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꽃미남 록커 이야기(8): 대한민국 록커들 下

당신이 기억하는 청춘에 '마왕'이 있다면,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by 동물의삽

1.

하편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주인공은 강산에 씨입니다. 저는 그를 볼 때마다 사운드가든 시절의 크리스 코넬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물론 목소리나 추구하는 음악은 다르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그 특유의 야생마 같은 카리스마만큼은 정말 닮았습니다. 20세기 한국 록이 가졌던 가장 세련된 ‘야성’을 보여준 록커라고 생각해요.


https://youtu.be/6FnXuwfiVqY


특히 그의 노래 <넌 할 수 있어>는 90년대 수험생들에게 위안을 넘어선 하나의 찬가였습니다. 입시라는 큰 벽 앞에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그의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목소리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텨냈죠. 화려한 위로보다도 시대의 귓전에 묵직하게 울리던 그 응원이 우리 청춘에겐 참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음악적 깊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데요. 록커로서는 이례적으로 평양 공연에서 <라구요>를 불렀을 만큼, 그의 출생부터가 우리 민족의 아픔과 서사를 모두 품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범국민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가진 록커가 또 있을까요? 꽃미남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그 단단한 마음이 2026년을 시작하는 우리에게도 따뜻한 울림을 줍니다.



2.

김종서 씨의 외모를 보면 사실 록커라기보다는 아주 곱상한 소년 같은 이미지가 강한데요. 하지만 무대에만 올라서면 완전히 딴사람으로 돌변하곤 합니다. 그런 평상시의 부드러움과 무대 위에서의 폭발적인 카리스마 사이의 '갭'이 정말 대단했거든요. 아마 그런 반전 매력 때문에 당시 여성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https://youtu.be/BvcTk9Q3XxQ


그 작은 체구 어디서 그런 엄청난 성량이 나오는지 늘 신기했는데, 사실 그 목소리를 얻기 위해 한강 다리 밑에서 자동차 소음을 뚫고 연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그런 치열함 덕분에 시나위 시절엔 빛을 보지 못했던 <겨울비>를 솔로 2집에서 백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으로 되살려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시린 바람이 부는 계절, 소년 같은 얼굴로 세상 가장 애절한 고음을 내뿜던 김종서 씨를 떠올려 봅니다. 록의 전설 신대철 씨가 가사를 쓰고 그가 곡을 붙인 이 노래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의 겨울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명곡으로 남아 있네요. 20세기 꽃미남 록커가 남긴 이 아름다운 반전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3.

세 번째 주인공 김바다 씨의 시작은 참 극적입니다. 인디신을 전전하던 시절 그의 데모 테이프를 들은 신대철 씨가 그 목소리에 완전히 반해, 곧장 시나위의 보컬로 낙점했을 정도니까요. 장발을 늘어뜨린 채 몽환적으로 노래하던 그의 모습은 소울 어사일럼의 데이브 퍼너를 연상케 할 만큼 세련된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https://youtu.be/WTdMPJFjOTs


특히 그가 부른 <희망가>를 들어보면 그의 진가가 여실히 드러나요. 한 곡 안에서 맑고 높은 하이톤의 미성과 거칠고 굵직한 탁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이건 정말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김바다 씨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죠. 그는 단순히 잘생긴 보컬을 넘어, 수준급의 연주력과 송라이팅 능력까지 갖춘 아티스트였습니다.


놀라운 건 그의 도전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인데요. 원래의 하드록과 얼터너티브 록의 기반 위에 일렉트로닉 록까지 아우르며, 오직 김바다만이 할 수 있는 실험적인 음악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꽃미남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이 서늘하고 강력한 음악적 내공은 세월이 흘러도 녹슬지 않고 더 깊어지고 있는데요. 20세기의 스타일리시한 천재는, 이제 우리 곁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아티스트로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4.

네 번째 주인공은 우리들의 대장, 서태지 씨입니다. 사실 그의 긴 음악 커리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은 이제 아주 일부가 되었는데요. 많은 팬이 아시겠지만, 그는 학창 시절부터 PC를 끼고 방 안에 틀어박혀 혼자 소리를 조각하던 지독한 '음악 덕후'였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위해 시나위에 합류했을 땐 이미 프로에 가까운 연주력을 갖추고 있었을 만큼 준비된 록커였죠.


https://youtu.be/z9m4ZUVoB8I


놀라운 점은 우리가 듣는 그의 수많은 명곡이 전부 그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지고 프로듀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연주는 두말할 것도 없고, 사운드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그의 통제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죠. 꽃미남 같은 소년의 얼굴로 주류 음악계의 판을 흔들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런 압도적인 실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대유감>에서 보여준 저항 정신은, 방구석에서 벼려온 자신만의 음악적 철학을 지키기 위한 프로페셔널한 선언이었죠.


아이돌이라는 화려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본령인 록으로 돌아온 그는, 늘 대중보다 한 발 앞서가며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하드코어부터 이모코어까지, 낯선 장르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낸 그의 행보는 경이롭기까지 하죠. 혼자만의 세계에서 소리를 탐구하던 그 소년의 집념이 결국 대한민국 록의 영토를 이토록 넓혀놓았습니다.



5.

마지막으로 꺼내보는 이름은 신해철 씨입니다. 언제 생각해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정말 아픈 록커예요. 그는 진정 제 젊은 날 그 자체였던 사람입니다. 20세기말 21세기초의 그 찬란했던 시절, 그의 음악은 방황하던 우리들의 궤적이었고, 그가 내뱉는 한마디는 길 잃은 청춘들에게 건네는 유일한 이정표였습니다.


https://youtu.be/zzPP-FDPuk4

처:엠미디어웍스


무대 위에서 마왕이라 불리며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그였지만, 그의 속내를 가장 깊이 보여준 곡은 역시 <민물장어의 꿈>이 아닐까 싶은데요. 좁은 개울을 벗어나 넓은 바다를 꿈꿨던 그 민물장어처럼,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던 철학적인 록커였습니다. "나중에 내 장례식에 울려 퍼질 곡"이라던 그의 말처럼, 이 노래는 이제 우리 곁에 없는 그를 추억하는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위로가 되었습니다.


꽃미남 록커라는 말로는 그를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그들의 가장 뜨거웠던 청춘 한복판에 마왕이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떠난 자리가 여전히 이토록 시린 것은, 아마도 우리 청춘의 조각들이 그와 함께 영원히 박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 예고: 20세기 꽃미남 록커 이야기, 그 아홉 번째 주인공은 LA 메탈의 황금기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며 등장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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