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일상 사이에서 차라리 승천을 선택한, 고독한 조율사
음악은 때로 잔인한 등가교환을 요구한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도 닿지 못할 창조의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평온과 목숨을 맞바꿔야만 지켜낼 수 있는 성역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 소울의 문법을 새로 썼던 천재, 도니 해서웨이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그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 살배기 꼬마가 건반 위에서 보여주었던 기적 같은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니 해서웨이는 시카고의 가스펠 성가대 지휘자였던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며, 걸음마보다 먼저 신의 선율을 배웠다.
'작은 도니'라 불리던 세 살의 소년은 이미 가스펠 싱어로 무대에 섰고, 교회당 가득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의 진동을 몸으로 익혔다. 그에게 음악은 학습된 기술이 아니라, 호흡처럼 당연하고 신성한 삶의 전제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천재'라는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고 다녔던 그는, 프로듀서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며 누구보다 소리의 결을 세밀하게 다스릴 줄 아는 조율사로 거듭났다.
하지만 타인의 음악을 완벽하게 빚어내던 그 섬세한 감각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정신적 불협화음을 견디지 못했다. 조현병과 우울증이라는 그림자가 그의 천재성을 잠식해 들어올 때, 그에게는 명확한 선택지가 있었다. 아내의 말처럼 약을 복용하면 증상은 완화되었고, 광기 어린 망상 대신 안온한 일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완화된 삶' 대신 '날카로운 예술'을 선택했다. 약 기운이 자신의 음악적 예리함을 흐린다고 느꼈던 그는, 정신을 흐리는 안락함을 단호히 거부했다. 친구이자 동료였던 로버타 플랙과 크게 다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닌,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창조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 투쟁의 대가는 혹독했다. 데뷔 후 1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활동 기간, 생전에 남긴 네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한 장의 라이브 앨범. 그의 재능을 아끼는 이들에게 이 숫자는 너무나도 적고 안타까운 기록이다. 하지만 그 적은 수의 트랙마다 서려 있는 밀도는 그 어떤 방대한 전집보다 묵직하다. 약물로 통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고통과 환희가 그 음표들 사이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망상이 극에 달해 마지막 녹음 세션을 중단해야 했던 그날, 그는 스튜디오를 나와 호텔 15층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락이라 말하지만, 그의 생애를 관통했던 예술혼을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것은 차라리 '승천'에 가까웠다. 현실의 중력이, 혹은 약 기운이 자신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할 때, 그는 자신의 창조성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비상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오늘 다시 듣는 'A Song For You'는 유독 시리고도 따뜻하다. "나는 공간도 시간도 없는 곳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그의 고백은, 어쩌면 15층 높이의 절망을 넘어 그가 도달하고 싶었던 영원한 음악적 안식처를 향한 선언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생은 짧고 비극적이었으나, 그가 지켜낸 맑은 정신의 선율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위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