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가득한 미 서부, 그 빛과 그림자를 노래한 10곡의 연대기
캘리포니아. 이 이름을 말하는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눈부신 태양과 끝없이 펼쳐진 해변, 그리고 금발의 서퍼들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그것은 20세기가 우리에게 심어준 가장 강력한 환상, 바로 '캘리포니아 드림'입니다.
하지만 그 눈부신 빛 뒤에는 따라다니게 마련인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the father to the man)"라는 오래된 시구처럼, 순수했던 시절의 꿈은 종종 타락한 현실의 거울이 되어 우리를 비추곤 하죠.
오늘 우리는 1970년대의 환멸부터 90년대의 냉혹한 현실까지, 캘리포니아 팝의 역사를 수놓은 10곡의 명곡을 통해 묻고 싶습니다. 과연, 캘리포니아 드림은 존재하는가?
60년대의 순수한 파티가 끝나자, 70년대의 뮤지션들은 화려한 도시 뒤의 공허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1. The Doors - L.A. Woman (1971)
짐 모리슨이 바라본 LA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위험하고 관능적이며, 동시에 고독한 여인이기도 했죠. 그는 불타오르는 듯한 블루스 록 위에서 LA를 '밤의 도시'로 정의합니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감춰진 도시의 불안한 정체성, 그것이 70년대의 첫 장면이었는데요.
동시에 이 곡은 짐 모리슨 자신이 LA에게 바치는 작별 인사가 되었습니다. 실제 그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27세의 짧은 생을 마쳤죠.
2. The Beach Boys - Surf's Up (1971)
https://youtu.be/i1 HJ35 p1 Bm8
가장 '캘리포니아적인' 밴드였던 비치 보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서핑은 끝났다(Surf's Up)'고 선언하는데요. 이 곡은 단순한 서프 록이 아닙니다. 브라이언 윌슨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가사를 통해, 잃어버린 순수함이 어떻게 물질에 찌든 기성세대를 비판하는지 묘사하고 있는데요.
당시엔 외면받았지만, 훗날 재평가된 이 자조적인 걸작은 캘리포니아 드림의 몰락을 예견한 예언서로 남았습니다.
3. Eagles - Life in the Fast Lane (1976)
https://youtu.be/PhC7 Gh84 CdY
70년대 중반, LA의 부유층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시작합니다. 이글스는 '추월차선에서의 삶'을 통해 성공과 향락, 마약으로 점철된 당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폭로합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멈출 수는 없어." 이 한마디는 화려함 속에 갇힌 캘리포니아의 자멸적인 초상입니다.
그들의 걸작 앨범 호텔 캘리포니아 자체가 결코 꿈과 희망의 상징과는 거리가 멀죠.
4. Fleetwood Mac - Go Your Own Way (1977)
https://youtu.be/ozl3 L9 fhKtE
LA 스튜디오 시스템의 완벽한 기술력으로 빚어낸 사운드, 하지만 그 속에는 멤버들의 처절한 이별과 감정적 파탄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비극마저 가장 상업적인 성공으로 치환되는 곳. 이 곡은 화려한 성공의 대가가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더불어 연인 관계가 끝장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고 투어를 돌았을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이별 노래이기도 하죠.
레이건 시대의 호황이 절정에 달했던 1984년, 캘리포니아 음악은 빛과 어둠,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장 극명하게 충돌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합니다.
5. Van Halen - Jump (1984)
https://youtu.be/SwYN7 mTi6 HM
에디 밴 헤일런의 신시사이저는 캘리포니아의 태양만큼이나 밝고 강력했습니다. 기존의 록 형식을 파괴한 이 거침없는 긍정 에너지는 "뛰어올라(Jump)!"라고 외치며 80년대 LA의 낙관주의와 기술적, 상업적 승리를 상징했는데요.
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 곡의 도입부는 다들 들어보셨으리라 믿어집니다. 또한 수많은 스포츠 팀에서 응원가로 쓰였죠.
6. Metallica - Fade to Black (1984)
같은 해, 조금 위쪽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정반대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메탈리카는 LA의 파티 분위기와 달리 내면의 깊은 심연과 우울, 자살 충동을 노래합니다. 캘리포니아에는 밝은 태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짙은 안갯속에 가려진 고독한 영혼들, 그것이 80년대의 또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은 오히려 80년대가 그리워질 지경이 되었죠.
7. Madonna - Material Girl (1984)
그리고 그해 겨울, 마돈나는 쐐기를 박습니다. 록 밴드들이 고뇌하거나 질주할 때, 그녀는 스스로를 완벽한 '상품'으로 포지셔닝합니다. 물질만능주의를 비꼬는 동시에 그것을 가장 세련되게 소비하는 그녀의 태도는, 할리우드 시스템이 도달한 상업주의의 정점이었습니다.
결국 마돈나는 장르를 넘나드는 최고의 여성 아티스트로 우뚝 올라섰죠.
80년대의 과잉이 지나간 자리, 남은 것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과 냉혹한 현실뿐이었습니다.
8. Guns N' Roses - Sweet Child O' Mine (1987)
https://youtu.be/1 w7 OgIMMRc4
가장 위험하고 퇴폐적인 LA 록 밴드가 부른 가장 순수한 사랑 노래. 이 아이러니는 질주 끝에 남은 공허함을 보여줍니다. 곡의 마지막, 액슬 로즈가 목 놓아 부르는 "Where do we go now?"는 비록 밴드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길을 잃어버린 80년대 청춘들의 마지막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곡의 주인공인 액슬의 아내 에린 에벌리와의 결혼생활은, 8개월 만에 파경을 맞고 말았다네요.
9. Green Day - When I Come Around (1994)
https://youtu.be/i8 dh9 gDzmz8
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청년들(Green Day)은 더 이상 스타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산된 성공 대신, 루저의 감성과 날것의 반항을 노래했습니다. 꾸며진 꿈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노래했을 때, 역설적으로 대중은 그들에게 열광했습니다.
10. 2 Pac - Life Goes On (1996)
https://youtu.be/ubu0 qV4 btQI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웨스트 코스트의 심장이 된 투팍. 그가 보여준 캘리포니아는 할리우드의 세트장이 아닌,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친구들의 죽음과 상실 앞에서도 그는 덤덤히 "삶은 계속된다"라고 말합니다. 이 곡에 담긴 흑인 특유의 짙은 정서는, 화려한 드림 뒤에 숨겨진 가장 아프고 진실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10곡의 노래를 통해 물었습니다. 캘리포니아 드림은 존재하는가? 어쩌면 그 '꿈'은 신기루였을지도 모르죠. 순수는 타락했고, 성공은 공허했으며,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깨어진 꿈의 파편들 사이에서 이토록 위대한 음악들이 피어났음을 말이죠. 결국 캘리포니아 드림은 우리가 상상했던 '빛의 도시'와 짐 모리슨이 노래했던 '밤의 도시'라는 이중성을 안고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꿈은 영원하지 않았으나, 그 꿈이 낳은 위대한 예술, 즉 음악은 남아 우리 시대의 끊임없는 성찰을 가능하게 할 것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