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e's Day: 연인들의 날에 울린 총성

2월 14일의 역설, 연인들의 날에 울려 퍼진 현재진행형의 비극

by 동물의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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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입니다. 초콜릿을 주고받고,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는 날이죠. 하지만 데이빗 보위는 2013년, 이 사랑의 날을 완전히 다르게 노래했습니다.


"Valentine's Day". 제목만 보면 달콤한 러브송 같지만, 이 곡은 2008년 2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NIU(Northern Illinois University)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룬 노래인데요. 발렌타인 데이, 사랑을 축하해야 할 바로 그날 학교에서 총성이 울렸고,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보위는 66세였는데요. 10년 동안 침묵하다가 2013년 앨범 'The Next Day'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현역임을 증명했습니다. 비평가들은 찬사를 쏟아냈는데요. 심지어 그의 젊은 시절의 걸작 '헝키 도리' 앨범에 비견하면서 극찬했습니다.


실제로 이 곡은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굉장히 감각적이고 흥겹죠. 펑키한 기타 리프, 춤추고 싶어지는 리듬, 66세가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젊은 에너지. 신나는 멜로디에 몸을 맡기다가, 가사를 듣는 순간 오싹해집니다. 보위는 무겁고 어두운 메시지를 경쾌한 사운드로 포장했어요. 그래서 더 소름 끼치는 겁니다.

발렌타인 데이는 살아남은 자의 시선으로 진행됩니다. 화자는 3인칭 관찰자예요. 총에 맞지 않았고, 살아남았고, 목격자로서 증언하고 있는 사람이죠.


"Valentine told me who's to go / Feelings he treasured most of all / The teachers and the football star"


"발렌타인이 누가 죽어야 하는지 말했다고.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감정들. 선생님들과 풋볼 스타."

미국 고교에서 풋볼 스타는 학교의 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인기 많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 아마도 쿼터백이나 학교 최고의 인기남이었을 거예요. 선생님들은 권위를, 풋볼 스타는 학교 계급의 정점을 상징합니다.


보위는 이 곡에서 "Valentine"이라는 이름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데요.


첫째, 사건이 일어난 날짜 - Valentine's Day. 둘째, 총을 든 가해자의 이름 - Valentine.

연인의 날과 살인자의 이름이 완벽하게 겹쳐지는 거죠.


그리고 곡 말미에서 이 아이러니는 극대화됩니다.


"It's happening today, Valentine, Valentine"


"바로 오늘 일어나고 있어, 발렌타인, 발렌타인."


이 한 줄에 모든 게 압축되어 있는데요. 발렌타인 데이를 부르는 건지, 아니면 총을 든 Valentine을 부르는 것인지, 보위는 의도적으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이 둘 다로 들리게 만들죠.


그리고 "It's happening today"의 현재진행형. 과거가 아니라 "지금", 2008년만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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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랬습니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 총기 폭력의 상징이 됐죠.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가 저지른 그 비극 이후, 수많은 사건들이 반복됐습니다. 버지니아 텍(2007), NIU(2008), 샌디 훅 초등학교(2012), 파크랜드 고교(2018), 유발디 초등학교(2022)...


당국의 노력에도 총기 난사 사건은 끊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제는 미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태국에서도 2020년 코랏 쇼핑몰, 2022년 보육원 총기 난사가 있었고, 극히 최근인 2026년 2월 11일에도 태국 남부 핫야이의 학교에서 17세 청소년이 총기 난사를 벌여 교장 선생님이 사망했죠. 같은 날 캐나다에서도 학교 총기 난사가 발생했습니다.


보위가 "Valentine's Day"를 발표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노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요.

더 놀라운 건, 보위가 가해자 Valentine을 단순한 악마로 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It's in his scrawny hands, it's in his icy heart"


앙상한 손, 얼어붙은 심장. 약하고 왜소한 존재. 차갑지만, 원래부터 그랬을까요?


"Valentine sees it all, he's got something to say, it's Valentine's Day"


발렌타인은 모든 걸 봤습니다. 그동안의 괴롭힘, 무시와 소외, 학교 계급 구조의 부조리. 그에게 할 말이 있었던 거죠. 억눌렸던 분노, 들어주지 않았던 외침. 하지만 말로는 전달되지 않았던 메시지. 게다가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사랑의 날이지만, 동시에 "그의 날(his day)". 마침내 자신을 드러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보위는 가해자도 한때는 누군가의 피해자였을 수 있다는 걸 놓치지 않아요. 학교에서 왕따당했을 수도, 풋볼 스타들에게 괴롭힘당했을 수도, 선생님들에게 무시당했을 수도 있죠. 선과 악을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 겁니다.


이게 더 무섭고, 더 슬픈 이유예요. 누구나 Valentine이 될 수 있다는...



보위는 아마도 이 모든 걸 내다봤을 텐데요. 2013년 당시 이미 콜럼바인 이후 10년이 넘도록 비극이 반복됐고, NIU 이후에도 계속됐죠, 샌디 훅에서 어린이들까지 죽었는데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It's happening today"는 단순히 2008년 2월 14일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벌어질 거라는 예언이었던 겁니다.


보위는 죽기 직전까지도 음악에 매달렸는데요. 18개월간 간암과 싸우면서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2016년 1월 8일 자신의 69번째 생일에 마지막 앨범 'Blackstar'를 발매했습니다. "Lazarus"에서 "Look up here, I'm in heaven"(여기 위를 봐, 난 천국에 있어)이라고 노래하고, 이틀 후 1월 10일 세상을 떠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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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위대한 앨범들을 남기고 승천했습니다. 아마도 화성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평생 "지구인이 아닌 것처럼" 살았던 그는, *"Life on Mars?"*라고 물었던 그는, 어쩌면 원래 화성에서 왔다가 2016년 다시 돌아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초콜릿을 나누지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울리고 있습니다. 보위가 남긴 "Valentine's Day"는 단순히 2008년 한 사건에 대한 노래가 아니에요. 계속해서 반복되는 인류의 폭력성, 그리고 그 폭력 뒤에 숨겨진 고통과 소외에 대한 노래입니다.


"It's happening today, Valentine, Valentine"


66세 보위의 섹시하고 감각적인 록 넘버 뒤에 숨겨진 이 무거운 메시지를, 오늘만큼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비극의 날이기도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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