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감옥 가거나: 1987년 5명의 악동들이 세운 탐욕의 정글
1986년, LA 선셋 스트립의 지저분한 클럽 '트루바두르' 뒷골목. 게펜 레코드의 A&R 톰 줄럿(Tom Zutaut)은 자신의 커리어를 건 도박을 감행했는데요. 당시 건즈 앤 로지스는 업계에서 '계약하면 망하는 밴드' 1순위였습니다. 마약, 폭력, 그리고 통제 불능의 사고방식까지. 하지만 톰 줄럿은 음반사 고위층을 설득하며 인상적인 평을 남기죠.
"This band is either going to be the biggest band in the world, or they’re all going to be dead of drug overdoses, kill each other, or end up in prison."
"약물 과다복용으로 다 죽거나, 서로 죽이거나, 결국 감옥에 가지 않는다면, 이 밴드는 세계 최고의 대형 밴드가 될 것이다."
톰 줄럿은 이들의 '파멸적 리스크'야말로 박제된 록 씬을 부술 유일한 정답임을 꿰뚫어 본 전략가였습니다. 그는 밴드에게 새 앨범 제작비로 7만 5천 달러를 던져주며 이 정글의 문을 열었습니다.
데뷔 전, 이들이 모여 살던 LA 가드너 스트리트의 아파트는 '지옥의 집(Hell House)'이라 불렸습니다. 침대도 없이 벼룩이 끓는 매트리스에 다섯 명이 엉켜 잤고, 돈이 없어 고양이 사료를 먹는다는 루머가 돌 만큼 처절했습니다.
직업도, 내일도 없던 이들의 생존 전략은 빌붙기였습니다. 멤버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여성 팬(그루피)들의 집에 기생하며 술과 음식을 조달받았는데요. 낮에는 시체처럼 자고, 밤에는 선셋 스트립의 클럽에서 공연으로 불태우며 사냥감을 찾는 늑대들이었죠. 이들에게 음악은 고상한 예술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한 '생존의 야성' 그 자체였습니다. 이 결핍과 분노가 훗날 1집의 그 날 선 사운드를 완성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던 이들은 홍보 방식도 남달랐습니다. 밴드의 실질적 설계자 이지 스트래들린은 직접 복사기에서 밀어낸 전단지를 선셋 스트립 곳곳에 뿌렸습니다. 화려한 디자인 대신 거친 카툰과 해골, 그리고 '내일은 잊고 마시고 죽자!'라는 자극적인 문구만 박았습니다.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미친놈들이길래 저러는지 '구경'하기 위해 클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6월 6일, 액슬, 슬래시, 이지, 더프, 스티븐이라는 '클래식 라인업'이 확정된 후 첫 무대에 오른 곳이 바로 성지 '트루바두르'였습니다. 이곳은 리스크 덩어리였던 건즈가 거대 자본과 결합해 전설이 된 '록 비즈니스의 역사적인 M&A 현장'이었습니다.
너바나가 등장하기 직전, 팝 메탈의 절정기에 발매된 그들의 데뷔 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1,800만 장이 팔려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명반 62위. 레드 제플린 IV(69위) 보다 높은 이 순위는 이들이 일으킨 거대한 반향을 증명합니다.(전적으로 롤링 스톤즈의 견해이고, 저의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AFD 앨범은 태생부터 파격적이었습니다. 원래 프로듀서로 물망에 올랐던 키스의 폴 스탠리는 스티븐 애들러의 드럼 세트가 맘에 들지 않는다며 간섭하려 했고, 밴드는 이를 단칼에 거절합니다. 대신 에어로스미스 같은 야성을 원했던 슬래시와 메탈리카의 파괴력을 원했던 액슬의 의지가 새 조율사 마이크 클링크의 손에서 완성되었습니다.(생소한 이름인가요? 1990년에 이 분은 메가데스의 앨범을 프로듀싱합니다. 바로 rust in peace.)
앨범을 통으로 들어도 질리지 않는 빼어난 곡들로 가득한데요. 다만 라이선스 발매판은 심의로 여러 곡이 잘려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직접 심의관이 들어보았다면 1순위로 잘랐을 rocket queen이 버젓이 라이센스판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이들이 얼마나 허술한 기준으로 일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덕분에 앨범을 듣는 사람은 좋았지만요.
