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사회
남녀노소, 빈부를 가리지 않고
현대인이 품고 있는 고민 가운데 하나가 비만이다.
식스팩과 S라인은 자기 관리의 상징이 되어버렸지만, 실제로 그런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과식을 부르고 비만으로 이어지는 사회 안팎의 현상을 사회문화 심리학으로 살펴보고,
과식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세상에서 제일 넘기 힘든 고개가 무엇인가?
조선의 21대 왕이었던 영조가 말년에 왕후를 새로 뽑기 위해 최종 후보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규수들이 ‘대관령’ ‘추풍령’ 등 저마다 높은 고개의 이름을 댔다. 이윽고 당대의 문신이던 김한구의 딸 차례에 이르자 김씨 처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릿고개가 가장 넘기 힘든 고개입니다.”
답을 들은 영조는 김씨 처자를 왕후로 간택한다. 바로 정순왕후 김씨다. 먹을 것이 부족해 견디기 힘든 시기를 가리키는 보릿고개는 왕후를 간택할 때도 언급될 만큼 중요한 경험이었고, 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민생 문제였던 것이다.
배가 고프니 일단 배를 채우던 시절
사람의 기본적 욕구를 의식주라고 통틀어 말하지만,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욕구는 식욕이다.
옷을 입지 않거나 몸을 누일 집이 없어도, 불편하지만 살 수는 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인간이 식량 없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약 3주라는데, 보릿고개는 그 한계치인 3주를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굶주린 조상들은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먹었다.
심지어 나무껍질과 진흙마저도 보릿고개를 넘어가는 먹거리 리스트에 포함될 정도였다.
나무껍질이나 흙은 텅 빈 위를 잠시 달래줄 수 있었지만, 장에서 소화가 안 되는 성분이었다.
그래서 곧 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를 일으켰다. 항문이 찢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유래된 관용어가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이다.
배고픔이 일상이던 조상들 가운데 굶어 죽은 사람은 있었지만, 배불러 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당연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음식을 가능한 한 많이 먹도록 본능적으로 프로그래밍되었다.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의 그림 〈점심〉을 보면 일단 밥그릇 크기가 인상적이다. 모두 아이 머리통만 한 밥그릇을 끌어안고 밥을 먹는다.
박물관에 전해지는 조선시대의 밥그릇 크기는 대략 700㏄로 요즘 밥공기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런데 밥그릇 크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고려 시대의 것은 대략 1천㏄, 고구려 때는 무려 1천300㏄ 크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쌀밥이 아닌 잡곡밥이었고, 지금보다 육체노동이 고된 생활환경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이 꽤 대식가였던 건 분명하다.
배고팠던 조상들에게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면
1년 중 귀한 음식을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절 혹은 축제였다.
영양을 보충하는 중요한 의례였던 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통 축제는 특별히 음식과 연관이 깊다.
우리나라에서는 송편, 떡국, 사과, 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날은 명절이나 조상의 제사, 어른의 생신 같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은 또 이어질 몇 달의 배고픔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했다.
다른 차원의 쾌락이 된 음식
우리 사회에서 배고픔의 역사는 대략 1960년대 전후로 변화를 겪는다.
혹시 1960년대 미스코리아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사진을 보면 다들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을 가지고 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적은 영양으로도 몸집을 유지할 수 있는 체질은 큰일을 도맡아야 하는
맏며느리에게 중요한 요건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얼굴이 둥글둥글 복스럽다”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다.
불과 반세기 만에 미의 기준이 바뀌었다. 갸름한 얼굴에 허리의 굴곡이 완연한 S라인이 미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먹을 게 흔한 요즘 둥근 얼굴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에게 드러나는 특징적인 외모로 낙인찍혀버렸다.
20세기 후반 식품산업이 발달하고 대량생산이 시작되면서
식용유, 설탕, 소금, 밀가루 등 귀한 식재료가 흔해졌다.
흔한 식재료는 축제 등 연중행사에서나 맛볼 수 있던 축제음식을 일상화해버렸다.
1년 365일이 축제를 벌이는 식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꿈꾸던 낙원의 땅이다.
이제 음식은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라 심심함이나 무료함을 달래주는 여흥 도구로 바뀌었다. 유명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내놓은 상품은 허기를 달래는 용도가 아니다. 맛이나 영양가를 따질 필요도 없다.
먹을 것이 흔해지자 음식은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쾌락을 충족하기 위한 보완재 역할로 바뀐 것이다
먹고 빼는 악순환의 고리
식생활의 변화는 체형의 변화를 불러왔다. 불과 몇 세대 전까지 우리 사회에는 뚱뚱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다 산업화된 식품으로 갑자기 뚱뚱한 사람이 대거 늘어났다.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16년 기준 15세 이상 성인 남성의 40.5퍼센트, 성인 여성의 28.5퍼센트,
전체 성인 인구의 34.5퍼센트가 비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앉아서 오래 일하는 습관, 운동 부족, 고열량 식사가 비만율을 지속적으로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뚱뚱한 사람은 흔해진 반면, 날씬하면서도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를 가진 사람은 드물어졌다. 날씬하면서도 근육질인 사람들은 TV와 잡지 같은 미디어 속 주인공이 된다. 충분히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사회에서 주목받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적정 체중은 중산층의 상징이 되었고, 이들이 적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하는 조깅은 부자 동네의 아침 풍경이 되었다. 고급 호텔의 피트니스 클럽 회원권은 옛날의 귀족 클럽을 대체한 것은 아닐까?
급격한 변화는 충격을 가져다준다. '다이어트'는
늘 배가 고팠던 조상들은 꿈도 꾸지 못한, 새로운 고통이다.
다이어트는 식탐과 싸워야 하는 아주 힘든 일이다. 오랜 기간 형성된 한민족의 본능이라는 순리에 역행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대부분 실패를 경험한다. 혼자서는 실패하기 쉬우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전문가의 도움은 돈과 직결된다. 2018년 기준 다이어트 산업 규모가 10조 원에 달한다.
살을 빼주는 일이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필요 이상 먹느라 들어가는 식비, 늘어난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 비용까지 벌어야 한다. 어설프게 일해서는 부족하다. 그렇게 일에 시달리다 보면 또 정신없이 먹게 된다. 늘어난 살을 빼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다.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본 글은 퇴근길 인문학 수업 4권 <관계>의
5강 과식사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