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만큼 먼 베토벤과 ELO, 한 푸른 밤으로 만나다

차트가 가르쳐주지 않은, 앨범 한 장을 통째로 사랑했던 이들의 이야기

by 동물의삽

금요일 밤이네요. 밖은 한 주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과 내일을 향한 기대감이 뒤섞인 열기로 가득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창밖으로 들리는 소음들이 오늘따라 먼 우주의 소리처럼 생경하게 느껴지네요.


문득 베토벤의 비창 2악장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프 린의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를요. 클래식의 숭고함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실험적 사운드. 이 둘 사이의 간극은 사실 우주만큼이나 멀지만, 우리에게는 '미드나잇 블루'라는 하나의 푸른 이름으로 묶여 기억됩니다.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일입니다. ELO의 「Midnight Blue」는 정작 서구권에서는 싱글로 발매되지도 않았던 곡이거든요. 차트 순위에 연연하는 시장의 논리로 보면 그저 앨범 중간을 채우는 조용한 트랙 정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죠.


지금처럼 스트리밍으로 곡 하나만 찍어 듣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앨범을 통째로 샀어요. 1번 트랙부터 마지막 곡까지, 가사집의 종이 냄새를 맡으며 긴 호흡으로 음악을 들었죠. 그렇게 앨범 구석구석을 씹어 삼키던 리스너들은 누군가 정해준 타이틀곡이 아닌, 자신만의 보석을 발견해 냈습니다. 그게 바로 「Midnight Blue」였습니다.


이 곡이 가진 감미로운 멜로디 이면에 제프 린이 추구했던 프로그레시브 록의 치밀한 설계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없었어요. 음악다방의 낡은 테이블 위 쪽지에 눌러쓴 신청곡이 되어, 밤을 지키던 라디오 DJ의 다정한 음성을 타고 흐르며, 이 곡은 우리들의 밤을 위로하는 가장 흔하면서도 귀한 정서가 되었으니까요.


누군가는 베토벤의 비창을 팝으로 재해석해 미드나잇 블루라 불렀고, 누군가는 록의 거친 호흡을 담아 같은 제목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수많은 푸른 밤들 사이에서 우리가 끝내 찾아낸 건, 제프 린의 그 나른하고도 애틋한 목소리였습니다.


지금쯤 밖에는 금요일 밤의 열기를 즐기는 연인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그저 꿈꾸며 살아가죠. 혹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어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텅 빈 적막 앞에서 혼자만의 외로움을 견뎌내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https://youtu.be/YtbEZlXY8fs


그대에게 이르는 외로운 길을 바라보며, 끝내 하지 못할 말들만 입가에 맴도는 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침이 오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은 고독을 껴안은 사람들.


저는 오늘 그런 이들을 위해 이 곡을 꺼내놓고 싶습니다. 거창한 위로나 뜨거운 열기 대신, 우리들의 짙고 푸른 고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을요.


오늘 밤, 당신의 방 안을 채울 선율은 어떤 색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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