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 길이 남을 1991년의 록/메탈 10대 명반들(상)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라는 노래를 아실 겁니다. 훗날 마돈나가 다시 불러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돈 맥클린이 이 곡을 쓰게 된 모티브는, 1959년 2월 3일 유명한 안경 록커 버디 홀리와 훗날 전기영화 '라 밤바'로 한국팬에게 친숙한 리치 발렌스, 그리고 유명 DJ이자 뮤지션이었던 빅 바퍼가 함께 유명을 달리한 비행기 사고에 있었습니다.
버디 홀리가 스물두 살이었고, 데뷔앨범으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리치 발렌스는 불과 17세의 나이였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빅 바퍼가 28세였으니, 얼마나 젊고 촉망받던 뮤지션들이 한꺼번에 사라진 참사였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소년 돈 맥클린은, 훗날 만든 노래 "아메리칸 파이"에서 그날을 '음악이 죽은 날'이라 불렀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억은 그에게 영감을 주어 미국 포크록의 손꼽히는 명곡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많은 미디어에 빈번히 노출되는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록 음악사에 있어서 따로 떼어놓고 기억될 해였던 1991년을, 다시금 되짚어 보려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위대한 음반들이 쏟아져 나왔던 1991년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창작에 힘쓰고 있는 뮤지션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죠. 그래서 오늘은 그 해 발표되었던 앨범 10개를 추려서 소개합니다.
(뮤지션의 알파벳 순입니다)
guns n' roses, use your illusion 1&2
두장의 앨범이지만 더블 앨범이 아니라 각각 발매된 앨범입니다. 음반 판매량이 가장 많았던 시대인 90년대라고는 하지만, 쉽게 기록하기 힘든 각각 7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는데요. 당시의 메탈 키즈들은 1이 낫네 2가 낫네 하면서 논쟁 벌이기를 즐겨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묵직한 반전가인 civil war,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knockin'on heaven's door, 터미네이터 2의 주제곡으로 쓰인 you could be mine, 아름다운 발라드 estraged 등이 실려있는 2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이 앨범으로 정점을 찍고는 이후 내리막길을 걸은 그들은, 결국 액슬파와 슬래쉬파로 나뉘어 분해되었고 각자의 활동을 이어나갑니다만, 이 시절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죠. 특히 작곡의 핵심이었던 이지스트래들린과의 결별 이후, 더 이상 예전만 한 히트곡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액슬과 슬래쉬와 더프가 다시 모여서 합동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있는데요, 물론 무척 반갑지만 그럴수록 이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남는군요.
단지 LA메탈로 단정 지을 수 없는 풍성한 음악을 해왔던 그들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앨범입니다. 아마 록 팬이라면 다들 소장하실만한 명반이기도 하죠. 다시 한번 cd를 찾아봐야겠습니다.
metallica, black album
보시다시피 앨범 재킷에 아무런 제목도 없습니다. 흐릿하게 인쇄된 메탈리카의 로고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 한 마리뿐이죠. 그래서 '블랙 앨범'이라고 불립니다. 이 앨범은 헤비메탈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인데요. 천오백만 장 이상을 판매한 음반 중에 아마도 가장 헤비 한 음악이 아닐까 합니다. 메탈을 잘 듣지 않는 분들도 인트로만 들어보시면, '이거 메탈리카 노래 아냐?' 하고 알아차리실 'enter sandman'이 여기 실려 있죠.
전작들이(특히 4집) 대곡 지향적이고 복잡한 구성으로, 점점 라이브에서 연주가 힘들어지는 모습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간결한 구성과 함께 4집에서 듣지 못했던 찰진 베이스 사운드를 들을 수 있습니다. 클리프 버튼의 후속으로 들어온 제이슨 뉴스테드는 엄청난 실력자인데도 불구, 이래저래 불이익을 많이 당했다는데요. 4집에서 베이스 소리가 수준 이하로 낮아져 있는 것에 대한 뒷이야기를 듣고, 저는 라스 울리히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앨범부터는 모든 파트의 사운드가 잘 살아있고, 제임스의 보컬도 금속성을 줄인 대신에 표현의 폭을 훨씬 넓혔습니다. 여러모로 록 팬들에게는 필청의 걸작 앨범입니다. 롤링 스톤지 선정 500대 명반에서는 255위로 딱 중간정도의 성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michael jackson, dangerous
'팝의 왕'이라는 수식어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했던, 우리 시대 최고의 뮤지션 중 하나인 마이클 잭슨의 데인져러스 앨범입니다. 1991년 11월에 발매된 앨범이었는데요. 발매 후 6주 만에 천만 장을 판매하면서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후 3천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 괴물 같은 앨범입니다. 물론 마이클 잭슨의 앨범 중에는 '다른 앨범만큼 팔린' 앨범이지만 말이죠.
