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이야기(5): 홍콩의 주거 문화 上

홍콩에서 일조권이란 단어가 없는 이유

by 동물의삽

홍콩에서는 주차장 한 칸의 가격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입니다. 택시는 색깔로 구역을 나누고, 10평 아파트를 네 가족이 나눠 살죠.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홍콩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홍콩의 행정구 지도인데요. 초록색이 홍콩섬, 붉은색이 구룡반도, 파란색이 란타우 섬과 신계지입니다)


침사초이 이스트(찜동)에 위치한 홍콩 역사박물관에 가면, 홍콩의 토지가 간척 사업과 개발로 점진적으로 넓어지는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요. 침사초이 어디서든 도보로 그리 멀지 않으니, 홍콩에 가시는 분들에게 관람을 추천 드립니다. 매주 수요일은 입장이 무료이니 날짜를 조정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냉방도 잘 되어있고, 상주하는 가이드 분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십니다)


홍콩은 땅이 비싸니 60층짜리 젓가락 아파트를 올려 공간을 수직으로 씁니다. 워낙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용적률과 건폐율에 거의 제한을 두지 않고 건축 허가가 나죠. 물리적인 토지를 넓히는데 한계가 있으니, 자꾸 위로 올라가는 방법뿐인 겁니다.

(피크에서 찍은 홍콩섬 북부의 풍경입니다. 상업 건물들도 많지만, 저 사진의 대부분이 주거용 아파트입니다. 50층은 우습고 60층이 넘는 아파트가 즐비하죠)


그래서 개인 차량은 사치품이나 다름없죠. 차량 구입 시에도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주차장이 확보되었다는 증빙 서류를 첨부하지 않으면 역시 차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주차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세대별로 주차장을 주지 않고 전부 따로 임대합니다. 차량 소유를 억제하기 위한 정책인데요. 대신에 대중교통을 촘촘히 마련해서 시민들을 유도합니다. 다 엄청난 인구밀도 때문이죠.


따라서 홍콩섬 시내의 좋은 자리에 있는 주차장은 경매에 종종 나오는데요. 억대의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입찰도 못할 정도입니다. 도로를 넓힐 땅도 없는데 주차 시설을 확충하는것도 골치아픈 일이죠.


(헐리우드 로드의 밤풍경입니다. 건물들은 서로 붙어있고, 도로는 보시다시피...)


도로도 마찬가지예요. 헐리우드 로드의 넓이는 이층 버스 두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나칠 정도이고, 이면 도로는 택시 한 대가 겨우 지나갑니다. 공간 낭비가 없는 거죠. 신계 지역에 길을 넓게 낸 건 미래를 위한 유보입니다. 어차피 인구가 차다 보면 신계지도 주거지로 활용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홍콩 택시의 지역별 색깔)


도로가 복잡하니 일방통행이 많고, 숙련된 택시 기사가 필수입니다.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력의 숙련도로 해결하는 거죠. 목적지를 말할때도 길 이름을 먼저 말하는 편이 기사들이 빨리 이해합니다. 게다가 홍콩의 택시는 전문 구역이 따로 있는데요. 홍콩섬에 가면 구룡 택시 승차장이라고 도로 바닥에 쓰여있는 곳이 있는데, 같은 빨간색 택시지만 서로의 구역을 나눠 놓았습니다.


란타우 섬은 하늘색 택시가, 신계지는 초록색 택시가 다니는데요. 각각의 구역을 넘지 않고 경계가 되는 MTR 역에서 내려주면, 거기서 자신의 목적지로 가는 택시를 갈아타고 가야 합니다.


(구룡반도 홍함의 중앙 해저 터널 입구)


해저 터널도 효율성을 추구하죠. 요금 비싼 서부 터널은 시간을 사는 곳이고, 저렴한 중앙 터널은 돈을 아끼는 곳입니다. 게다가 택시를 탈 경우 터널 요금은 무조건 승객이 부담합니다. '서비스 비용은 사용자가 지불한다'는 냉정한 원칙이 작동하는 겁니다.


이렇게 토지의 효율을 따지게 된 이유는 높은 인구밀도와 그에 따른 행정 시스템에서 출발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전제가 깔립니다. 바로 홍콩에서는 민간이 토지를 영구적으로 소유하는 게 불가능하고, 모든 땅은 정부 소유라는 것이죠.


