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정원에서: 엘튼 존의 가장 사적인 애가

엘튼 존이 레논을 추모하는 가장 고귀한 곡, 'empty garden'

by 동물의삽


45년 전 오늘인 1980년 12월 8일 밤, 존 레넌이 다코타 아파트 앞에서 총탄에 쓰러졌을 때, 대중은 비틀스의 전설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그러나 엘튼 존이 잃은 것은 전설이 아니라 친구였다. 호주 투어 중 비행기 안에서 이 소식을 접한 그는 공연장에서 〈Imagine〉을 불렀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로 레넌을 애도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1982년 앨범 〈Jump Up!〉에 수록된 〈Empty Garden (Hey Hey Johnny)〉은 그렇게 탄생했다. 작사가 버니 토핀이 레넌 사망 다음 날 완성한 가사를 1년여 동안 묵혀두었다는 사실은 이 곡이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상실을 소화하는 과정 그 자체였음을 암시한다.



비틀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애도의 자격


이 곡의 가장 큰 미덕은 '비틀스의 존 레넌'이 아닌 '인간 존 레넌'을 호명한다는 점이다. 레넌 사후, 폴 매카트니는 〈Here Today〉(1982)를 통해 화해를 시도했고, 조지 해리슨은 〈All Those Years Ago〉(1981)에서 비틀스 시절의 우정을 회고했다. 그러나 이들의 추모에는 필연적으로 비틀스라는 역사적 무게와 해소되지 않은 갈등의 잔향이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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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엘튼 존은 이 역사적 부담에서 자유로웠다. 그는 1974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레넌과 함께 무대에 섰던 동료이자, 션 레넌의 대부로서 레넌의 사생활을 공유했던 몇 안 되는 친구였다. 이 곡에서 "Johnny"라는 애칭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적 친밀감 때문이다. 공적 아이콘이 아닌 사적 개인으로서의 레넌을 부를 자격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은유의 층위: 정원, 수확, 그리고 놀이


토핀의 가사는 정교한 은유의 그물망으로 짜여 있다. "And he left me in the empty garden / With only good crop to keep me"라는 구절에서 'good crop(좋은 수확물)'은 레넌이 남긴 음악적 유산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풍성함'이 아니라 '텅 빔'이다. 아무리 위대한 유산이 남아 있어도, 그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사라진 정원은 공허할 뿐이다.


"정원(garden)"이라는 단어는 세 겹의 의미를 품는다. 첫째, 1974년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섰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Madison Square Garden)이다. 둘째, 창작의 공간, 즉 음악이라는 정원이다. 셋째, 레넌이 말년에 몰두했던 가정생활과 은둔의 상징이다. 레넌은 1975년부터 1980년까지 5년간 공식 활동을 중단하고 아들을 키우며 "집안의 정원사(househusband)"를 자처했다.


후렴구 "Hey hey Johnny, can't you come out to play?"는 레넌이 1968년 작곡한 〈Dear Prudence〉의 "won't you come out to play?"를 직접 인용한다. 원곡에서 이 구절은 명상에 빠져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미아 패로의 여동생을 향한 권유였다. 토핀은 이 구절을 뒤집어, 이제는 영원히 나올 수 없는 친구를 향한 간청으로 변형했다. "won't you(나오지 않겠니)"가 "can't you(나올 수 없니)"로 바뀐 것은 단순한 수사적 변주가 아니라, 가능성이 불가능성으로 전환된 비극의 핵심을 찌른다.



음악적 절제: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기


놀랍게도 이 곡은 애절한 발라드가 아니다. 미디엄 템포의 소프트 록으로, 엘튼 존 특유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도 절제되어 있다. 오프닝은 추모곡이라기엔 경쾌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음악적 선택은 역설적으로 상실의 무게를 더한다.


1980년대 초 팝 음악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은 의도적으로 1970년 대적 사운드, 즉 레넌이 활동했던 시대의 질감을 유지한다. 과도한 감상이나 극적 클라이맥스 없이 담담하게 흐르는 멜로디는, 일상 속에서 문득 찾아오는 상실감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한다. 비통함을 외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비통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엘튼 존의 보컬 처리다. 그는 이 곡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감성적인 고음 부분을 봉인한다. 대신 중음역대에서 거의 대화하듯 노래한다. 마치 무덤 앞에서 혼잣말을 하듯, 더 이상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을 거는 사람처럼.



추모의 윤리: 애도와 전유 사이


레넌 사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를 추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모곡은 고인을 자신의 메시지를 위한 도구로 전유하는 함정에 빠졌다. 레넌의 평화주의를 강조하거나, 비틀스의 영광을 회고하거나, 때로는 자신의 슬픔을 과시하는 데 급급했다.


〈Empty Garden〉이 예외적인 것은, 이 곡이 레넌에 '대해' 말하기보다 레넌'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Johnny, 나와서 놀자"는 대중을 향한 선언이 아니라, 부재하는 친구를 향한 사적 호소다. 토핀과 엘튼 존은 레넌을 상징으로 만들기를 거부하고, 그를 여전히 호명 가능한 타자로 남겨둔다.


이는 또한 추모의 윤리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죽은 자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그들의 업적을 박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들과 나눴던 관계의 고유성을 보존하는 것인가? 〈Empty Garden〉은 후자를 선택한다. 레넌이라는 거목이 쓰러진 뒤 남은 것은 그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와 함께했던 정원의 공허함이라고 이 곡은 말한다.


https://youtu.be/SWyy7Huc6KA



여운: 상실은 어떻게 노래로 남는가


〈Empty Garden〉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82년 빌보드 핫 100에서 13위에 오르는 데 그쳤고, 엘튼 존의 다른 히트곡들에 비하면 대중적 인지도도 낮다. 그러나 이 곡의 가치는 차트 순위가 아니라, 추모곡이라는 장르에 대한 근본적 재사유에 있다.


이 곡은 증명한다. 가장 사적인 애도가 때로 가장 보편적 울림을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진정한 추모는 고인을 영웅화하거나 신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의 고유함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것이라는 것을.


1974년 11월 28일, 엘튼 존과 존 레넌이 함께 섰던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무대는 이제 텅 비어 있다. 그러나 〈Empty Garden〉이라는 노래가 존재하는 한, 그 정원은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여전히,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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