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세상 까칠했던 쇠파이프의 수호신, 오락실 사장님
20세기 오락실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동전 넣는 소리나 게임의 배경음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오락실이라는 해방구를 지키던 한 인물의 모습입니다.
1980년대 중반, 서초동 남부터미널 (당시 화물터미널) 근처 오락실의 사장님은 그 시절 어른의 전형이셨습니다. 키는 크지 않으셨지만, 언제나 새까만 기지바지를 배 위까지 바짝 치켜올려 입고, 그 위에 하얀 러닝셔츠(난닝구)만 입은 채 카운터에 앉아 계셨죠. 바지 주머니에 동전을 한 움큼 넣고 절그럭 소리를 내며 우리의 100원을 꿈과 환전해 주던 그 모습. 그것이 바로 오락실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러닝셔츠만큼이나 까칠한 면도 있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 정도 카운터를 비우고 순찰을 도실 때면, 주머니가 비어 남의 플레이만 구경하는 아이들에게는 가차 없으셨죠. "마! 집에 가가 공부하지, 여서 뭐 하노!" 그 호통 소리에 꼬리를 내리고 쫓겨나면서도, 우리는 그 속에 담긴 어른의 잔소리 같은 정(情)을 알았습니다. 오락실은 우리의 해방구였지만, 그분은 우리의 탈선을 막는 최소한의 브레이크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진정한 가치는 위기 때 드러났습니다. 가끔 동네 왈패들이 들어와 학생들의 주머니를 털려고 하면, 사장님은 말없이 카운터 안에서 쇠파이프를 꺼내 들고 나오셨습니다. "끄지라, 이 자슥들아!!" 평소에는 까칠했던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일갈은, 그 어떤 게임의 최종 보스보다 강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우리들의 100원짜리 꿈을 지켜준, 까칠하지만 멋졌던 오락실의 수호신이셨습니다. 이제 그 수호신이 지키던 공간 속에서, 우리의 시간과 동전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던 전설적인 게임들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1986년 발매된 게임들 위주로 15편을 골라보았습니다. 아타리가 무너지고 닌텐도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세가도 가정용 콘솔에 뛰어들면서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는데요. 명작 게임이 너무 많아서, 1986년 단 한해만 해도 15개는 우습게 넘기더군요. 그래서 이번 편은 1986년 단독입니다. 아래 소개하는 게임들을 보시면, 왜 제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가실 겁니다.
따라서 오늘도 상하로 나뉘어 연재되는데요. 일단 5시에 상편을, 9시에 하편이 나갈 예정입니다. 하편에 어떤 게임들이 나올지 궁금하신 분들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알카노이드, 타이토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타이토의 신개념 게임입니다. 오락실에 새 기계가 들어왔는데, 항상 보던 스틱 대신에 다이얼이 붙어서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어떤 브릭들은 없애면 아이템이 나오는데, 플레이어 기체를 옆으로 늘려주는 것, 자석, 총알 나가는 게 최고였죠. 볼 3개 되는 아이템 걸리면 낭패!
버블보블, 타이토
오락실을 가득 채웠던 마성의 BGM은 훗날 서태지의 '마지막 축제'에서 저는 이 게임의 브금이 들리더군요.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놀라운 게임성,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룰까지 수많은 국딩들을 오락실로 인도했던 명작 게임입니다. 2인 연계 플레이도 가능해서 친구랑 엄청 재미있게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글래디에이터(황금성), 타이토
영상을 보면 방패를 위아래로 흔드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아재 게이머라면 왼손 오른손 바꿔서 열심히 흔들었던 기억이 다 있으실 겁니다. 상-중-하단 공격으로 나뉜 전략성과 마지막 일격의 손맛까지 아주 잘 만든 게임이었죠. 중간의 여기사는 참...
이카리, SNK
역시 2인용으로 친구들과 재미있게 즐겼던 이카리입니다. 탱크를 얻었을 때의 학살(?)의 쾌감과, 수류탄 아끼다가 실컷 모아놓고 죽어버릴 때의 분노가 잘 섞인 게임이었죠.
원래 이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8 각형 조이스틱이 필요했는데요. 그런 것 없이도 해적판으로 클리어했던 국딩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쟈칼, 코나미
오직 위로만 발사되는 기관포와 차량 진행방향으로만 나가는 바주카가 잘 조화되었던 게임입니다. 중간중간 포로 구출 요소도 있어서 박진감 넘쳤죠. 특히 탱크와도 맞짱 뜨는 야전 지프의 활약은 정말... 열심히 구해낸 포로들을 태운 헬기가 날아갈 때면, 왠지 뿌듯했었던 기억도 나네요.
아웃런, 세가
레이싱 게임의 원조격인 남코의 폴 포지션에서 획기적으로 발전된 게임성과 그래픽을 보여주는데요. 도로 위를 달리는 여러 가지 차량들과 훨씬 부드럽고 자연스러워진 배경 그래픽, 그리고 제한시간의 짜릿함까지 갖추고 있었죠. 제대로 잘 만든 레이싱게임 하면,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세가의 역작입니다.
로보레스 2001, 세가
이 게임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알파벳 로봇을 하나쯤 간직하고 계실 겁니다. 영상 초반에 나오는, J의 필살기로 피니쉬를 먹이는 효과는 엄청나게 호쾌했죠. 개인적으로는 C로 재미있게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B를 잘하는 애들도 있었는데, 괜히 옆에서 일본 로봇으로 한다고 놀리곤 했죠.
*저녁 아홉 시에 하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