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 예찬

계란을 톡! 깨뜨리는 순간, 다시 살아나는 3,000원의 기억

by 동물의삽


1.


나는 순두부찌개를 참 좋아한다.


1990년대 말부터 자취를 시작했으니, 웬만한 찌개는 다 끓일 줄 안다.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김치가 냉장고 안에서 긴 휴식을 취하다 과하게 발효하면, 그날 이후로는 신김치 소진 작전이 펼쳐진다. 김치를 볶다가 참치캔 하나를 넣고 푹 끓이다 다진 마늘과 대파로 장식하는 김치찌개를 매일 먹다시피 했다.


또 가끔씩 된장찌개가 먹고 싶으면, 집에 있는 멸치 다시다로 육수를 만들고, 된장 크게 두스푼, 감자 하나 애호박 반개 양파 반 개 두부 반모, 그리고 냉장고 속에 버섯이 있다면 느타리든 팽이든 새송이든 가리지 않고 썰어 넣고, 킥으로 고추장을 한 스푼 섞어주면 맛있는 된장찌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순두부찌개는 달랐다.


2.


당시 다니던 학교 앞에 분식집이 있었다. 라면 일번지. 그런데 더 기억에 남는 이름이 있다.


라.일이 문을 닫는 밤이 되면 열리는 곳, 이름도 재미있는 게 "카페를 차리려다 실패한 포장마차"(일명 카.실.포)가 그 자리에 열리곤 했다.


90년대 말의 자조적이면서도 솔직한 감성. 실패를 유머로 승화시킨 긴 이름. 그 시절, 그런 이름이 통하던 시대였다.


라면 일번지의 주 메뉴는 대접에 밥을 담고, 그 위로 라면을 부어준 '라면 덮밥'이었다. 신라면을 쓰면 신라면 덮밥, 너구리를 쓰면 너구리 덮밥, 짜파게티를 쓰면 짜파 덮밥이라고 했다. 가격은 2,500원 정도였다.


당시 학식이 1,500원에서 2,000원 사이였으니, 라면 덮밥은 500원에서 1,000원 정도 비쌌다. 매일 먹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가끔 먹기에는 아주 좋았다.


3.


그런데 순두부찌개는 유일하게 3,000원을 넘었다.


학식보다 1,000원 이상, 라면 덮밥보다도 500원 이상 비쌌다. 20대 자취생에게 그 차이는 컸다. 커피 한 잔 값이었고, 담배 한 갑 값이었다.


하지만 순두부를 시키면, 김치와 단무지 외에도 어묵볶음이나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은 어육소시지까지 화려한 한상이 차려졌다. 사장님의 정성이 느껴지는 반찬들. 3,000원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날 술을 한잔하고 다음 날 점심으로 순두부찌개를 시켜 먹으면, 그게 최고의 해장이었다.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 한 숟가락. 부드러운 순두부와 고소한 참기름. 계란 노른자가 터지며 섞이는 순간. "살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순두부찌개는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숙취로 무너진 나를 다시 세워주는 구원이었다.


4.


세월이 흘렀다.


라면 일번지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사장님도 나이가 드셨을 것이다. 그 자리엔 다른 가게가 들어섰을 것이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 다시 개업한다면 아마 쪽박을 찰 거라는 것도 안다.


요즘은 김치찌개, 된장찌개 밀키트가 마트에 쌓여있는 시대다. 데우기만 하면 된다. 편하다.


하지만 나는 순두부찌개만큼은 직접 끓인다.


순두부찌개는 나에게 특별한 음식이니까.


5.


레시피는 간단하다.


2,000원이 되지 않는 고추참치 한 캔과 고추기름 한 스푼, 참기름 한 스푼, 새송이버섯 약간, 애호박 약간, 양파 1/4개, 대파와 마늘 다진 것을 넣고 볶다가, 물을 빼둔 순두부를 넣고 국간장 한 스푼, 그리고 종이컵 한 컵 분량의 멸치 육수를 넣고 끓인다.


마지막으로 계란 한 알을 톡!


그러면 정말 맛있는 순두부찌개가 완성된다.


원가는 3,000원도 되지 않는다. 외식으로 먹으면 8,000원에서 10,000원을 내야 하는 음식을. 어느새 가성비 최고인 음식이 되기도 했다.


매일 먹으라 해도 물리지 않는다.


6.


90년대 말, 3,000원짜리 순두부찌개는 프리미엄 메뉴였다. 학식보다 비쌌고, 라면 덮밥보다도 비쌌다.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며 비틀거리다 포장마차로 향하던 그날들.


2025년, 3,000원도 안 되는 원가로 집에서 끓이는 순두부찌개는 일상식이 되었다.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계란을 톡! 깨뜨리는 순간, 나는 여전히 그때를 생각한다. "카페를 차리려다 실패한 포장마차"의 대접. 화려한 한상. 어육소시지에 입혀진 계란옷. 사장님의 정성.


그리고 한 숟가락 뜨고 나면 "살 것 같다"던 그 순간.


7.


오늘도 나는 순두부찌개를 끓일 것이다.


고추참치를 볶고, 순두부를 넣고, 멸치 육수를 붓고, 계란을 톡! 깨뜨릴 것이다.


3,000원도 안 되는 원가로, 10,000원짜리 외식의 만족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한 숟가락 뜨면서 생각할 것이다.


30년 전, 3,000원이 특별했던 그날을. 그 맛을. 그 위로를.


순두부찌개는 그렇게, 내 인생에서 특별한 음식으로 남아 있다.


프리미엄에서 가성비로, 해장식에서 일상식으로, 포장마차에서 집밥으로.


변한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더 많다.


계란을 톡! 깨뜨리는 순간의 설렘.


그리고 첫 숟가락의 위로.


그것만은, 30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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