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밀도 빌딩 숲의 소음에서 벗어난 고즈넉한 풍경
조던의 숙소에서 심천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요. 하나는 미리 중국 비자를 받아 놓은 상태에서 여행사의 버스나 개인 차량으로 심천을 방문할 시 경유하는 록마차우를 통하는 방법입니다. 조던에서 록마차우로 가는 황강행 버스를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는데요. 반드시 날짜가 넉넉히 남은 중국 비자를 미리 우리나라에서 발급받아서 가야 하고, 짐은 검사를 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간소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숙소의 위치에 따라 오스틴 역에서 홍함 역으로 가서 환승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관광을 겸해서 조던에서 바로 홍함 역으로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죠. 씨우빠를 탈 수도 있으나, 홍함역 바로 옆에 위치한 홍콩 폴리텍 대학을 구경하면서 들어갈 수 있으니 여름이 아니라면 도보 쪽을 추천합니다.
MTR 홍함 역은 예전에는 광주나 심지어 상하이까지도 연결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곳이었는데요. 이제 본토로 이어지는 열차들은 모두 웨스트 까우룬 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므로, 한산한 편이었던 웨스트 까우룬 역은 활기를 더 띄게 되었고, 그만큼 홍함 역은 홍콩의 주요 교통 허브로써 홍콩 내의 승객 이동에 올인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홍콩 폴리텍 대학에서 거대한 육교를 건너면 바로 홍함 역인데요. 안내는 영어로 병기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옥토퍼스 카드 사용이 가능하고, 역 내에 맥도널드나 선물가게 등 간단하게 요기나 쇼핑을 즐길 수도 있게 되어 있죠.
플랫폼에서 이스트 레일 라인 열차를 기다릴 때는, 노란색으로 그려진 퍼스트 클래스 플랫폼에서 타 보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플랫폼에서 따로 옥토퍼스 카드를 추가로 찍어야 하는데요. 요금이 약간 더 비싼 대신에 좌석도 넓고, 대부분 앉아서 가므로 창밖의 풍경에 집중하기도 좋습니다. 반면 일반 열차는 아무래도 번잡하니 사진을 찍거나 양쪽 방향의 풍경을 구경하기는 조금 어렵죠. 만약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그냥 퍼스트 클래스에 타고 가다가 승무원에게 적발되면, 500 HKD의 과태료를 물어야 하니 꼭 카드를 찍고 타시길 추천합니다.
열차는 홍함을 출발하여 몽콕동 역에 도착하는데요. 네이던 로드 바로 옆의 몽콕은 하루 종일 번잡한 곳이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몽콕동만 해도 인구밀도가 낮아진 것이 창밖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까우룽통 역 주변은 홍콩에서 보기 쉽지 않은 저택들과 국제학교가 밀집된 곳인데요. 원래는 카이탁 공항 시절의 고도제한으로 건물의 높이가 강제적으로 낮게 유지되던 곳이었지만, 공항이 첵랍콕으로 옮겨간 지금도 그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까우룽통만은 마치 구룡반도 내의 분지처럼 저밀도 주거지구를 유지하고 있는데요. 홍콩에서도 손꼽히는 재벌들의 저택과 국제학교들, 홍콩 성시대학교와 침례대학교가 모인 최고의 학군을 자랑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브루스 리(이소룡)의 저택도 이곳에 있었는데, 지난 2019년에 소유주가 사망한 뒤 철거해서 지금은 어린이집으로 운영되고 있다네요.
열차가 사자산 터널을 지나 사틴으로 들어가면, 까우룽통의 모습과는 달리 아파트 단지로 밀집된 모습이 펼쳐집니다. 홍콩섬과 구륭반도 남부에 밀집된 인구를 분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요. 단지 주거 환경에도 많은 신경을 써서, 길도 넓은 편이고 공원이나 체육 시설도 잘 갖춰진 편입니다.
사틴을 지나 포탄 역에 도착하는데요. 주중에는 포탄으로, 주말에는 사틴 경마장으로 우회하는 노선입니다. 홍콩 섬에도 해피밸리 경마장이 있지만, 사틴 경마장의 크기는 홍콩섬의 경마장 규모를 압도하는데요. 직선 주로만 430미터로 해피 밸리 보다 120미터 더 길고, 관중석도 두 배 더 많습니다. 홍콩 시민은 전부 마위(馬耳:경마)에 미쳐 산다고 할 정도인데, 그래서인지 주말에 경기가 열리는 사틴 경마장을 위해 전철 노선도 가변적으로 운영하는 것이죠.
사틴을 지나면 시내와 달리 홍콩의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요. 아파트로 빽빽했던 풍경에서 산과 바다와 함께하는 기차 여행으로 변신합니다. 다음 역은 대학 역인데요. 홍콩에서도 명문 대학으로 손꼽히는 중문 대학교가 자리하기에 대학 역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홍콩 내에서도 광활하기로 유명한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데요. 다만 대부분의 건물들이 산등성이에 지어져서, 대학 역에서 내린다고 강의실까지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역 바로 앞의 미니버스 정류장은 항상 긴 줄이 있고, 강의가 임박한 학생들은 별수 없이 택시를 타야 하죠.
이어지는 전원의 풍경을 지나 심천과의 접경지인 셩슈이 역에 다다르면, 심천에서 식수를 끌어오는 거대한 파이프라인을 만나게 됩니다. 홍콩은 자체적으로 그 많은 인구가 쓸 상수도를 확보하지 못해서, 본토의 동강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데요. 그 사용료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지난 2024년에 중국 정부와 3년 계약을 맺었는데, 150억 위안을 지불했으니 대략 1년에 9650억 원이네요. 그렇지만 홍콩의 수도요금은 굉장히 싼 편인데요. 중국과의 계약이 갱신되면서 수도 사용료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지만, 지난 1995년 마지막 인상 이후 거의 30년간 홍콩 정부는 복지 차원에서 요금을 동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신에 홍콩 정부는 부동산과 마사회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죠. 자키 클럽(마사회)의 2024년 수익만 50조원이 넘습니다)
대신에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자는 고육지책으로, 홍콩의 하수는 식수와 분리해서 바닷물을 끌어다 쓰고 잇습니다. 아무래도 염분기가 많은 물이라서, 홍콩의 화장실은 특유의 검은 자국이 남죠. 그래서 신경써서 관리해야 합니다.
이제 이스트 레일 라인 종착역인 로우에 도착합니다. 종점이지만 굉장히 붐비는 역인데요. 바로 중국 본토 광둥 성의 심천과 접경한 역이어서, 홍콩과 심천을 다녀가려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관광객은 비즈니스맨이나 일명 보따리 장사들에 비하면 소수인데요. 각각 광둥어와 보통화, 그리고 영어를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 언어가 뒤섞이는 이곳은 거의 공항의 이민국을 방불케 하는 곳입니다.
*글이 길어져서, 심천 이야기는 자세한 입국 과정과 함께 다음 주에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