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팔 할, 20세기 전자오락실 이야기(12)

1992년, 우리가 사랑한 도트, 우리가 사랑한 엔딩

by 동물의삽

오늘은 1992년 게임들을 골라보았습니다. 하드웨어 성능이 올라가면서 표현의 깊이가 이전과는 확실히 다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그래픽이 화려해진 것을 넘어, '메가' 단위의 용량이 선사하는 시청각적 충격이 안방 TV와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하던 시기였죠.


당시 오락실은 단순히 게임을 하는 장소를 넘어, 8비트 콘솔 게임기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에게 16비트, 그 이상의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창구였습니다. 특히 1992년은 캡콤과 코나미, 세가 등 전설적인 제작사들이 자신들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완성하며 '오락실 부흥기'의 정점을 찍은 해이기도 합니다. 거친 비트음과 현란한 스프라이트가 가득했던 그해, 과연 어떤 게임들이 우리의 동전을 가져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에어로 파이터즈(소닉 윙즈), 비디오 시스템

https://youtu.be/0G9p51k6EZ0

비디오 시스템의 많은 명작 슈팅 게임들의 시작이라 하겠네요. 훗날 사이쿄에서 선보이는 전국 에이스나 건버드의 시스템이 사실상 이 게임의 파생형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직도 오락실에 가면 가끔 보이는 명작이며, 라이덴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의 종 스크롤 슈팅게임으로 남았습니다.



아라비안 매직, 타이토

https://youtu.be/rxU0wTmekt0

아라비안 나이트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잘 버무려낸 명작 액션 게임입니다. 같은 해에 발매된 세가의 아라비안 파이트라는 게임도 있었는데요. 겉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본작과는 천지 차이의 망작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부기 윙즈, 데이터 이스트

https://youtu.be/mvg9abVPczU

미야자키 하야오의 홍돈이 살짝 떠오르는 쌍엽기를 타고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적들을 상대하는 호쾌한 게임입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 모탈엔진이 살짝 떠오르더군요. 전작인 울프 팡과 비슷하게 파일럿은 비행기에서 추락해도 살아남는데요. 여러 가지 기체를 골라서 타고 도전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버키 오' 헤어, 코나미

https://youtu.be/Xua4xLRmcjk

동명의 원작 애니를 게임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할 때 제법 인기가 있었다는데요. 다른 벨트액션게임의 환장하는 난이도와는 달리 적절한 밸런스에 성공해서, 원코인 클리어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혼자 할 때는 주인공 버키는 거의 안 하고 보통 제니를 많이 했었죠.



데드 커넥션, 타이토

https://youtu.be/fm9pj2d9qW4

고정된 스테이지 안에서 정신없는 총격전을 벌이는 게임입니다. 카발은 수평이동으로 고정되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스테이지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 있는 차이가 있었는데요. 대신에 그만큼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탄 때문에, 엄청나게 집중하게 되는 게임이었죠.



페이탈 퓨리 2(아랑전설 2), SNK

https://youtu.be/_hXPxLvPok8

스파 2 직전에 나와서 제법 인기를 끌었지만, 사실은 미완성에 가까웠던 아랑전설의 후속작입니다. 전편의 미흡한 점을 제대로 개선해서 크게 성공했는데요. 덕분에 아랑전설의 등장 캐릭터들은 SNK의 효자 상품인 킹오파 시리즈에도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죠.(무엇보다도 시라누이 마이의 등장이..)




픽스 에이트(피그제이드), 토아플랜/타이토

https://youtu.be/fq4tBaQNU9s

캡콤의 전장의 이리 와 비슷한 구성이지만, 선택하는 캐릭터별로 무기가 다릅니다. 또 스테이지 곳곳에 무기의 특성을 변형하는 존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가끔 바꾸면 안 되는데도 총탄을 피하다가 바뀌어서 낭패를 겪는 경우도 있었죠.:) 무한루프가 가능해서 한번 잡으면 오래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지. 아이. 조: 아메리칸 리얼 히어로, 코나미

https://youtu.be/kRQCrtuYuqA

체험형 머신에서나 볼 수 있었던 3D 효과가 인상적인 게임인데요. 공격은 수평적으로 하지만, 스테이지 진행을 위해서는 앞으로 돌격해야 했기에 신경 써야 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최대 4인 플레이를 지원하는데요. 넷이서 사이좋게 폭탄을 날리면서 적들을 쓸어버리는 쾌감이 일품이었죠.



