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제국 흥망사: 건즈 앤 로지스의 절정과 몰락
1989년 9월, LA의 밤은 유난히 뜨거웠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의 화려한 조명 뒤편, 백스테이지의 공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팽팽했다. 사건은 단순했다. 당대 최고의 록 스타였던 머틀리 크루의 빈스 닐이 건즈 앤 로지스의 리듬 기타리스트 이지 스트래들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건즈 앤 로지스의 프런트맨, 만 27세의 액슬 로즈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지를 대신해 카메라 앞에 서서 전 세계를 향해 포효했다.
"Vince, I’m gonna kill you. I’m gonna take you out. Anytime, anywhere. I'll give you your choice of weapons: we can use fists, we can use knives, we can use guns! But don't come at my friends from behind and then run like a little bitch." (빈스, 널 죽여버리겠어. 널 제거할 거야. 언제 어디서든. 무기도 네가 골라. 주먹이든, 칼이든, 아니면 총이든! 하지만 내 친구 뒤에서 공격하고 계집애처럼 도망치지는 마라.)
당시 액슬에게 밴드 멤버들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인디애나 시골에서 함께 상경해 배고픔을 견디며 LA의 밑바닥을 훑었던 '혈맹'이었다. 친구를 위해 총과 칼을 들겠다던 27세 청년의 의리는 날것 그대로의 진심이었고, 팬들은 그 화끈한 '악동 본능'에 열광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뜨거웠던 의리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빈스 닐은 차갑게 응수했다. "월요일 6시, 산타모니카 시빅 오디토리움으로 와라. 안 나오면 넌 겁쟁이(Pussy) 일뿐이야. 아주 간단해(It’s that simple)."
결투 당일, 빈스는 나타났지만 액슬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국을 세우기도 전부터 그는 이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불을 지르고, 그 뒷감당은 멤버들에게 떠넘기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지를 위해 주먹을 휘두르겠다던 그 손이, 불과 1년 뒤 세인트루이스 폭동의 도화선이 되고, 끝내는 그토록 아끼던 '친구' 이지의 주머니를 털어내려 할 줄은 그때의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가장 순수했던 의리가 가장 추악한 비즈니스로 변질되기 직전, 그들은 1991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분기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바로 록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작별 인사가 될 <Use Your Illusion>의 서막이었다.
1991년 7월 2일, 세인트루이스의 리버포트 앰피시어터. 제국은 정점에 서 있었다. 아직 새 앨범이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팬들은 건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만으로도 미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무대 위의 액슬 로즈는 팬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었다.
사건은 공연 중반, 'Rocket Queen'이 흐르던 중에 터졌다. 관중석의 한 남자가 캠코더를 들고 영상을 찍고 있었고, 예민해진 액슬은 보안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저 자식 잡아! 카메라 뺏으라고!"
하지만 보안 요원들의 대처가 느리자, 액슬은 참지 못했다. 그는 1년 전 빈스 닐에게 "주먹이든 칼이든 가져와라"라고 외치던 그 기세로 관중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록 스타가 아닌 거리의 싸움꾼으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무대로 다시 기어 올라온 액슬의 손에는 빼앗은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그는 마이크를 낚아채 전 세계 록 역사상 가장 오만한 퇴장사를 내뱉었다.
"Thanks to the lame-ass security, I'm going home!" (무능해 빠진 보안 요원들 덕분에, 난 집에 간다!)
마이크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액슬은 무대 뒤로 사라졌다. 남겨진 슬래시와 더프, 그리고 맷 소럼은 당혹스러운 눈빛을 교환하다 결국 악기를 내려놓고 그를 따라갔다.
주인을 잃은 무대 위로 병과 의자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분노한 2만 명의 관중은 폭도로 돌변해 경기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밴드의 장비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 사건은 단순히 공연 중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액슬 로즈라는 개인의 자아가 밴드라는 공동체의 안위를 완전히 압도해 버린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지 스트래들린은 무대 뒤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친구를 위해 결투를 신청하던 액슬은 이제 없었다. 그 자리에는 자신의 기분 때문에 수만 명의 팬과 동료들의 노고를 불태워버려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거대하고 고독한 괴물만이 서 있었다.
