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노래한 목소리 톰 키퍼, 하늘은 재능을 한 몸에 모두 주지 않는다
1회로 선보인 킵 윙어의 글 이후 시리즈를 이어가게 되었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밴드 신데렐라와 그 프런트맨이었던 톰 키퍼입니다.
일단 얼굴부터 보고 가세요.
메이크업이 좀 많이 진하지만(초기엔 거의 글램메탈 밴드였으니) 리즈시절엔 얼빠를 다수 양산했던 기타 겸 보컬 겸 건반 겸 송라이터입니다. 재능이 워낙 많아서 대체 얼마나 큰 거물이 될까 기대가 컸는데요. 하늘은 그에게 다 주셨지만, 강한 성대는 주지 않으셨으니 공평하다고 해야 할지...
그 시절 LA/팝 메탈을 주도했던 밴드들의 모음 사진인데요.(엇, 키스 횽아들이 왜 여기에..) 이 사진에서도 센터를 차지하고 있는 당당한 톰 키퍼의 얼굴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에 키스의 사진이 있는 것은, 아마도 밴드 초기에 캐릭터 분장으로 인기를 끌었던 대표적인 밴드라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데프 레파드는 헤어메탈 밴드까지는 아니었죠.
톰 키퍼는 음악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기타를 연주했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블루스를 제일 좋아했다는군요. 이미 중학교 때 밴드 생활을 시작했고 학업에 관심이 없었기에, (그 나이에 벌써 알코올중독에다 약도 했다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음악활동에 전념하려 했다는군요. 그의 어머니가 고교 졸업만 하면 기타 한대 뽑아준다는 약속으로, 겨우 학교에 붙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졸업과 함께 레스 폴을 사주셨다네요. 여하튼 새 기타와 함께 술과 약을 끊고 정신을 추스르게 되었습니다.
(고교시절 사진)
1982년, 기타리스트 겸 보컬 톰 키퍼와 평생의 동료가 되는 베이시스트 에릭 브리팅햄을 주축으로 신데렐라가 결성되었습니다. 그때 키스의 진 시몬즈가 그들에게 관심을 보였다는데요. 톰 키퍼는 관심 없다며 거절했다고 하네요(...) 이후 1985년, 톰 키퍼의 노래와 연주 실력을 눈여겨보았던 존 본조비에 의해 픽업되어,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세우면서 인지도를 키워주었고 머큐리 레코드와 연결도 시켜줍니다.
(존 본조비, 톰 키퍼, 리치 샘보라의 사진입니다)
밴드명이 신데렐라가 된 일화가 재미있는데요. 이름을 고심하다가, 무심코 보던 성인 비디오의 제목이 신데렐라 패러디였고 그냥 그걸 이름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역시 비범한 사람들입니다.(언니네 이발관의 탄생비화와 상당히 비슷하네요)
그리고 1986년, 기타리스트 제프 라바와 (곧 바뀔) 드러머가 합류하면서 그들의 첫 앨범인 <night songs>가 발매됩니다. 먼저 오늘의 첫곡으로 신데렐라의 데뷔 앨범 리드 싱글입니다.
데뷔앨범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nobody's fool>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 13위까지 오르는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죠. 원래 첫 곡으로는 <shake me>가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그만 빌보드 진입에 실패하는 바람에, 이 곡으로 보다 상업적인 기대를 가지고 데뷔하게 됩니다.
앨범은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는데요, 3백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고 앨범 차트에서는 3위까지 올라가는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다음에 소개할 밴드 포이즌과 함께 <라우드니스>의 오프닝 밴드로 첫 투어를 시작했고, 본 조비, 데이비드 리 로스 밴드등 거물 밴드들과 1987년까지 투어를 다니게 됩니다.
미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과 유럽에서도 공연을 가졌고 몬스터즈 오브 락같은 축제에도 참여하며 더욱 인기를 모으게 되죠.(한국에서는 그저 그랬지만 일본에서 이들의 인기는 대단했죠) 데뷔 이후 끊이지 않는 투어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밴드는 다음 앨범의 준비에 들어갔고, 1988년 그들의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명반인 <long cold winter>를 발매하게 됩니다.
