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에 새겨진 간절한 기복신앙, 홍콩 마천루가 풍수를 입은 이유
저번 시간에 이어서 오늘은 홍콩의 풍수지리에 대해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교민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공부하다가 알게 된 것도 있으며, 홍콩인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다지 으스스한 이야기는 아니고 생활 풍수 위주의 이야기이니 편안하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먼저 풍수지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에 관한 양택 풍수와, 묫자리에 관한 음택 풍수, 그리고 특히 홍콩에서 고도로 발달한 실내 풍수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겠는데요. 700만이 넘는 인구가 얼마 안 되는 땅에 초고밀도로 살아가는 홍콩에서는, 사실상 개인이 토지를 구입하여 집을 짓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국식 장묘 문화로 인해 매장을 선호하지만, 물리적인 매장지 자체가 씨가 마른 탓에 이젠 6년까지만 매장할 수 있는 임시묘지로 바뀌었죠. 반영구적으로 매장이 가능한 사설 묘지가 있기는 한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서 일반 시민들은 이용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음택 풍수도 홍콩에서는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법, 끊임없이 부와 행복을 추구하는 홍콩인들에게 마지막 남은 기복요소는 이제 생활풍수밖에 남아있지 않은데요. 그래서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도화된 생활 풍수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홍콩 하면 바로 떠오르는 마천루들과 풍수지리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아는 대로 풀어볼까 합니다. 좀 길어지겠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홍콩 의회 앞의 광장에서 바라본 중국은행과 HSBC 빌딩의 모습입니다)
홍콩의 풍수에 대한 가장 유명한 예시인데요. 잘 보시면 중국은행의 오른쪽 면이 칼날처럼 HSBC 은행을 향해 있으며, 중국은행의 살기를 고스란히 받게 된 HSBC에서는 칼을 막기 위해서 꼭대기에 대포 모양의 리프트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기중기 맞긴 하는데, 모양이 좀 과격하죠?)
그리고 중간에 끼어있는 홍콩 최고재벌 리카싱의 청콩 센터는, 죄 없이 은행들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살기를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청콩 센터 전면에 부착된 유리들은 모두 반사유리이며, 중국은행의 살기를 막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애드미럴티에 위치한 리포 센터)
홍콩의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일명 '코알라건물' 리포 센터입니다. 나무에 붙어있는 코알라의 모양을 형상화한 설계라는데요. 잘 보시면 홍콩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 8을 의미하는 팔각형 건물입니다.
홍콩인들에게 8은 부를 상징하는 숫자인데요. 광둥어 발음인 八이 [FAAT]으로 나는데, 이것은 發達 한다는 의미의 發과도 발음이 같아서 점점 부와 행복이 늘어나는 의미를 가진다고 홍콩인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차량 번호판이나 핸드폰 뒷자리가 8888인 경우에는 초고가로 거래되죠.
(리포 센터와 함께 애드미럴티의 랜드마크, 극동금융센터입니다)
애드미럴티 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금빛 찬란한 건물이 있는데요. 대한민국 홍콩 영사관이 자리한 극동금융센터(far east finance center)입니다. 특히 노을 질 때 바라보면 홀로 빛나는 금덩어리처럼 느껴질 정도인데요. 혼자만 금빛을 띄게 된 것에도 연유가 있습니다.
극동금융빌딩을 지어놓고 유명한 홍콩의 풍수사에게 자문을 부탁하자, 건물은 잘 지었지만 위치가 좋지 않아서 금전이 융통되는 자리가 아니라고 했답니다. 금융센터 건물에 돈이 돌지 않으면 헛수고이기에 거액을 안기며 해결책을 묻자, 간단히 "금색으로 칠해!"라는 설루션을 내놓았다는군요.
(홍콩섬 남부의 아름다운 해안가에 위치한 더 리펄스 베이입니다)
천수만, 즉 리펄스 베이 해변가의 바로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건축물입니다. 보시다시피 엄청나게 비싼 아파트인데도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는데요. 구멍을 뚫어놓은 이유가 풍수지리적으로 설명된답니다.
