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품격(3): 베트 미들러

누구나 인생에서 장미로 피어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이르거나, 늦거나.

by 동물의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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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 미들러.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가수보다 영화배우로 더 먼저 떠오를지 모릅니다. Hocus Pocus의 마녀, The First Wives Club의 통쾌한 아줌마, Beaches의 눈물 나는 우정... 전형적인 푸근한 백인 아줌마 인상에, 소위 말하는 디바와는 거리가 있는 외모죠.


휘트니 휴스턴 같은 소울도 없고, 머라이어 캐리 같은 음역대도 아니고, 카렌 카펜터 같은 천상의 목소리도 아닙니다. 첫인상만으로는 그냥 노래도 좀 하는 배우 정도로 넘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The Rose"를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편안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목소리의 힘에 완전히 압도되는데요. 호소력 있는 중저음, 당당한 체구에서 터져 나오는 파워풀한 성량. 쉬워 보여서 노래를 좀 부르는 여자분들이 노래방에서 도전했다가 혀를 내두르게 되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게 진짜 실력자의 특징이에요. 어려운 걸 어렵게 들리게 하는 건 누구나 하지만, 어려운 걸 편안하게 들리게 하는 건 진짜 고수만 할 수 있는 법입니다.


배우로도 가수로도 성공했지만, 베트 미들러는 늘 한 발짝 스포트라이트에서 물러서 있는 듯한 인상인데요.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지도 않고, 가십의 중심에 서지도 않고, 외모로 화제를 만들지도 않아요. 그냥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뒤돌아보면 알짜배기 상은 다 챙겼어요. 그래미 3관왕(Best New Artist, Best Female Pop Vocal Performance, Record of the Year), 골든글로브 수상, 에미상과 토니상까지. 오스카만 빠진 채 나머지는 다 거머쥔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소비되지 않아도, 실력과 작품으로만 수십 년을 버텨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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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영화 'The Rose'는 재니스 조플린을 모델로 한 비극적인 록스타 이야기인데요.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고독과 약물 속에서 스스로를 파멸시킨 여자. 베트 미들러는 그 역할로 골든글로브를 받았고, 영화의 주제가를 직접 불러서 그래미 여성 보컬 부문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화사와 스텝들이 록앤롤 주제의 작품에 너무 루즈한 분위기의 곡이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미들러 자신이 강력하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고, 결국 그녀를 대표하는 곡 중의 하나로 남았죠.



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이, 누구에게나 혹독한 인생의 쓴맛을 보는 시절이 있을 것이고 그 끝에는 찬란하게 피어날 날도 있을 텐데요. 결국 베트 미들러가 'The Rose'를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는 명확합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속도가 아닐지라도, 묵묵히 자기 안의 내공을 쌓아가는 이들에게 인생의 개화(開花)는 반드시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이죠.


절대 속상해하거나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긴 겨울의 끝자락, 차가운 흙 밑에서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시절인연(時절인연)이 존재하기 때문인데요. 조금 일찍 피어나는 장미도, 조금 늦게 고개를 내미는 장미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누구에게나 인생에 장미가 피어오르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지나는 이 추운 계절 또한, 곧 마주할 가장 진한 향기의 장미를 피워내기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https://youtu.be/jxvPjuRED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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