제국은 그렇게 완성되기도 전에 내부로부터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광기 어린 에너지를 집대성한,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도 슬픈 결과물인 <Use Your Illusion>의 기록뿐이었다.
스튜디오는 창의성의 공간이 아닌, 액슬이 설계한 '완벽이라는 이름의 감옥'이었다. 이지는 훗날 당시의 고통을 이렇게 회고했다.
"I’d go there at the time we were supposed to start, and he wouldn't be there. Then I’d wait ten hours. Finally, I just said, 'Fuck it,' and went home to sleep." (시작하기로 한 시간에 갔는데 그는 없었어. 10시간을 기다렸지. 결국 '에라 모르겠다(Fuck it)' 하고 집에 가서 잤어.)
슬래시 역시 액슬의 과도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편집증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I’d record my guitar parts, and then Axl would spend weeks adding layers of keyboards and orchestration. By the time it was finished, the band sounded like it was being swallowed by a giant production." (내가 기타를 녹음해 놓으면 액슬은 몇 주 동안 키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을 겹겹이 쌓았어. 다 끝났을 땐 밴드가 거대한 제작물에 집어삼켜진 것 같았지.)
액슬은 이에 대해 담담히 응수했다.
"I have a vision for what these songs should be, and I won't settle for anything less. If it takes a long time, it’s because it has to be perfect. I’m the one who has to live with this forever."(이 노래들이 어떻게 나와야 할지 나에겐 비전이 있어. 그 이하와는 타협 안 해. 오래 걸린다면 그건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야. 이걸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할 사람은 나니까.)
천신만고 끝에 발매된 <Use Your Illusion I & II>는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 1위(II)와 2위(I)를 동시에 석권했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으며 전 세계가 건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 아래 무릎을 꿇었음을 선포하는 황제 등극식이 었다.
차트 1, 2위 석권은 액슬에게 "내 방식이 옳았다"는 확신을 주었다. 멤버들을 10시간씩 기다리게 하고, 수백 겹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쌓아 올린 자신의 '비전'이 전 세계적인 성공으로 보상받았으니 말이다. 이제 그에게 밴드는 동료들의 집합체가 아닌, 자신의 예술을 구현하는 '거대한 악단'이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차트 1, 2위를 휩쓸던 그 화려한 전성기에 이지 스트래들린은 탈퇴를 결심한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verything was so big, but so empty." (모든 것이 거대했지만, 너무나 비어 있었다.) 그는 앨범 발매 직후인 1991년 11월, 제국이 가장 빛나던 순간에 미련 없이 문을 닫고 발길을 재촉해서 떠났다.
전 세계의 귓가를 먼저 난도질한 것은 맷 소럼의 무자비한 드럼 필인이었다. 1집 시절에 이미 써두었던 이 곡은 액슬의 화려한 장식 대신 건즈 특유의 '거리의 불량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영화 <터미네이터 2>의 전율과 함께 흘러나온 이 곡은, 데뷔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 시절에 이미 써두었던 곡이다.
덕분에 액슬이 2집에서 집착했던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피아노 선율 대신, 건즈 앤 로지스 특유의 '거리의 불량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슬래시의 끈적한 리프와 이지의 탄탄한 리듬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곡은, 그들이 가장 순수하게 폭주하던 시절의 마지막 유산과도 같다.
'You Could Be Mine'이 건즈 앤 로지스의 외적인 폭발력을 상징한다면, '14 Years'는 그 내부에서 곪아가던 상처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곡이다. 이 곡의 주인공은 액슬이 아니다. 바로 밴드의 설계자이자 액슬의 가장 오래된 벗, 이지 스트래들린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14년'은 이지와 액슬이 고향 인디애나에서 처음 만나 음악이라는 꿈을 함께 꾸기 시작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지는 이 곡에서 그 찬란한 우정을 '고통'이라 명명한다.
"14 years of silence, it's been 14 years of pain" (14년의 침묵, 14년의 고통이었어)
액슬의 날카로운 비명 대신 흐르는 이지의 담담하고 투박한 목소리는, 그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대변한다. 그는 더 이상 화려한 무대 조명도,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친구와 함께 리듬을 맞추며 록앤롤을 연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당시이지는 약물을 끊고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술과 약 기운이 가신 눈으로 바라본 밴드는 광기에 휩싸인 지옥도였다. 10시간씩 늦는 액슬, 그 변덕에 휘둘리는 스태프들, 그리고 거대해진 자본의 압박.이지는 이 곡을 녹음하며 이미 제국 밖으로 나갈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액슬은 이 곡에서 코러스를 넣어주며 친구의 노래를 돕는 듯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가사는 액슬 자신을 향한 이지의 조용한 일갈이었다.
