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티 앤 더 블로피시의 'Let Her Cry'가 숨긴 진실
"She sits alone by a lamp post, trying to find a thought that's escaped her mind."
처음 이 가사를 들었을 때, 나는 그저 시적인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가로등 옆에 홀로 앉아 흩어진 생각을 주워 담으려는 여자. 낭만적이고, 우울하고, 어딘가 예술적으로까지 들렸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이건 시가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취해 있었다. 술이든, 약물이든, 아니면 자신만의 고통이든. 가로등에 기대앉아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있는 사람. 생각이 '도망갔다'는 건, 더 이상 제대로 사고할 수 없는 상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Darius Rucker는 그 장면을 시처럼 노래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의 절망을 아름답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두서없이, 갑자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 아빠예요. 그리고 Michael Stipe도 그만큼 좋아해요."
아버지를 가장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나 이해한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이름이 문제였다. R.E.M.의 보컬, 얼터너티브 록의 전설, Michael Stipe. 만난 적도 없을 록스타의 이름이,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바로 다음에 놓였다.
화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로 곁에 있는 사람, 그녀가 울 때마다 함께 있어주는 사람,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인 자신은... 그 리스트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 우선순위 어디에도 자신의 자리는 없었다. 심지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록스타보다도.
더 잔인한 건, Michael Stipe가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는 점이다. R.E.M.은 Hootie & the Blowfish를 포함한 모든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의 조상이자, 길을 닦아준 존재다. 화자도 아마 그를 존경했을 것이다. 같은 씬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그 전설을 아버지 다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Michael Stipe는 동료에서 연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길 수 없는 연적. 신화 같은 존재와 어떻게 경쟁하겠는가.
후렴구는 이렇게 반복된다.
"Let her cry, if the tears fall down like rain
Let her sing, if it eases all her pain
Let her go, let her walk right out on me
And if the sun comes up tomorrow, let her be"
그녀가 울게 내버려둬. 그녀가 노래하게 내버려둬. 그녀가 떠나게 내버려둬. 그리고 내일이 온다면, 그녀를 그냥 내버려둬.
많은 사람들이 이 가사를 '체념'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읽는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사랑의 가장 고통스러운 형태다.
화자는 말하고 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것이 너를 치유할 수 있다면, 가도 괜찮다고. 내가 없는 게 네게 더 나은 일이라면, 나는 물러서겠다고.
하지만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떠나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오히려 더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걸. 그럼에도 문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믿기 때문에.
"내일 해가 뜬다면"이라는 표현에는, 내일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배어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 어딘가에서, 그는 그저 기다린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에 응답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문제로 힘들어서, 누군가의 호의조차 제대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사람.
그녀도 미안했을 것이다. 고마웠을 것이다. 동시에 무력했을 것이다.
"아빠와 Michael Stipe을 사랑한다"고 말한 건, 어쩌면 무의식적인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눈앞에 있는 진짜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택하는, 슬픈 거리두기.
일방통행 사랑은 때로 중독보다 더 아프다. 중독은 적어도 '이게 나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치료의 경로가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은 아무도 잘못한 게 없다. 그녀는 그저 자기 삶을 살고 있을 뿐이고, 화자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화자는 스스로 선택해서 그 고통 속에 머문다. 'let her cry'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곁을 지킨다.
이것이 희망고문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Darius Rucker가 이 노래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알콜 중독자는 'she'가 아니라 Darius Rucker 본인이었다.
노래 속 성별이 바뀐 것이다. 가로등 옆에 취해 앉아 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그'였다. 생각이 도망간 사람, 무너져 있던 사람, Michael Stipe을 아버지 다음으로 사랑한다고 두서없이 말했던 사람은... Darius Rucker 자신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지켜봐주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모든 것이 다르게 들린다.
"Let her cry"는 사실 "Let me cry"였다.
Rucker는 자신이 무너져 있을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의 입장에서 노래를 쓴 것이다. 자신을 떠나도 괜찮다고, 자신을 내버려둬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던 그 사람. 자신이 울고, 노래하고, 심지어 떠나가도 그저 지켜봐주었던 사람.
그 사랑을 받는 입장이었던 Rucker는, 그 사랑을 주는 입장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이다.
중독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안다.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는지, 얼마나 아픈지 안다. 떠나고 싶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그 마음을, 사랑하지만 도울 수 없는 그 절망을 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사과이자 감사다.
"나를 떠나도 괜찮아. 나를 울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그게 네게 더 나은 일이라면."
이렇게 말해준 사람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아픈 고백.
성별을 바꾼 이유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Rucker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90년대 중반, 흑인 록 보컬로서 이미 특별한 위치에 있었던 그가, 자신의 중독과 무너짐을 '나'라는 1인칭으로 노래하기엔 너무 날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울을 만들었다. 자신을 '그녀'로 바꾸고, 자신을 지켜봐준 사람을 '나'로 만들었다. 관점을 전환함으로써, 자신이 받았던 사랑의 무게를 노래할 수 있었다.
이 선택이 노래를 보편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화자가 될 수도 있고, '그녀'가 될 수도 있다. 일방적으로 사랑해본 사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껴본 사람도, 모두 이 노래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다시 듣는다.
"She sits alone by a lamp post..."
이제 나는 안다. 저 가로등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취해서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있던 사람, Michael Stipe을 사랑한다고 두서없이 중얼거리던 사람.
그것은 젊은 Darius Rucker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지켜봐주었다. 그가 울게 내버려두고, 노래하게 내버려두고, 떠나게 내버려두면서도, 결국 곁을 지켜준 사람.
Rucker는 그 사랑을 평생 기억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썼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이해하면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화자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그녀'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let her be'라고 말해야 했던 순간. 누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던 순간. 자신이 무너져 있을 때 누군가 곁을 지켜주었던 기억. 그리고 그 사람이 느꼈을 고통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
Darius Rucker가 이 노래를 쓴 건, 어쩌면 치유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이해하고, 자신이 주었던 고통을 인정하고, 그 모든 것을 아름다운 형태로 승화시키는.
그의 소울풀한 목소리로 부르는 "let her cry"는, 사실 "나를 울게 내버려둬도 괜찮았어,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라는 뒤늦은 고백이었다.
램프 기둥 옆, 그가 앉아 있던 자리는 이제 비어 있다.
Rucker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고, 성공했고, 나중에는 컨트리 가수로 다시 태어났다. "Wagon Wheel"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소울이 있지만, 그 안의 고통은 치유되었다.
하지만 이 노래는 남았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누군가 가로등 옆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그를 지켜볼 때, 우리는 이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은 때로 지켜보는 것이고, 때로 지켜봐지는 것이며, 결국 우리는 둘 다 경험한다는 것을.
"Let her cry, let her sing, let her go."
그것은 사실, "나를 울게 내버려둬줘서 고마워"라는 뒤늦은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