데뷔앨범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대곡입니다. 보통 그들의 공연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며, 빌보드 싱글차트 5위까지 올라간 히트곡인데요. 가장 러닝타임이 긴 곡인데도 질리지 않는 탁월한 구성을 자랑하는데, 밝은 분위기와는 달리 가사는 현실은 시궁창(...)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데뷔 전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고 들으면, 확실하게 와닿겠네요.
밴드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현재까지 그들의 유일무이한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 히트곡입니다. 도입부에서부터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리프가 아닐까 생각되는 슬래시의 기타와 함께, 사생활은 몰라도 실력만큼은 확실했던 건즈 앤 로지스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특히 이 곡의 기타 솔로는 아마도 20세기 최고의 기타 솔로를 꼽자면 무조건 열손가락에 들어갈 명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에 악기 상가에서 치려고 하면 상당히 눈치를 봐야 할 수 있으니, 자제를 부탁드릴게요. :)
발매 초기 빌보드 182위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자, 톰 줄럿은 회장 데이비드 게펜을 찾아가 직언합니다. 제발 한번만 전국방송에 나가게 해 달라고 말이죠. 결국 직접 움직인 게펜이 MTV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 압력을 행사했고, MTV는 생색을 내듯 일요일 새벽 5시, 단 한 번의 뮤직비디오 방영을 허락합니다.
그 새벽, 전 세계의 '정글'에 살던 록/메탈 팬들이 격렬하게 반응했는데요. MTV의 전화통은 불이 났고, 시청자들은 "다시 틀어라"며 폭동에 가까운 통화량을 고객 센터에 퍼부었습니다. 정글의 야성이 대중의 결핍을 정확히 관통한 순간이었겠군요. 그리고 앨범 판매량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이들의 야성은 앨범 재킷부터 폭발했습니다. 로버트 윌리엄스의 '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림은 미국에서 판매 거부 사태를 일으켜서, 게펜 레코드에서는 부랴부랴 십자가에 해골 모양의 멤버들 일러스트가 그려진 지금의 모습으로 교체했는데요. 당시 검열이 심했던 한국에선, 이 파괴적인 미학을 눈치채지 못한 덕분에 무사통과되었습니다. 미국인들도 갖지 못한 '오리지널 도발'을 한국 팬들은 LP와 테이프로 소장하는 기묘한 역설을 누린 셈이네요.
1990년까지 건즈는 무적의 밴드였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액슬 로즈는 캔커피 광고 속 휘파람을 불던 'Patience'의 주인공이었지만(아마도 어느 광고인지 바로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 감미로운 휘파람 소리 뒤에는 액슬의 정신세계가 여과 없이 드러나, 인종과 금기를 조롱하는 'One in a Million'의 서슬 퍼런 칼날도 숨어 있었습니다. 데뷔앨범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EP로 발매된 미니 앨범 치고는 상당한 판매량인 500만 장 판매를 기록했네요.
록/메탈을 듣지 않는 분들도 들으면 '어?' 하실만한 그 인트로의 곡입니다.
결국 톰 줄럿의 예언은 '감옥'이 아닌 '세계 최고'를 향해 적중했습니다. <Appetite for Destruction>은 단순히 많이 팔린 앨범이 아닙니다. 80년대 메탈 씬의 가식적인 분장을 걷어내고, 거리의 날것 그대로를 비즈니스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사건이었습니다.
1990년, 이들은 빌보드와 MTV, 그리고 캔커피 광고가 흐르는 한국의 안방까지 점령했고. 건즈 앤 로지스라는 엔진은 마치 무한동력처럼 돌아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서커스의 설계자, 이지 스트래들린의 눈에는 이미 엔진의 과열과 균열이 보이고 있었죠.
술과 약에 찌든 친구들을 단속하며 전단지를 돌리던 그 시절의 야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건 거대 자본의 오만함과 액슬 로즈라는 통제 불능의 괴물이었습니다. "이러다간 정말 누군가 죽거나 감옥에 가겠군." 톰 줄럿의 예언 중 나머지 절반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음 주 금요일 하편에서, use your illuison' 앨범과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