽

오늘날 32GB의 메모리와 RTX 50 시리즈가 호령하는 초고사양의 시대, 우리는 문득 깨닫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늘 우리 지갑의 비명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말입니다. 1990년대, 용산 전자상가의 눅눅한 공기 속에는 지금의 4K 그래픽보다 더 선명했던 '낭만'과 '사투'가 있었습니다.


펜티엄 MMX 166의 등장에 가슴 설레고, 부두 밴시의 3D 가속에 영혼을 빼앗기던 그 시절. 그것은 단순한 PC 부품의 변천사가 아니라, 용산 업자들의 감언이설과 싸우며 나만의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려 했던 우리네 청춘의 기록입니다. 20세기 전자오락실의 뒷골목을 지나,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그때 그 시절 '등골 브레이커' 부품들의 추억 속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Pentium MMX-166

mania-done-20200731210702_celomfbf.jpg MMX 명령어로 멀티미디어에 강하다고 선전했던 그 CPU입니다


1991년경에 홍익전자의 AT(80286)를 들여놓은 이후로, 한동안 PC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었는데요. 고등학생시절 전화국에서 막 뿌려주던 하이텔 단말기로 통신을 하다 등짝에 손바닥 자국이 박히도록 혼난 이후로, 386, 486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mania-done-20200731210714_yitwczbw.jpg 당시의 하이텔 단말기


이후 90년대 중반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집에서 큰맘 먹고 200만 원 가까이 들여서 펜티엄 PC를 뽑아주셨는데요. 마이컴등의 잡지를 뒤져서 괜찮은 부품을 공부한 뒤에, 용산으로 차를 갖고 가서 선인상가 주차장에 대고 여기저기 부품샵들을 돌아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맨 위 사진은 당시에 거의 최신이었던 펜티엄 mmx-166의 아리따운 자태입니다.



당시의 메인보드 레이아웃

mania-done-20200717071838_gazneczu.jpg 아마도 소요의 메인보드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제법 오래 쓰였던 흰색의 PCI 슬롯 밑으로 보이는 검은색 투박한 슬롯이, ISA 슬롯입니다. 초기의 사운드카드등은 다 여기다 꽂아서 썼던 기억이 나네요.



가산전자 윈 X 퍼펙트 II

mania-done-20200717071552_wgxohcnu.jpg 당시엔 나름 고가 VGA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TV 튜너 내장에 (말로만) 3D 가속도 지원한다는 조립업체 사장의 말발에 속아서 샀던 그래픽카드입니다. 뭐가 그렇게 많이 남는지는 몰라도 모니터에 씌우는 보안경과 해적판 게임도 엄청 깔아준 기억이 나네요.



삼성 싱크마스터 17인치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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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CRT 모니터의 시대가 영원할 것만 같은 시대가 있었는데요. 저도 2000년대 초중반에 LCD 모니터로 바꾸기 전까지 거의 7~8년을 이 모니터로 너끈히 버텼던 기억이 납니다. 최대 해상도가 무려 1024*768이나 되는 놀라운 사양이었죠.



사운드 블라스터 AWE32 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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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사운드카드는 무조건 사블이었습니다. 호환성도 호환성이지만, 이전에 쓰던 옥소리등과는 차원이 다른 다중 사운드로 게임에 푹 빠지게 해 주었죠. 다만 ISA 슬롯을 쓰다 보니, 나중에 펜티엄 3 급으로 업그레이드하던 시절에는 맞는 슬롯이 없어서 업체에 처분해야 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습니다.



알텍랜싱 스피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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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운드 블라스터 카드와 함께, 2 채널 스피커로는 나쁘지 않은 음질과 음량으로 제법 오래 같이했던 모델입니다. 우퍼가 있는 2,1 채널 모델이 더 인기 있었지만, 책상 위에 자리가 없었기에 이 스피커를 모니터 위에 올려놓고 썼죠. CRT모니터가 워낙 발열이 심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퀀텀 파이어볼 1.6기가 H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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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당히 인기 있었던 퀀텀사의 1.6기가 하드디스크입니다. 486 시절만 해도 200메가 정도의 하드디스크가 주력이었는데요. 그 몇 배에 달하는 기가단위의 하드를 대체 언제 다 채울까 하면서 즐거운 고민을 하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양자'라는 브랜드명에 걸맞게 발열도 엄청났던 기억입니다.



그 시절 파워 서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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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모듈러 파워는 생각도 못했었고, 날씬한 플랫 케이블도 아닌, 지금의 SATA 방식이 아니라 IDE 방식 케이블들을 하나 하나 끼우다 보면 지쳐버릴 때도 많았죠.



56K 모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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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모뎀은 28800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이후 33600이 나왔고, 전화선 모뎀으로는 최대 속도인 56K 모뎀도 나왔습니다. 다만 곧이어 초고속 통신이 보급되면서 56K 모뎀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죠. 그래도 사진 하나 다운로드하는데 한 줄씩 받아지던 기존 제품에 비해. 쭉쭉쭉 받아지던 56K 모뎀은 젊은 학생들의 구원자나 다름없었습니다.