그래서 정부에서는 공영 아파트를 열심히 지어서 시민들에게 공급하지만, 한계가 있으니 개발 예정이 된 땅을 민간 회사들에게 50년 계약 단위로 주거지 개발 공고를 내고, 입찰에 참여시킵니다. 즉, 50년이 지나면 다시 정부와 계약을 맺으면서 그때의 상황에 맞게 세부 내용과 금액을 조정하죠.


(구룡반도의 대표적인 초고가 민영 아파트, 엘리먼츠 단지. 지하를 통해 AEL 구룡역과 연결되어 있죠)


그래서 민간 아파트 단지는 교통이 편한 MTR 역과 가깝고, 주로 주상복합으로 지어지며 모든 생활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습니다. 대신에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분양하죠. 반면에 공영 아파트는 민영 아파트에 비해 굉장히 저렴한 임대료로 평생 임대가 가능하므로 평범한 홍콩 시민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효율 시스템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하는데요. 정부 아파트를 기다리는 기간이 평균 5년이 넘습니다. 모두를 안아줄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수입이 적을수록-부모님과 아이가 있을수록 순위가 유리해집니다. 홍콩이나 서울이나 독거 청춘들이 살기에 퍽퍽하기는 마찬가지네요.


(이런 방에서 가족 모두가 거주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래서 민간 10평 아파트를 4개로 쪼개 세를 줍니다. 원래 한 세대였던 집을 네 개의 방으로 리모델링해서, 각각 따로 렌트하고 월세를 받아서 수익을 내는 구조죠. 심지어 분양받은 사람이 아니라 월세로 들어온 사람이 다시 임대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은 더 싼 곳에서 살면서 말이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대나무 비계도 참으로 홍콩다운 재료입니다. 워낙 습도가 높은 아열대 기후라 부식에 취약한 철제보다 오래가고, 사고 시 부상의 위험도 줄어서 좋은 장점이 있었지만, 최근 일어난 고층 아파트 화재 참사처럼 비교적 건조한 시기에 불이 났을 때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명 피해를 키웠죠.


이 비극 때문에 앞으로 홍콩의 건축 방식 자체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성룡의 액션 영화에서 대나무를 타고 다니던 장면도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 같네요.


그렇지만 부자들에게는 또 천국 같은 곳이 홍콩입니다. 재산만 충분하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홍콩의 야경을 거실에서 바로 감상할 수도 있고, 집에서 문만 열고 나오면 해변가가 펼쳐지는 부촌도 있죠.

(홍콩의 영원한 따거, 배우 주윤발도 이 피크에 있는 저택에 거주합니다)


홍콩이 이렇게 가혹한 시스템을 택한 건 지속 가능성 때문입니다. 마카오를 보세요. 카지노왕 스탠리 호의 리스보아처럼 카지노에 의존해서, 시민들에겐 세금을 거의 안 물릴 정도로 고수익을 냈습니다.


하지만 성장 동력이 없고 외부 충격에 너무 취약합니다. 마카오는 워낙에 면적이 좁아서 다른 산업이 발달할 기반이 없는 점도 있지만, 홍콩에 비해 매우 정체된 곳이죠.


(마카오의 상징, 그랜드 리스보아)


반면 홍콩은 금융, 무역, 물류라는 다각화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한의 편의를 희생하고 '시스템의 안정'을 택한 겁니다. 홍콩의 산업구조를 점유율별로 분석해 보면, 금융이 20%를 상회하며, 천혜의 입지를 자랑하는 무역항으로써 중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20% 정도가 됩니다. 벌써 금융과 무역으로만 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오히려 관광은 4~5% 정도로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죠.

(금융도시 홍콩을 상징하는 홍콩 증권 거래소)


이렇게 제한된 토지와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진 홍콩은, 바로 위에 버티고 있는 본국 중국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겉으로는 번잡스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도시일지 몰라도, 그 속으로는 정글 같은 생존 시스템이 첨예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연결된 곳입니다.


그런 이유로 홍콩은 극한의 불편함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붕괴하지 않는 시스템을 얻었죠. 당신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단기적 편의를 좇다가 장기적 생존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요?





*주거문화 하편과 홍콩의 풍수지리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 주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기대와 구독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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