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가장 큰 섬은 홍콩섬이 아니랍니다
홍콩의 화려한 도심을 뒤로하고 긴 칭마대교를 건너면, 세상의 소음이 일시에 잦아드는 란타우 섬의 고요가 시작됩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짙은 안개는 옹핑 마을의 좁은 길목마다 신비로운 기운을 채우고, 그 길 위에서 유유히 거니는 야생 소들의 존재는 이곳이 문명과 자연의 경계임을 실감하게 하는데요. 대불의 장엄한 그림자 아래에서 마주하는 이 생경한 풍경은, 바쁘게 살아온 이들에게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의 근원적인 고요를 들여다보라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듯합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홍콩을 찾는 이들이 첵랍콕 공항을 통해서 적어도 두 번은 방문하게 되는 곳, 그렇지만 일부러 들여다보는 일은 많지 않은 신비한 섬, 란타우 섬의 탐방기입니다.
이미 며칠이 지나서 익숙해진 홍콩의 아침은 조던의 낡고 눅눅한 골목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빽빽한 빌딩 숲을 잠시 벗어나 보려 하는데요. 가벼운 차림으로 숙소를 나서 15분 정도 걷다 보면, 시야를 압도하는 거대한 성채, '개선문(The Arch)' 아파트를 마주하게 됩니다.
자본과 풍수가 빚어낸 그 기이한 웅장함(개선문 아파트의 큰 구멍은 용이 지나가는 길이란 의미죠)을 감상하며 육교를 건너면, 이내 엘레먼츠(Elements) 쇼핑몰의 시원한 냉기가 우리를 반기죠. 습한 열기를 뒤로하고 이 현대적인 지하 도시로 진입하는 순간, 비로소 란타우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까우룽 역에서 주황색 퉁청선(Tung Chung Line)에 몸을 싣습니다. 홍콩의 MTR은 철저히 시민들의 통근을 위해 설계된 혈맥이지만, 퉁청선만큼은 여행자에게 특별한 설렘을 허락합니다. 우리의 첫 타깃은 디즈니랜드인데요. 여기서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평일의 이곳은 꿈과 희망의 '디즈니랜드'이지만 주말에는 인파에 치여 숨이 턱턱 막히는 '디질랜드'로 돌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철역으로 연결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디즈니랜드라는 편리함은, 또 그만한 인파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거든요.
평일 오전에 출발해 딱 3시간, 홍콩만의 독점 콘텐츠를 속전속결로 타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전략입니다. 식사는 비싼 테마파크 내부보다는 다시 퉁청역이나 조던으로 돌아와 즐기는 것이 미식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일 테고요. 무엇보다도 미식의 도시 홍콩이지만, 이곳의 메뉴는 살짝 부실한 편입니다.
오후가 되어 체력이 조금 부친다면 옹핑 케이블카에 몸을 맡겨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25분간 능선을 타고 흐르는 눈이 즐거운 휴식은 란타우의 광활함을 시각적으로 소유하게 하는데요. 특히 발바닥 아래로 바다가 펼쳐지는 크리스털 캐빈에 앉아 있으면, 도심의 소음은 어느덧 먼 나라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항상 장사진이 이어지는 스탠다드 캐빈에 비해, 요금은 비싸지만 줄이 짧은 크리스탈 캐빈이 시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광객들에겐 여러모로 유용한 옵션이죠.
케이블카에서 내려 포린사의 거대 불상을 뒤로하고 타이오(Tai O) 마을로 향하는 길, 예상치 못한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는데요. 길 한복판을 유유히 점령하고 있는 거대한 소들입니다. 문명화된 홍콩에서 마주하는 이 느긋한 야생의 존재들은 우리가 비로소 섬의 심장부로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인데요. 홍콩섬과 구룡반도와는 확실히 다른,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왔음을 제대로 느끼게 해 주죠.
옹핑에서 버스나 싸우빠, 택시로 갈수 있는 타이오 마을은, 원래 작은 어촌에서 시작한 홍콩인들의 본래의 모습을 아직 간직하고 잇는 지극히 홍콩스러운 곳입니다.
타이오 마을에 들어서면 쿰쿰한 건어물 냄새와 함께 소박한 삶의 현장이 펼쳐지는데요.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의 생선 장수 할머니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와 손길엔, 그 외모와는 상반되는 순박한 정이 배어 있죠. 낡은 나무 기둥 위에 세워진 수상 가옥들 사이를 지나며 만나는 그들의 눈빛이야말로 우리가 찾던 '숨겨진 홍콩'의 얼굴입니다.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나선 보트 투어에서 남중국해의 물살을 가르는 핑크 돌고래의 빛나는 등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행운이자 보너스가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들여서 마을과 근해를 돌아보는데요. 정말로 가끔씩은 고래들의 반짝이는 유영을 목격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란타우 섬의 진면목을 제대로 마주하려면 섬 전체를 굽이치는 70km의 란타우 트레일을 빼놓을 수 없으나, 이번 원고에서는 아쉽게도 그 서사를 잠시 미루어 두었습니다. 총 12구간에 달하는 장대한 코스는 그 자체로 최소 1박 2일 이상의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여정이기 때문인데요. 짧은 방문의 호흡으로 기록을 다 담아내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분명했기에, 트레일의 끝없는 능선은 소중한 여백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만약 시간이 더 허락되어 여유가 있다면, 퉁청선을 타고 홍콩섬으로 건너가 전혀 다른 결의 여정을 즐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오션 파크에서 버스를 타고 홍콩대와 셩완을 향해 섬의 서편을 돌아보는 노선이죠.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바다 너머로 우리가 아침에 출발했던 까우룽의 마천루를 바라보는 시점의 전환은, 내가 지나온 길을 타자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보통은 오션 파크나 리펄스 베이, 스탠리 정도만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데요. 홍콩섬 남부에서 서부를 돌아보는 여정은, 주요 관광 코스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홍콩인들의 삶을 돌아보는 데는 꽤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그런 뜻에서 영상을 가져왔는데요. 여유가 되시면 편안한 맘으로 시청하시길 추천합니다.
여정의 마침표는 다시 조던입니다. 어느덧 내 집 앞마당처럼 익숙해진 미우까이(템플 스트리트)의 밤거리에 앉아, 스파이시 크랩과 맥주 한 잔을 곁들여보세요. 란타우의 야성과 조던의 생명력이 교차하는 그 찰나, 당신은 비로소 홍콩의 진짜 심장박동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식당마다 커다란 간판에 게 요리 전문점임을 써붙여 놓았는데요. 다른 메뉴들도 엄청나게 많으니, 꼭 크랩을 드시지 않더라도 식사를 즐기시는 데는 충분합니다. 혹시 식사하는 와중에 맥주 회사의 유니폼을 입은 캠페인 걸들이 술 한잔을 권유하기도 하는데요. 기분 좋게 받아주시고 계산만 하시면 됩니다. :)
섬의 끝자락 타이오 마을에서 마주하는 붉은 노을과 핑크 돌고래의 유영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순수한 생명력의 결정체와도 같은데요. 거친 파도를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는 섬의 바위들처럼, 란타우에서 길어 올린 기억의 조각들은 일상의 소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세워줍니다. 섬을 떠나는 배 위에서 멀어지는 란타우의 능선을 바라보며, 이제는 그 평온한 에너지를 가슴에 품고 다시 시작될 내일의 여정을 향해 묵직한 발걸음을 내디뎌 봅니다.
*다음 주에는 홍콩과 가깝지만 국경을 넘어야 하는 곳들을 함께 찾아가 보는 시간입니다. 심천과 마카오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