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랩소디(2): 잠원역에서 공중 요새 옥수역까지

설계도 찢고 나온 잠원역과 신사역을 지탱한 강남 자본의 실체

by 동물의삽

여러분, 여러분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고향은 지도상의 주소가 아니라, 특정 역에 내렸을 때 코끝을 스치던 냄새와 이제는 사라진 간판들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세계입니다. 1980년대 말, 서울의 부와 실리가 가장 치열하게 교차했던 3호선을 타고, 기억 속에 박제된 풍경들을 복원해 보는 두 번째 시간입니다.



1. 잠원역, 설계도를 찢고 나온 ‘실리’의 성채


3호선 잠원역은 사실 설계도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역입니다. 하지만 당시 잠원동 한신아파트 주민들의 그 유명한 '치맛바람'은 서울시의 설계도조차 굴복시켰죠. 고속터미널의 번잡함과 신사의 소란함을 거부하면서도, 내 집 앞 전철이라는 특권은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실리주의가 만든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잠원역입니다.


1920-141223-00[26].jpg 출구는 4개, 그나마도 다 아파트 근처랍니다


덕분에 이곳은 강남 한복판이면서도 유흥이 거세된, 오직 '학군과 거주'라는 본질에만 집중하는 고립된 성채가 되었습니다. 자본이 지형을 바꾸고, 그 지형이 다시 부의 성격을 규정하는 현장을 우리는 매일 지나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잠원역의 평균 이용 승객 수는 3호선에서도 최하위권이죠.



2. 신사역, 중견기업의 자본과 간장게장의 결합


사람들은 흔히 강남의 밤 하면 테헤란로를 떠올리지만, 당시 신사역을 지탱하던 자본의 질은 전혀 달랐습니다. 테헤란로의 넥타이 부대들이 역삼과 선릉의 획일적인 유흥가에 갇혀 있을 때, 신사역은 국민연금관리공단KCC(금강고려화학) 같은 묵직한 중견기업 사옥들을 배후에 두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201703_147218166512301.jpg 그 시절 신사역 사거리의 모습입니다. 멀리 고려화학 사옥이 보이네요


이곳은 뜨내기들의 유흥지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중견기업을 다니는 직장인들과 압구정의 문턱을 넘기 전 예열을 하던 대학생들이 섞여들던 '전략적 요충지'였죠. 특히 신사역 하면 떠오르는 그 짭조름한 간장게장과 아귀찜 골목의 냄새는, 성공을 향해 달리는 젊은 청춘들과 실속 있는 비즈니스맨들에게 가장 실리적인 영양분이었습니다. 투박한 테이블 위에서 오가던 대화들은 테헤란로의 경직된 미팅보다 훨씬 더 파괴력 있는 정보를 품고 있었죠.



3. 도산대로, 거대 가든의 몰락과 생존의 법칙


신사역에서 도산대로로 발을 들이면, 이제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이 근처 사셨던 독자분들이라면 전율을 느낄 이름들이 있죠. 늘봄공원, 중국성, 만리장성, 그리고 게 요리 전문점 코오라. "아 맞다! 거기!" 소리가 절로 나오시죠? 버스 정류장 이름조차 '늘봄공원 앞'이었을 만큼 그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unnamed.jpg 원래는 커다란 게의 입간판이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 가보십시오. 그 거대했던 가든들은 사라지고 차가운 SB타워 같은 오피스 빌딩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직 삼원가든만이 스스로를 리뉴얼하며 살아남아 랜드마크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죠. 변화하지 못한 자본은 박제가 되고, 혁신한 자본은 역사가 된다는 냉혹한 사실을 이 길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4. 압구정역, 주차장의 미로와 문화적 실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지하 주차장. 80년대 말, 이곳은 서울 최대 규모의 자본 미궁이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처음 차를 몰고 그 거대한 지하 세계에 진입했을 때, 차를 세운 기둥 번호를 잊어버려 몇 시간을 헤매던 그 당혹감은, 사실 거대한 시스템의 규모에 압도당했던 청년의 통과 의례였습니다. 현대 백화점은 압구정역과 지하로 통해 있어서, 굳이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걸어서 반찬코너 같은 '백화점 단골집'을 이용할 수 있었죠.



ELI.jpg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그곳, 코끼리 상가입니다


압구정은 이중적입니다. 한쪽에는 욕망의 성형외과가, 다른 쪽에는 영성의 소망교회가 공존하죠. 하지만 진짜 보물은 뒤편에 있었습니다. 코끼리 상가의 상아 레코드, 신현대 상가의 석기시대 소리방. 수입 음반 한 장을 위해 우편환을 바꾸고 도착을 기다리던 그 아날로그적 노고는, 자본의 중심지에서 우리가 문화적 실탄을 장전하던 성스러운 방식이었습니다.



5. 옥수역, 마침내 지상을 점령한 공중 요새


압구정의 폐쇄적인 지하를 뚫고 전철이 동호대교 위로 솟구칠 때, 3호선은 비로소 랩소디가 됩니다. 나란히 달리는 자동차들과 속도를 겨루며 한강을 가로지르는 그 쾌감. 그리고 다리 끝에서 마주하는 옥수역의 위용은 압도적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 긴 환승통로를 뛰곤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OKSU.jpg 차와 나란히 달리는 전철의 모습은 처음엔 문화충격이었죠


강변북로와 국철 선로 위에 붕 떠 있는 그 거대한 콘크리트 역사는, 지형의 한계를 비웃는 기술의 승리이자 우리 세대의 ‘공중 요새’였습니다. 제가 옥수역을 이용했던 이유는 환승 때문이었죠. 3호선에서 내려 국철로 갈아타고 한남동과 이촌동의 풍경을 감상하며 용산이라는 기술의 성지로 향하는 가장 빠른 루트였기 때문입니다. 학창 시절 돈을 모으고 모아서 용산의 게임샵을 찾아가는 그 길은 언제나 설레었죠.


압구정에서 취향을 사고 옥수역에서 연결을 꾀하며 용산에서 기술을 선점하던 80년대 말. 소년의 가슴을 뛰게 했던 그 공중 요새의 서늘한 콘크리트 질감은, 지금도 제 기억 속에서 성공을 향해 달리던 가장 뜨거운 철길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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