Pentium II-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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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티엄 시대를 끝내고 새로 등장한 펜티엄-II 모델 중 가장 인기 있던 모델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셀러론 300A를 구입해서 오버를 450 MHZ까지 땡겨서 쓰던 케이스도 많았는데요. 멀티미디어와 게임 연산에서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던 녀석이었습니다. 특이하게 소켓에 꽂는 게 아니라 슬롯 타입이었는데요. 이 타입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32mb SDR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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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8기가 이상의 메모리가 일반적이지만, 당시는 MB 단위의 메모리도 차고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로 8MB 정도면 크게 어려움 없이 쓰곤 했었는데요. 펜티엄 2가 나오면서 비로소 64MB 정도의 넉넉한 메모리를 갖춘 사양이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사실은 게임의 발전속도에 맞춰진 거죠)



부두 밴시 1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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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썼던 가산전자의 VGA를 주고 트레이드로 받아온 글카입니다. 2D/3D가 모두 가능했던 카드였는데요. 당시엔 일반적인 다이렉트 X 기반의 3D 가속과 3DFX의 글라이드 기반 3D 가속 모드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부두 2를 달고 글라이드 모드로 모토 레이서를 돌려본 기억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네요.



퀀텀 6.4G H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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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기가 하드를 쓰다가 무려 4배로 뻥튀기된 용량의 하드디스크로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예전엔 자료 복사하려고 하드디스크를 뽑아서 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는데요.(학교 과제 제출하려고 3.5' 디스켓을 쓰던 시절이니...) 이때쯤부터 초고속 통신이 보급되면서 이 정도 하드디스크는 맘 잡고 하루면 다 채울 수 있었죠.



보통의 타워형 PC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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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PC 케이스는 대체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CD롬 드라이브도 필수로 들어가야 했고, USB 드라이브 보다 3.5인치 디스켓이 더 친숙했던 시절이었죠. 지금 인기를 끄는 어항 케이스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KT ADSL 서비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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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야사입니다만, 당시의 성인 비디오등이 인터넷으로 마구 퍼지면서, 초고속 통신의 보급률을 팍팍 끌어올렸다는 카더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초고속 인터넷은 많은 이들의 생활을 바꿔놓았는데요. IT 벤처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온라인 게임들이 활성화되었으며, 무료 채팅 기반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엄청난 가입자를 끌어모으던 시절이었습니다.



애슬론 XP-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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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펜티엄 3을 사던 시절에 처음으로 모신 AMD의 CPU였는데요. 개인용 CPU 시장에서 처음으로 1 GHZ의 벽을 돌파한 것도 인텔이 아니라 AMD의 CPU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애슬론 CPU는 가성비의 끝판왕으로 군림하면서 빠른 속도로 인텔의 점유율을 위협했는데요. 저도 무척 만족하면서 쓰긴 했지만, 잘만의 부채꼴 모양 쿨러를 달아줘야 했을 만큼 발열이 만만치 않았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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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애슬론 xp와 함께 썼던 잘만의 (거의) 무소음 부채꼴 쿨러입니다. 방열판만 있던 것은 아니고 저속이라 거의 팬 소리가 들리지 않는 팬 하나와 세트였는데요. 정말로 케이스를 열어놔도 팬 소리가 거의 없어서 오히려 하드 디스크 긁는 소리가 더 컸을 정도입니다.



64mb DDR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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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본이 64MB에 128MB 메모리를 장착한 사양도 흔하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울티마 9가 당시로는 엄청난 사양으로 화제에 올랐었는데요. 실상을 알고 보니 최적화가 안되어서 사양만 무지막지하게 잡아먹고 초고사양 컴에서도 원활하게 돌리기는 힘들었던 기억입니다. 반면에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울티마 온라인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죠.(WOW 이전에)



라데온 LE 32mb-> 라데온 8500 64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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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들이 엔비디아의 지포스 2 mx나 지포스 2 gts를 쓰던 시절에, 단지 색감이 너무 따뜻하다는 이유 하나로 쓰게 되었던 ATI(지금은 AMD)의 라데온 그래픽 카드입니다. 원래 2D는 매트록스의 제품들이 끝판왕이었지만, 어느 정도의 가성비를 따져보았을 때 2D의 화사한 색감과 괜찮은 3D 가속능력까지 다 갖추었던 제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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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글카를 업그레이드한다고 질렀던 유니텍의 라데온 8500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한 명품이었는데요. 그때 시장을 양분했던 지포스 3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성능과 저발열로 오랫동안 썼던 카드입니다. 나름 리니지 2 시절까지도 큰 문제없이 굴렸던 기억이네요.


씨게이트 40G HDD-> 삼성 스핀포인트 120G H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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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썼던 두 자릿수 대용량 하드디스크는 시게이트의 40G 모델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조용한 데다 고용량으로 잘 쓰다가, 아무래도 자료 채우기엔 부족하게 되어서 추가한 모델이 삼성 하드였습니다. 삼성 하드는 성능상의 이점은 크게 없었지만, A/S로 이거 이상하다고 들고 가면 따지지 않고 바로 새 걸로 바꿔주던 정책 때문에 구입했던 기억입니다.



사운드는 온보드 칩(AC97)

mania-done-20200731214814_lgmrhfdr.jpg 요렇게 온보드된 타입이었죠


이제 대부분의 사운드카드는 그야말로 전문가용 시장으로 축소되고, 대부분의 유저들은 메인보드에 달린 사운드 칩셋으로도 크게 불편 없이 영상을 보고 게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ISA 카드 시절에는 가끔 전송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소리가 밀리곤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다 옛말이 되었죠.




20세기 시스템의 기억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우리에겐 32MB의 메모리도, 6.4GB의 하드디스크도 영원히 채우지 못할 것 같은 광활한 대지였는데요. 부두 밴시의 각진 거친 그래픽과 56K 모뎀의 날카로운 접속음은 단순한 하드웨어의 구동음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접속하던 우리 청춘의 배경음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가 당시의 슈퍼컴퓨터를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용산 전자상가의 눅눅한 공기 속에서 부품 하나에 설레던 그 시절의 낭만까지 대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첫 번째 '인생 부품'은 무엇이었나요? 그 시절, 당신을 밤잠 설치게 했던 그 이름들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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