바로 저 구멍은 용이 드나드는 자리이며, 건물 뒤편의 산에서 머물던 용이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네요. 실제 앞에서 보면 6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구멍인데요. 덕분에 리펄스 베이의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완차이의 명소, 호프웰 센터)
완차이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거대한 원기둥이 하나 눈에 띄는데요. 원기둥 꼭대기의 구조물은 원래 레볼루션 360이라는 회전식 레스토랑으로 쓰였습니다(2010년대 초까지) 식사를 하면서 천천히 회전하는 레스토랑 안에서 홍콩의 환상적인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는데요. 이곳에도 풍수지리가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실제 호프웰 센터 옥상에 위치한 풀장)
풍수가가 지적한 사항은, 건물이 양초처럼 생겼으니 화재가 자주 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해결책이 아주 간단했습니다. 양초의 심지가 되는 꼭대기 부분에 불이 나지 않도록 풀장을 만들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수영장으로 쓰이진 않지만, 전망대 레스토랑 윗부분은 물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호프웰 센터의 고속 엘리베이터는 시내 방향으로 개방된 유리 형태라서 바깥 경치 구경이 가능하고요. 무료로 전망대까지 1분 정도로 이동가능합니다. 워낙 빨라서 귀가 살짝 먹먹해지죠.
(구룡반도에 위치한 118층의 홍콩 최고층 마천루, ICC의 모습입니다)
ICC 건물의 가장 독특한 외형적 특징 중 하나는 건물 하단부의 유리 외벽이 마치 망토처럼 바깥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모습입니다. 이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 폴 카츠(Paul Katz)에 따르면, 이 부분은 풍수지리를 고려한 '용의 꼬리'를 형상화한 것이라 하는데요.
그래서 구룡(九龍)이라는 지명 자체가 '아홉 마리의 용'을 뜻하는 만큼, 산에서 내려온 용의 기운이 건물에 머물며 긍정적인 에너지(기)가 잘 흐르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ICC는 홍콩섬의 2 IFC와 빅토리아 항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이 위치는 일종의 관문(Gateway)의 형상으로, 두 건물이 마치 거대한 기둥처럼 서서 바닷길의 입구를 만드는데요. 홍콩으로 들어오는 부와 행운을 가두어 성 안으로 들여보내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여겨집니다.
(홍콩 최고층 빌딩인 ICC 곁에 위치한 구룡반도 최고가 아파트 개선문(THE ARCH)입니다)
공항 고속철도 구룡역과 홍콩 최고층 빌딩인 ICC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하부를 공유하는 초고급 고층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곳의 이름은 음양오행사상에서 유래한 "Elements"(5 원소)입니다.
(엘레먼츠 입구와 개선문 아파트)
개선문 아파트의 디자인도 앞에서 설명한 더 리펄스 베이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홍콩인들의 지독한(?) 풍수 사랑을 알 수 있죠.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88층 건물입니다. 건물 중간에 화폐박물관과 전망대가 있죠)
홍콩섬을 상징하는 건물, 2 IFC입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망토를 펼치고 활강해 들어가던 건물로도 유명한데요. 이 건물의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꼭대기에 첨탑도 아니고 전망대도 아닌 희한한 모양의 구조물이 올라가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현지인에게 물어보고 얻은 가장 그럴듯한 답은요. 풍수지리적으로 음기가 강한 홍콩에서, 공중을 이리저리 떠다니는 양기(=돈)를 붙잡기 위해 독수리 발톱(!!) 모양의 구조물을 얹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홍콩의 마천루들은 *8층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위에 언급한 리포 센터의 8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게다가 꼭 마천루가 아니더라도 홍콩의 대부분의 건물에는 4층, 14층 등 4가 들어간 층수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4의 독음인:쎄이가 죽음을 뜻하는 死:쎄이의 독음과 같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건너뛰어서 혹시나 모를 불길한 요소에 원천대비한다는 뜻이라네요.
(리펄스 베이 뒤로 보이는 넓은 반원형의 건물, THE Lily(백합꽃)입니다)
홍콩 최고의 여성 재벌이었던 니나 왕의 건물로 유명한데요. 최고급 호텔과 콘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니나 왕의 이야기만 해도 한 회가 따로 필요할 정도라서, 건물 이야기는 이 건물을 마지막으로 해야겠네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합꽃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했으며, 보통 남성성을 나타내는 홍콩의 뾰족한 빌딩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여성적인 설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물론 니나 왕의 생각이라기보단 그녀의 애인이었던 젊은 풍수사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는군요.
홍콩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세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700만 인구의 밀집된 욕망과 불안, 그리고 더 나은 삶을 향한 기복(祈福)의 마음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만들어낸 거대한 '풍수의 전시장'이었죠.
누군가에게는 미신처럼 보일지 모를 이 보이지 않는 힘이, 홍콩에서는 수조 원대 건물의 모양을 바꾸고 도심의 흐름을 바꿉니다. 결국 풍수란,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행운을 붙잡아 살아남으려 했던 홍콩인들의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요?
*홍콩 건물의 외벽이 풍수로 무장했다면, 그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다음 주 목요일에는 홍콩 사람들의 삶과 예절이 깃든 홍콩의 만찬 문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