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선 랩소디(3):한강을 건너 서울의 중심지로

중력을 거스르는 동네와 흐름을 타는 동네

by 동물의삽


주황색 3호선 열차가 압구정역을 떠나 동호대교 위로 매끄럽게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창밖으로는 눈부신 풍경이 펼쳐지곤 했죠. 한강의 윤슬이 전동차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강 너머로는 서울의 척추인 남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하지만 열차가 옥수역을 지나 다시 어둠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면, 우리는 비로소 이 노선이 관통하는 서울의 진짜 민낯과 마주하게 됩니다.



금호동, 수직의 생존과 역설의 풍경


금호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가장 먼저 코끝을 스치는 것은 11월의 서늘한 공기에 섞인 매캐한 연탄 가루 냄새였어요. 80년대 중반의 금호동은 ‘달동네’라는 말이 낭만적으로 들릴 만큼 처절한 수직의 공간이었지요. 산비탈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무허가 판잣집들은 마치 중력에 저항하며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듯한 형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파트들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운, 말 그대로 상전벽해의 공간이지만요.


1989_금호동_달동네___임정의_사진가_1989년_촬영_color.jpg 옛 금호동의 모습보다도. 한산한 도로가 더 놀랍네요

이곳의 겨울은 연탄 리어카의 깊은 바퀴 자국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리어카 가득 실린 연탄이 오를 때면, 장정들의 거친 숨소리가 골목 전체를 가득 메웠지요. 서너 집이 모여 산더미 같은 배추를 쌓아두고 김장을 하는 풍경은, 이 험한 동네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종의 생존 의식에 가까웠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동네가 가졌던 기묘한 역설이었는데요. 집집마다 수도가 나오지 않아 아침이면 양동이를 든 사람들이 공동 수도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했지만, 고개를 들면 눈앞에는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탁 트인 한강의 전망이 펼쳐졌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살았던 그 아이러니가 바로 80년대 금호동의 얼굴이었습니다.



약수와 신당, 50년 시장 통에 고인 맛의 깊이


금호동의 가파른 숨소리를 터널 속 어둠이 한 번 걸러내고 나면, 열차는 어느덧 약수역에 닿습니다. 남산에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자 지대가 낮은 분지였던 약수는, 물자와 사람이 자연스레 모여드는 풍요의 저수지 같았지요.


YSmarket.jpg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풍경이 있네요

특히 5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약수시장 골목골목에는 그 깊이만큼이나 대단한 맛집들이 즐비했습니다. 시장통 특유의 투박한 인심과 사람 냄새가 진동하던 그 길목은 배고픈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가장 따뜻한 품이었지요.


약수시장 어귀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고거다(高巨多)’라는 중식당은 이름처럼 높고 거대한 존재감으로 2000년대 초반까지 약수동의 이정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온라인 검색으로도 찾기 힘든 이름이 되었지만, 그 시절 그 동네를 살았던 이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선명한 맛의 좌표로 남아 있습니다.



장충동, 거인들의 함성과 권위의 담장


JCgym.jpg 스포츠뿐만 아니라 콘서트도 열렸던 다목적 실내 체육관이었습니다

약수역을 지나 한 정거장을 더 나아가면 동대입구역인데요. 이곳은 참으로 묵직한 랜드마크들이 많았지요. 장충단 공원의 고요를 지나면 나타나는 장충체육관은 그야말로 80년대 말 90년대 초 스포츠의 성지였습니다. 하종화 선수의 백어택과 장윤창 선수의 강스파이크 서브가 코트 바닥을 때릴 때 나던 그 ‘팡!’ 하는 파열음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할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unnamed.jpg 아직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태극당

체육관 밖으로 나오면 또 다른 역사적 지점이 우리를 기다렸어요. 삼성가 저택을 비롯한 묵직한 담장길, 그리고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아이스 모나카의 태극당까지.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정작 동국대생들은 동대입구역의 가파른 정문을 피해 다음 역인 충무로 쪽에서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는 겁니다. 교문과 가깝긴 해도 너무 가파른 그 길은 등교하는 학생들에겐 피하고 싶은 고행이었으니까요.



충무로, 설계된 질서와 70mm의 꿈


3구간의 마지막인 충무로역은 80년대 지하철 설계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리는 문 번호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계단 하나로 3호선의 주황색에서 4호선의 파란색으로 순식간에 갈아탈 수 있었거든요. 등굣길 1분 1초가 소중했던 학생들에게 이 ‘개념 환승’은 시대를 앞선 축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31819142_eof630DW_df7f4b707b5146191fbdb792792b1bdd_1433153194_5288.jpg 대한극장 단관 개봉으로 34만 5천 명을 동원한 백 투더 퓨쳐, 전철역 안에도 줄이 있었습니다.

지상의 충무로는 진양상가와 대한극장이라는 두 거인이 굳건히 지탱하고 있었지요. 특히 1987년의 대한극장은 독보적이었습니다. 1,200석의 거대한 단일 상영관과 70mm 시네마스코프 스크린, 그리고 온몸을 진동시키던 THX 사운드까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1987년의 여름엔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안을 보며 미래를 꿈꿨고, 겨울엔 <로보캅>의 묵직한 기계음에 압도당했습니다.


20160422_105401.jpg 아직 자리를 지키시는지, 건강하신지 궁금하네요

영화를 보고 나와 명동 쪽으로 백 미터쯤 걷다 보면, 주방장의 수타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린 ‘동회루’가 나타납니다. 그 사진만 봐도 벌써 맛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곤 했지요. 동국대 연영과 출신인 이경규 씨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인이 단골로 드나들며 꿈을 나누던 그곳은, 족발 골목의 사장님들이 몸을 갈아 넣어 맛을 지켜냈던 것처럼 화교 장인들의 자부심이 볶아지던 공간이었습니다.



금호동 산비탈의 거친 숨소리에서 시작해 충무로 동회루의 쫄깃한 수타면 한 그릇에 도달하는 이 여정은, 80년대 서울이 품었던 극단적인 삶의 고도차를 주황색 선 하나로 엮어낸 한 편의 파노라마였습니다. 1,200석의 거대한 어둠 속에서 마주한 드로리안의 불꽃과 로보캅의 금속성은 단순한 영화적 체험을 넘어, 가파른 현실을 견디던 소년에게 허락된 가장 눈부신 미래의 예고편이기도 했죠.


그렇게 3호선은 차가운 연탄 가루가 날리던 골목과 최첨단 THX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극장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이어주며, 우리를 조금씩 더 넓은 세상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이제 열차에서 내려 지상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3호선 지하 터널의 매끄러운 속도감 대신, 이제는 신발 끈을 조여 매고 서울의 심장부를 직접 걷는 산책자가 되려 합니다. 충무로의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를 뒤로하고 을지로의 무채색 골목을 지나, 종로의 번잡함과 안국동의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거대한 역사의 숨결인 경복궁에 닿게 되겠죠.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마주했던 분절된 풍경들이, 이제는 발걸음 사이사이에 스미는 바람과 냄새로 어떻게 하나의 지도가 되어 연결될지, 그 지상의 산책로 위에서 다음 주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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