<Use Your Illusion II>의 포문을 여는 이 곡은 건즈 앤 로지스가 단순한 악동을 넘어 시대의 관찰자로 거듭났음을 선포하는 대작이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쿨 핸드 루크>의 샘플링 대사는 이 밴드의 운명을 예언하는 서늘한 복선이기도 하다.
"What we've got here is failure to communicate." (우리가 마주한 것은 소통의 부재다.)
액슬 로즈는 이 곡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부자들의 배를 불리고 가난한 자들을 묻어버리는 전쟁은 필요 없다"는 그의 외침은 당시 걸프전 상황과 맞물려 전 세계적인 공명을 일으켰다. 거친 욕설과 방탕함을 노래하던 그가 보여준 이 의외의 지성적 면모는 대중들이 건즈 앤 로지스를 단순한 록 스타 이상의 존재로 우러러보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의 전쟁을 비판하던 이 곡은 밴드 내부의 '내전'을 상징하는 곡이기도 하다. 1집의 황금기를 함께했던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가 약물 중독으로 인해 밴드에서 쫓겨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에 참여한 곡이기 때문이다.
소통의 부재를 비판하며 평화를 노래하던 그 순간, 밴드 내부에선 동료를 내치고 서로를 불신하는 진짜 'Civil War'가 곪아가고 있었다.
세인트루이스의 화염도, 동료들의 지친 기색도 액슬 로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 중심에는 1983년, 밴드가 결성되기도 전부터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만지작거렸던 미완의 대작, 'November Rain'이 있었다. 이 곡은 단순히 한 곡의 녹음이 아니라 액슬 로즈라는 한 인물이 10년 동안 품어온 집념의 산물이었으며, 동시에 밴드의 민주적인 협업이 완전히 종말을 맞이했음을 선포하는 현장이었다.
액슬은 이 곡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다른 멤버들이 곡의 길이를 줄이자고 제안할 때마다 액슬은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비전을 고수했다. 그는 엔지니어와 단둘이 밤을 새우며 수백 개의 트랙을 겹쳤고, 실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선율을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당시 스튜디오 스태프들은 "액슬은 이 곡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죽을 수도 없다는 기세였다"라고 회상할 만큼, 그는 이 곡을 자신의 인생과 동일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의 가장 화려한 정점인 슬래시의 기타 솔로는 그리 복잡한 계산 끝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슬래시는 액슬이 쌓아 올린 장엄하고도 질식할 것 같은 오케스트레이션에 이미 질려 있었다. 그는 액슬의 거대한 벽 사이에서 숨을 쉬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기타에 쏟아부었고, 훗날 그 솔로를 "그저 내가 내지른 비명 같은 것"이라 회고했다. 밴드의 상징이었던 슬래시의 기타마저 액슬이 설계한 거대한 성전 안에서는 주인공이 아닌, 처절한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액슬의 통제광적인 기질은 녹음실 밖, 15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된 뮤직비디오 현장에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연인이었던 스테파니 세이모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상 작업에서 액슬은 모든 컷에 간섭하며 멤버들을 단순한 조연으로 전락시켰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겹겹이 쌓일수록 밴드 특유의 거친 숨소리는 사라졌고, 그 자리는 액슬의 완벽주의라는 차가운 비로 채워졌다.