골든 액스 2: 데스 애더의 복수, 세가

https://youtu.be/Y6inP3NQPXY

황금도끼의 후속작입니다. 그래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작이 쉬워져서 난이도가 많이 내려간 느낌이었는데요. 세가가 가정용 콘솔 발매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에 여러모로 퀄리티는 1편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이 단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게임성은 여전히 뛰어났죠.



후크, 아이렘

https://youtu.be/RIsD2B9ZcyY

로빈 윌리엄스가 출연했던 영화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입니다. 그래서 소년이 아니라 아재 피터팬이 주인공이었죠. 다양한 캐릭터들을 잘 표현했고, 무엇보다도 난이도가 적당하면서 무한 루프가 가능했기에, 맘먹고 플레이하면 한 시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버티게 해 준 작품입니다.



모탈 컴뱃, 미드웨이

https://youtu.be/WXmDhwR0xzE

다들 스파 2에 정신을 빼앗겼던 시절, 독특한 게임성과 표현으로 열광적인 마니아를 양산한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 페이탈리티를 시전 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그로테스크한 마무리가 들어갔는데요. 그 기술 때문에 여러 플레이어를 다 해본 사람들도 많았죠. 지금은 가정용으로 정착하여, 수많은 후속작을 내고 있는 인기 시리즈로 자리 잡았습니다.



뿌요뿌요, 세가/컴파일

https://youtu.be/-xRFTX8Qoho

원래 MSX 게임의 명가 컴파일에서 만든 게임을 아케이드용으로 다시 만들었는데요. 스파 2가 휩쓸고 있던 오락실 한편에서 대전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캐주얼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입니다. 특히 둘이서 대전 모드로 붙게 되면 간단하게 우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언더커버 캅스, 아이렘

https://youtu.be/9Z2OSqVYHTQ

북두의 권을 연상시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으로, 악당들을 때려잡는 게임입니다. 스테이지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기물들을 적절하게 적에게 사용하면서 쓸어버리는 쾌감이 있었는데요. 그중에는 전봇대나 철근(...)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 캐릭터들이 북두의 권을 많이 떠오르게 하네요)



워리어즈 오브 페이트(천지를 먹다 2), 캡콤

https://youtu.be/3cqD8LLvFuY

천지를 먹다의 후속작이며, 상업적으로는 더 성공한 게임입니다. 1편보다 액션성이 엄청나게 늘어났는데요. 자신들의 히트작인 스파 2를 여기저기 패러디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조운의 승룡권베기(...)라던가, 관우의 파일드라이버가 그 증거죠. 다만 난이도가 만만치 않아서, 중반부를 지나면 엄청난 적들이 쏟아져 나왔는데요. 특히 여포의 무시무시함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와일드 웨스트 카우-보이즈 오브 무 메사, 코나미

https://youtu.be/EHl35i-Vyj4

본격 소판(?) 서부극 게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해 줬다는 티브이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만들었는데요. 적당한 난이도에 무적 기술이 있어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보스전에서 유용하게 쓰였는데요. 이 게임을 잘하는 친구들은 보스전에서 보스의 공격기를 무력화시키는 조작을 뽐냈죠. 무한루프는 아니고 엔딩이 있었지만, 여러 명이서 하기에 적합한 신나는 게임으로 기억합니다.




1992년의 게임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 시기가 오락실이 가정용 게임기에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던 마지막 로맨스의 시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이테크의 최전선이 동네 어귀 오락실에 있었고, 우리는 그 압도적인 하드웨어 성능을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100원짜리 동전을 쌓아두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지금 보면 투박한 2D 도트 그래픽일지도 모르지만, 당시 우리에게 이 게임들은 가상현실보다 더 생생한 세계였습니다.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게임들이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추억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정된 리소스 안에서 최대의 상상력을 발휘했던 개발자들의 열정, 그리고 그 열정에 기꺼이 응답했던 우리 청춘의 한 조각이 이 데이터들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1992년, 가장 뜨거웠던 게임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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