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비즈니스다(17): 래리 맥페일

밤의 장막을 걷고 자본의 빛을 밝힌 승부사

by 동물의삽
20170403Baseball_700_3_9256877e-e5c7-4382-a012-6de7e498de4f-prv.jpg 메아저리그 구장에서 처음으로 야간 경기가 열란 순간

오늘날 우리가 퇴근 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야구 중계를 즐기는 일상은 1890년생의 엘리트 변호사 출신 경영자, 래리 맥페일(Larry MacPhail)의 혁신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단순한 유희를 넘어 철저한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로 재정의한 인물입니다.


그의 손자가 회상했듯, 그는 맨 정신일 땐 천재였고 술 한 잔 들어가면 찬란했으며, 취기가 오르면 아무도 못 말리는 폭주기관차였습니다. 하지만 그 폭주의 이면에는 법률가다운 치밀한 계산과 경영자로서의 냉철한 실리가 항상 공존하고 있었죠.



1. 신시내티 레즈: 대통령을 움직인 점등식과 비행기 이동


1DBA4687-D5A3-49D3-B2A7-D11BC794BE3E.jpeg 실제로 찐 야구팬이었다는 FDR

1933년 파산 직전의 신시내티 레즈 단장으로 부임한 맥페일은 '야간 경기'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1935년 5월 24일, 그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원격으로 조명 스위치를 누르게 하는 대대적인 퍼포먼스를 기획하여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는데요. 평소에 텅 비어있던 관중석은 순식간에 20,000여 명의 인파로 가득 채워졌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선수단의 컨디션 관리를 위해 메이저리그 최초로 원정길에 비행기를 도입한 혁신가였는데요. 하지만 그의 불같은 성미는 술자리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신시내티 시절, 원정지 호텔 매니저와 술을 마시다 말다툼이 붙자 한밤중에 자고 있던 선수들을 모두 깨워 "당장 짐 싸! 호텔 옮긴다!"라고 명령해 팀 전체를 이주시킨 일화는 그의 고집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 브루클린 다저스: 미디어 혁명과 수십 번의 '해고 통보'


red-barber.jpg 메이저 리그 중계라는 역사적 순간을 열었던 목소리, 레드 바버

1938년 브루클린 다저스로 자리를 옮긴 맥페일은 뉴욕 구단들 사이의 중계 담합을 깨부수고 독점 라디오 중계를 강행했는데요. 특히 1939년 8월 26일에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TV 생중계를 단행하며 '중계권료' 시대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처음에는 왜 무료로 중계하느냐 따졌던 구단주들도, 파이가 커지는 것을 목도하며 앞다투어 중계를 시작했고, 메이저 리그의 규모 자체가 달라지는 시발점이 되었죠.


레즈 시절부터 발탁한 레드 바버는 그의 복심이나 다름없었는데요. 레즈에 이어 다저스 구단에서도 목소리를 맡은 레드 바버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후 67년이나 이어진 다저스의 목소리를 발굴합니다. 바로 빈 스컬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파격적으로 밀어준 것이죠.


BullPenBrian.jpg 22세의 빈 스컬리를 발탁한 레드 바버

박찬호 선수로 인하여 메이저 리그를 처음 중계로 접한 야구팬들도 많을 텐데요. 이미 빈 스컬리 캐스터는 수십년 이전부터 류현진 선수가 다저스에서 던지던 시절까지 무려 67년을 다저스에서만 몸담으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레드 바버가 떡잎부터 그를 알아본 셈인데요. 바버의 데뷔 이후 스컬리의 은퇴까지 무려 82년이란 세월 동안 두 사람의 목소리가 메이저리그를 수놓았습니다. 인재를 알아보는 래리 맥페일 단장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불세출의 목소리들이 리그를 빛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다저스를 우승시킨 여러 선수들이나 감독들 이상으로 빈 스컬리의 업적은 대단히 존경받고 있습니다.


rawImage.jpg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단장과 감독의 악수입니다

다저스 시절 그의 가장 유명한 술 일화는 감독 레오 듀로셔와의 관계입니다. 맥페일은 술만 취하면 듀로셔에게 전화를 걸어 "너 해고야!"라고 소리를 질러댔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는 듀로셔를 최소 수십 번은 해고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전화를 걸어 오늘의 라인업을 상의하곤 했습니다.


감독 시절에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일이 잦았던 듀로셔였지만, 역시 불같은 성미의 맥페일과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한 모양입니다. 2차 대전 참전으로 인해 맥페일이 브랜치 리키에게 단장직을 넘겨주었을때도 듀로셔는 유임되었는데요. 재키 로빈슨을 편견없이 중용한 것에서도 선구자적인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3. 뉴욕 양키스: 세기의 트레이드 불발과 취중 은퇴


DIMAGIO.jpg 양키스의 기둥, 조 디마지오와 그를 술김에 트레이드하려던 단장입니다

맥페일의 마지막 행선지는 뉴욕 양키스였는데요. 그는 보수적인 양키스 스타디움에 조명탑을 설치하고, VVIP 마케팅인 '스타디움 클럽'을 도입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와 술을 마시다 의기투합하여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조 디마지오와 테드 윌리엄스를 맞바꾸기로 합의했는데요.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숙취와 함께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공포에 질려 그 거래를 조용히 없던 일로 돌렸습니다.


맥페일의 커리어 마무리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극적이었는데요. 1947년, 자신이 키워낸 친정팀 다저스를 월드시리즈에서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날, 그는 우승 파티장에서 만취하여 동료 구단주들과 선수들에게 폭언을 쏟아부었습니다. 결국 이 소동으로 인해 그는 공동 구단주들에 의해 팀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우승 후 은퇴'라는 가장 화려한 마침표가 되었죠.



MacPhail Larry Plaque 265_.jpg

정점에서 미련 없이 판을 정리하는 것, 그것은 하늘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확실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 방식이었습니다. 1978년, 그는 조지 와이스의 뒤를 이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HOF)이라는 '전설들의 호프집'에 입성하며 영원한 승부사로 남게 되었죠. 놀라운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 아들인 리 맥페일 역시 행정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같은 곳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입니다.


켄 그리피 부자나 본즈 부자 같은 수많은 야구 천재들도 필드 위에서 이루지 못한 '부자 동반 입성'을, 오직 맥페일 가문만이 경영과 행정의 영역에서 달성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이 기록은, 엘리트 변호사 래리 맥페일이 개척한 밤의 자본주의가 단발성 성취를 넘어 대를 이어 증명된 거대한 비즈니스 유산이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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