슬래시가 성당 앞 벌판에서 바람을 맞으며 고독한 솔로를 내뿜을 때, 그것은 제국의 화려한 승전보라기보다 무너져가는 우정을 향한 처절한 장송곡에 가까웠다. 가장 아름다운 선율 위로 제국의 균열은 멈출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고, 이지는 이 거대한 허영의 현장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먼저 밴드라는 이름의 궤도 밖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웅장한 앨범의 종막을 장식한 곡은, 그들이 가장 가난하고 순수했던 시절에 처음으로 함께 쓴 노래 'Don't Cry'였다. 1980년대 초반, LA의 이름 없는 클럽가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스물한 살의 액슬과 이지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느꼈던 아픔을 나누며 만든 이 곡은 밴드의 가장 깊은 뿌리에 닿아 있는 유산이다. 하지만 이 곡이 전 세계 레코드샵을 점령했을 때, 두 사람의 14년 우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녹음 과정 또한 밴드의 분열된 자아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액슬은 이 곡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가사가 다른 두 가지 버전(Original & Alt. Lyrics)을 제작했고, 코러스에는 블라인드 멜론의 섀넌 훈을 불러들였다.이지가 만든 담백한 코드 진행 위에 액슬의 날카로운 고음이 얹히던 초기 클럽 시절의 그 '생존을 위한 합창'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고도로 정제된 비즈니스의 사운드가 대체했다. "울지 마라"는 가사는 이제 연인을 향한 위로가 아닌, 서로를 등지고 떠나는 멤버들이 자신들에게 던지는 최면처럼 들렸다.
이지 스트래들린이 밴드라는 화려한 감옥에서 탈출하기 직전, 그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도 철저히 겉돌았다. 액슬과 슬래시가 화려한 조명 아래서 카메라를 응시할 때, 이지는 자신이 쓴 곡의 영광을 뒤로하고 조용히 기타 케이스를 닫고 있었다. 그에게 이 곡은 성공의 징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결국 앨범 발매 직후인 1991년 11월, 이지는 악수 한 번 없이 밴드를 떠났고, 액슬은 자신의 곁을 지키던 가장 오래된 거울을 잃어버렸다.
건즈 앤 로지스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가장 서정적인 발라드 'Don't Cry'는 그렇게 제국이 남긴 마지막 눈물이 되었다. 14년 전 LA 거리에서 서로를 보며 "울지 마라"라고 다독이던 청년들은 이제 억만장자가 되어 서로를 향해 소송장을 날리는 원수가 되었다. 제국은 불타 사라졌고 우정은 자본에 잠식되었지만, 20대 청년들이 처음 함께 모여 연주했던 그 순수한 멜로디만은 여전히 남아 울지 말라고 다독인다. 그것은 건즈 앤 로지스가 도달한 가장 높은 곳에서 내뱉은, 가장 쓸쓸한 안녕이었다.
이지 스트래들린이 떠난 자리에 남은 것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제국의 잔해뿐이었다. 1993년, 밴드는 창작의 고갈을 증명하듯 커버 앨범 <The Spaghetti Incident?>를 내놓았으나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계약 장수를 채우고 투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급조된 이 앨범은, 한때 세상을 호령하던 록의 제왕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파산 선고였다. 결국 1996년 슬래시마저 액슬의 독재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며, 우리가 알던 건즈 앤 로지스는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세월이 흘러 2016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액슬과 슬래시, 더프의 재결합 투어 'Not in This Lifetime'이 성사되었다. 전 세계 팬들은 열광했고 투어 수익은 수천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그 찬란한 무대 위 어디에도 밴드의 정체성이자 설계자였던 이지 스트래들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팬들이 그토록 원했던 '완전체'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지는 훗날 자신의 SNS와 인터뷰를 통해 재결합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를 단 한 문장으로 폭로했다.
"They didn't want to split the loot equally. It's that simple." (그들은 수익을 평등하게 나누길 원치 않았다. 아주 간단한 문제다.)
결국 수십 년을 기다려온 재결합의 동력은 우정의 회복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자본의 논리였다. 액슬은 '건즈 앤 로지스'라는 브랜드의 권리를 끝까지 움켜쥐었고, 슬래시와 더프는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조연으로 복귀했다.이지는 친구들이 만든 그 거대한 비즈니스의 판에 들러리가 되기를 거부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록 스피릿의 자존심을 지켰다.
건즈 앤 로지스. 그 이름은 지켜졌을지 모르나, 이지의 리듬 위에 슬래시의 영혼이 실리지 않는 음악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그 밴드가 아니었다. 제국은 이름만 남은 성벽이 되었고, 한때 친구를 위해 총과 칼을 들겠다던 27세 청년들의 맹세는 이제 통장 잔고를 채우는 비즈니스가 되었다. 이름만 남은 제국 위로 여전히 11월의 비는 내리지만, 그 비는 더 이상 전설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지나간 시대가 흘리는 가장 비싼 눈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