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는 비즈니스다(18): 팻 길릭

몸담은 팀마다 강팀으로 변환시킨 마이더스의 손

by 동물의삽
cd94e121ebf1668cd4a81fe20fbdc0ae.jpg 비록 블루제이스가 결승까지 올라왔지만 우승은...

메이저리그의 결승전을 두고 우리는 당연하게 '월드 시리즈(World Series)'라 부릅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북미 팀들만 참여하는 리그임에도 '월드'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한데요. 19세기말 뉴욕의 신문사인 '더 월드(The World)'가 후원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당시 미국 야구의 수준이 곧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의 발로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이 명칭은 단순한 오만함뿐임은 아닌데요. 그것은 야구라는 상품을 '로컬 게임'이 아닌 '글로벌 스탠더드'로 격상시키겠다는 선언이자, 전 세계의 자본과 인재를 빨아들이겠다는 거대한 야망의 발로였습니다. 그리고 이 '월드'라는 수식어에 가장 걸맞은 경영 행보를 보인 인물이 바로 팻 길릭(Pat Gillick)이었죠.



1. 마운드를 내려와 안목의 전장으로


패트릭 코랄 길릭(Pat Gillick). 1937년생인 그는 본래 188cm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좌완 투수였습니다. LA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꿈을 키웠으나 부상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밟아보지 못한 채 은퇴해야 했는데요.


63e88c037fea9.jpg 왼쪽이 선수 시절 팻 길릭 단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실패한 투수'는 곧장 스카우트와 프런트로 전향하며 야구사(史)에 남을 비즈니스 피벗(Pivot)을 단행합니다. 현장의 먼지 속에서 원석을 가려내던 이 시기, 그는 훗날 명예의 전당에 단 두 명뿐인 GM 출신 입성자로 기록될 위대한 안목을 완성했죠.



2. 토론토 블루제이스: 창업과 백투백 우승의 금자탑


1992-v-1993.jpg 메이저 리그 결승전을 월드 시리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블루 제이스 덕이었죠

1977년 신생 팀 토론토의 창단 멤버로 합류한 길릭은 1994년까지 단장을 맡으며 불모지에 야구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는 "신생 팀이라 어렵다"는 진부한 변명 대신, 과감한 트레이드와 팜 활용으로 팀의 체급을 올렸는데요.


특히 1992년 우승 직후, 한 번의 우승에 안주하기보다 폴 몰리터와 리키 헨더슨을 추가 영입하며 "창이 무뎌지기 전에 한 번 더 벼리는" 공격적 경영을 선보였습니다. 그 결과, 뉴욕 양키스 제외 마지막 '백투백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전설을 캐나다의 역사에 길이 남겼죠.



3. 볼티모어와 시애틀: 시스템으로 증명한 '길릭 효과'


EYpX14qXkAAsR8h.jpg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의 오리올스 라인업입니다. 친숙한 이름들이 보이네요

은퇴 번복 후 1996년 볼티모어 단장으로 복귀한 그는 71승에 그치던 팀을 단숨에 챔피언십 시리즈(ALCS)로 끌어올렸습니다. 그가 떠난 뒤 볼티모어가 14년간 암흑기에 빠진 사실은 역설적으로 '길릭 원맨 효과'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 증명하는 안타까운 예죠.


d77da597-b445-44e1-9ad2-05260ff9feb1_1140x641.jpg 116승은 1906년 시커고 컵스가 기록한 이래 역사상 최다승 타이기록입니다

2000년 시애틀에서는 최강의 좌완 에이스 랜디 존슨, 외야 수비의 핵이자 타선의 중심 켄 그리피 주니어, 곰수겸장의 대형 유격수 에이로드라는 '차포'가 모두 떨어진 최악의 상황을 인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타 의존증을 버리고 로스터의 뎁스를 강화하는 시스템 경영으로 2001년 역대 최다승 타이인 116승 매직을 팀에 선사했죠.



4. 필라델피아 필리스: 새로운 왕조의 설계자로 남다


5STEZ4CQO5HTFHOUJWM4YNHE7U.jpg 단장으로서도 고령이지만, 그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06년, 노련한 베테랑 경영자로 필리스에 부임한 그는 고비용·저효율의 팀을 완전히 재편했습니다. 하워드, 어틀리 등 기존 코어에 브래드 릿지, 제이미 모이어 같은 '저평가 우량주'들을 절묘하게 맞물려 우승의 마지막 조각들을 맞추었는데요. 이때 다져진 팀이 결실을 맺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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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자신의 세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쟁취한 그는 정점의 순간 루벤 아마로 주니어에게 자리를 넘기며 가장 완벽한 엑시트(Exit)를 기록했는데요. 그가 떠난 뒤 필리스 팬들이 '길릭의 저주'를 언급할 만큼, 그의 부재는 곧 시스템의 균열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자리에서 명예롭게 은퇴한 팻 길릭 단장을 비난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죠. 다만 길릭이 일구어 놓은 월드 시리즈 우승팀을 유지하지 못하고, 유망주와 이름값 높은 노장들을 바꿔온 후임 단장에게 팬들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역설적으로 28년 만에 우승을 일궈낸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한 후폭풍이 된 것이죠.




프로는 결과로 가치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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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길릭은 빅마켓의 자본력에만 의존하지 않았는데요. 파격적인 트레이드, 글로벌 소싱, 그리고 동물적인 타이밍 감각을 섞어 쓰며 네 개의 서로 다른 팀을 모두 지구 강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선수 시절의 결핍을 경영의 승리로 치환한 그의 삶은, 비즈니스란 결국 '자원의 한계를 안목으로 극복하는 과정'임을 대변하죠. 2011년 명예의 전당 입성은, 평생을 설계자로 살았던 한 거상에게 바치는 야구계의 가장 정중한 경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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