(그들의 최고 앨범을 장식하는 최고 히트곡입니다. 확실히 뮤비의 스케일도 한 단계 진보했죠)
비록 발매 당시에는 2백만 장의 판매고로 데뷔앨범보다 저조했지만, 훗날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을 받을 정도로 판매량도 좋았습니다. 더불어 <don't know what you got>이 빌보드 싱글차트 12위에 오르며 그들의 최고 히트곡이 되었네요. 이 앨범부터 톰 키퍼가 좋아하던 블루스 색채를 더욱 짙게 띄기 시작했죠.
1989년에는 역사적 공연인 모스크바 음악 평화 축제에 오지 오스본, 스콜피온스, 머틀리 크루, 본 조비, 스키드 로우 등과 함께 합니다. 아무래도 이 당시가 신데렐라 밴드로써는 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네요. 위의 <nobody's fool>이 그 무대입니다.
1990년, 밴드는 세 번째 앨범인 <heartbreak station>을 발매합니다.
(확실히 이전 앨범들과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헤비함은 줄고 좀 더 블루스에 가까워진 느낌이죠)
전작들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주며 복고풍 하드록과 블루스로 회귀한 좋은 앨범이었지만, 대중들의 평가는 예전만 못했습니다. 앨범 차트에서는 19위를 기록하였고, 100만 장의 판매고로 예전에 비해 상당히 부진한 결과를 보여줬네요. 위에 소개한 <쉘터 미>는 싱글 차트 36위를 차지하며 top40에는 들었지만, 조금은 아쉬운 성적이군요.
그리고 제가 이번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싱글을 소개합니다. 앨범과 동명의 발라드 곡이죠.
앨범을 발매한 후 보컬인 톰 키퍼의 왼쪽 성대에 마비가 왔습니다. 그의 독특한 창법은 많은 팬들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그의 목을 갈아서 내는 소리였기에 우려되었던 증상이었죠.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를 많이 지지해 주셨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톰 키퍼 개인적으로는 정말 길고 추운 겨울이었을 듯하네요.(heartbreak station은 11월 20일에 발매되었습니다)
톰 키퍼의 성대 수술과 재활로 휴식기를 가진 밴드는, 1994년에 새 앨범 <still climbing>를 발매합니다.
1991년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이 발표된 이후, 그런지의 열풍에 휩싸인 록계엔 더 이상 예전 헤어메탈 밴드들의 음악이 통하지 않았고, 신데렐라도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새 앨범은 불과 178위에 머물렀고, 그나마도 몇 주 만에 차트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들 중 많은 수가, 이 시기에 조용히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갔죠.
영화 '웨인즈 월드'의 삽입곡 <hot & botherd>가 스틸 클라이밍 앨범에 마지막 곡으로 실렸습니다.
결국 1995년, 밴드는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이후 다시 모인 멤버들은, 머큐리 레코드에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는 사이 합을 맞췄고 1998년부터 투어를 시작합니다.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 라이브는 1999년 다른 레코드사에서 <live in the key club>으로 발매되었죠.
그리고 소니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하려 하지만 전 음반사와의 소송으로 지루한 3년을 보내게 됩니다. 베스트 앨범은 발매되었지만 이들의 새 앨범은 영영 나오지 못했죠.
https://youtu.be/lY7 DXel55 nQ
2013년 발표한 곡 <the flower song> 영상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음악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 멋지네요. 비록 창법이 거의 달라지고 외모에도 세월의 풍파가 드리웠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선 모습이 멋집니다.
(2017년 밴드의 한 컷. 키퍼 형님 길이 보소...(185cm)
계속 간헐적으로 투어를 다니던 밴드는, 2017년 11월에 더 이상의 활동은 힘들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의 역사는, 화려한 데뷔와 함께 일찍 불타오르고 빨리 사그라든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밴드의 중추이자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톰 키퍼에게 집중된 밴드다 보니, 톰 키퍼의 개인사가 겹치면서 밴드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네요.
비록 전성기가 짧았지만 비슷비슷한 밴드들이 넘쳐나던 그때, 개성 있는 음악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을 기억합니다. 톰 키퍼의 흉내 낼 수 없는 목소리 때문인지 더욱 서정적으로 들리던 그들의 노래와 함께 말이죠.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긴 글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인 금요일에 찾아뵐게요.
앞으로 연재될 밴드들 중 상당수가 사진 속에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