마이클 잭슨은 팝 뮤지션이지만, 그의 곡에 록적인 색채를 넣기를 즐겨했습니다. 그의 최고작인 드릴러 앨범의 'beat it'에서는 당대 최고의 록/메탈 기타리스트인 에디 밴 헤일런이 도움을 주었는데요. 이 데인져러스 앨범에서는 위에 소개한 GN'R의 슬래쉬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에 같이 출연하기도 했죠.
뮤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앨범의 첫 싱글인 'black or white'를 기억하실 겁니다. 최초로 몰핑 기법을 동원하여 수많은 인종과 피부색을 한 화면에서 그려낸 기발한 뮤직비디오였는데요. 우리에겐 나 홀로 집에로 잘 알려져 있는 매컬리 컬킨이 출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이 black or white 말고도 에디 머피와 데이비드 보위의 아내 이만이 출연한 'remember the time',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함께 출연한 비디오로 화제를 모은 'jam' 등이 크게 인기를 끈 곡입니다.
데뷔앨범부터 계속된 성공으로 거칠 것이 없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이 앨범 이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는데요. 입에 담기도 싫은 천하의 잡것들이 벌인 무고 사건 때문에 잭슨이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제가 다 치가 떨립니다. 비록 지금은 그의 결백이 밝혀졌지만, 그는 이제 우리의 곁에 없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부디 그곳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다시금 기원합니다.
my bloody valentine, loveless
앨범 쟈켓에서부터 몽환적인 느낌이 스멀스멀 들어오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loveless'입니다. 위의 음반들과 견주어 보면 판매량 면에서는 비교하기 힘든 앨범이지만, 이른바 '슈게이징 사운드'를 대표할 수 있는 명반으로 생각합니다.
처음에 이들의 곡을 들으면 당혹스러울 수 있는데, 심한 노이즈에 알아듣기도 힘든 가사, 난해한 멜로디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듣다 보면 점점 빠져들게 되는 앨범인데요. 이들은 2013년 처음으로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슈게이징 밴드의 특성상 그야말로 신발만 쳐다보며 연주하는, 관객과의 소통 같은 건 바닥으로 날려버린 밴드이지만, 의외로 관객도 꽤 들었고 멤버들도 한국 관객들 대단하다고 칭찬했다는군요. 진심인지 립 서비스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말입니다.(다만 공연장이 악스홀이었다는군요. 사운드가 어땠을지...)
대중성과는 별로 상관없는 밴드이지만, 열광적인 팬을 소유한 밴드인데요. 특히 평론가들이 그렇습니다. 이 앨범에 대한 평가는 찬양 일색이며, 특히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500대 명반에서 이 loveless 앨범은 219위에 올라 있습니다.
nirvana, nevermind
그야말로 시대를 바꿔버린 충격적인 앨범입니다. 발매하자마자 순식간에 50만 장을 팔아치웠고, 위에 소개한 데인져러스 앨범에 이어 바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한 앨범이기도 하죠. 이 앨범 이후로 우후죽순처럼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특히 LA 메탈이나 팝 메탈 밴드들의 음악은 그런지 열풍에 밀려서 거의 사라져 버렸죠. 그리고 MTV에서는 연일 'smells like teen spirit'가 흘러나왔습니다. 이 앨범의 최종 판매고는 미국에서만 25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7500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이런 거대한 성공이, 너바나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커트 코베인에겐 행복한 일만은 아니었는데요. 특히 각종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았던 커트에겐 고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더 약물에 빠져들었고, 이는 지병인 위장병에 치명적인 악화를 불러왔습니다. 이런 악순환에 깊어진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재활 시설에 들어가기로 했는데요.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와 시애틀의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비극으로 이어졌죠.
어마어마한 매스컴의 노출과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 갑작스러운 인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커트,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그를 품어주지 못했던 가정사 때문에, 또 하나의 젊은 천재가 생을 달리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은 90년대 가장 중요한 앨범 중 하나로 뽑히며, 롤링 스톤즈의 500대 명반에서는 17위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순위가 어느 정도의 위치인가 하면, 비틀스, 비치 보이스,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롤링 스톤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글이 길어져서 후반부 다섯 앨범은 다음 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