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요금은 신경 쓰지 마, 톰이 1973년의 마사에게 건네는 늦은 인사
톰 웨이츠는 주류 팝과는 거리가 먼, 재즈와 블루스에 실험음악을 섞어낸 독보적인 아티스트인데요. 배우로도 활동했고(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등), 그래미 2관왕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지만,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입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숨겨진 보석같은 아티스트죠.
1973년, 톰 웨이츠(Tom Waits)는 24살이었습니다. 그해 발표한 데뷔 앨범 'Closing Time'에 수록된 "Martha"는 40년 만에 옛 연인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에요. 그런데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24살 청년이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이런 감성을 가질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톰 웨이츠의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습니다. 담배와 위스키에 절인 듯한 쉰 목소리, 60대 노인처럼 거칠고 남성적인 톤. 20대 초반 청년이 아니라 인생의 쓴맛을 다 본 노년의 목소리 같았어요. 그리고 "Martha"는 그런 목소리로 60대 남자가 청춘을 되새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청년이 노인의 회한을 이토록 완벽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 이게 바로 천재성이 아닐까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Operator, number please, it's been so many years / Will she remember my old voice while I fight the tears?"
교환원에게 번호를 말하며, 수화기를 든 남자는 떨립니다. 과연 그녀가 내 목소리를 기억할까? 눈물을 참으며 묻는 거예요.
1973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습니다. 스마트폰도, 무제한 통화도 없었죠. 장거리 전화(long distance call)를 걸려면 교환원을 통하거나 특별한 식별번호를 눌러야 했고, 무엇보다 요금이 엄청나게 비쌌어요. 분 단위로 돈이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가사가 더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Hello, hello there, is this Martha? This is old Tom Frost / And I am calling long distance, don't worry 'bout the cost"
"마사, 나야, 톰이야. 장거리 전화인데, 요금은 신경 쓰지 마."
요금은 내가 다 낼게, 그냥 나랑 이야기해 줘. 40년 만에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 그 한 마디에 모든 그리움이 담긴 겁니다. 분 단위로 돈이 나가는데도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당신과 이야기하는 이 시간이 그 어떤 돈보다도 소중하다는 뜻이니까요.
2026년 우리는 스마트폰에 모든 연락처를 저장하고 살아갑니다. 무료 통화로 언제든 연락할 수 있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옛 친구들의 근황을 훔쳐볼 수도 있고요. 클릭 한 번이면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연락하기는 쉬워졌지만, 오히려 버튼을 누르기가 더 어려워진 건 아닐까요? 연락처를 보면서도 몇 년째 전화 한 통 못 거는 우리. 1973년 톰은 비싼 장거리 전화 요금을 감수하며 마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말이죠.
노래 속에서 톰은 회상합니다.
"And those were the days of roses, poetry and prose / And Martha all I had was you and all you had was me / There was no tomorrows, we'd packed away our sorrows / And we saved them for a rainy day"
장미와 시와 산문이 있던 그때. 내게는 네가 전부였고, 너에게는 내가 전부였지. 내일 같은 건 없었고, 슬픔은 비 오는 날을 위해 아껴뒀던 그 시절.
생각보다 노래는 어렵거나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지 않습니다. 멜로디는 조용하고 잔잔하고 편안하게 들리고, 감정을 과장하거나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죠.
그렇지만 듣다 보면,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회한에 점점 젖기 시작합니다. 쉰 목소리에 담긴 세월의 무게, "요금은 신경 쓰지 마"의 절절함,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데 감정은 점점 더 깊어지는... 조용히, 서서히,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거죠. 큰 울음이 아니라 촉촉한 눈물처럼 말입니다.
24살 청년이 어떻게 이런 절제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바로 톰 웨이츠의 천재성입니다.
그리고 노래는 이렇게 끝납니다.
"And I remember quiet evenings trembling close to you"
고요한 저녁, 네 곁에서 떨리던 그 순간들을 기억해.
여기서 흥미로운 해석이 있어요. 어떤 이들은 이 마지막 한 구절이 마사의 대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톰의 독백이지만, 마지막 한 줄은 전화 너머로 들려온 마사의 목소리. "나도 기억해"라는 그녀의 답변이었을 수도 있다는 거죠.
톰 웨이츠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마사가 뭐라고 답했는지, 그녀도 같은 기억을 하고 있었는지, 그 전화 통화가 어떻게 끝났는지, 두 사람은 다시 만났는지... 모든 걸 듣는 사람의 상상에 맡겼어요.
열린 결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더 슬프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못 건 사람이라면 회한으로, 당신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그리움으로, 당신이 40년 전 사랑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향수로 들리는 노래입니다.
만약 그 마지막 한 줄이 정말 마사의 대답이었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이 노래가 완전히 다르게 들리지 않을까요? 40년이 흘렀어도, 두 사람 모두 그 떨리던 저녁들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And I remember quiet evenings trembling close to you"
한 번 더 들어보세요. 이번엔 마사의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