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06] 기본소득,
포퓰리즘인가 휴머니즘인가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특별연재

by 한빛비즈


기본소득, 포퓰리즘인가 휴머니즘인가


ⓒ시사저널 / 그래픽=조현경 디자이너


기본소득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내년 치러질 20대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기본소득 주장과 공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아끼고, 지역경제를 살리며 삶의 질도 높여줄 것”이라는 주장과

“재정에도 부담되고, 저소득층에 가야 할 지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결국 사회적 격차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근로 의욕만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기본소득을 주면 아무도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것이라는 우려는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측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시민들뿐 아니라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며

다음 대선은 기본소득 대선이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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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론은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정해진 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4차 산업혁명론과 관련이 깊다.

인공지능 기계의 확대로 일자리가 사라질 테니,

국민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임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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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 빌게이츠 등 세계적인 CEO들이 모두 기본소득론을 주창하고 나섰고

핀란드와 캐나다,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기본소득 실험이나 정책이 진행되었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기본소득, 정책이 아니라 경제학의 눈으로 본다면?


그렇다면 경제학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에 관해 최근 주목받는 주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이런 기본소득 정책은 근거도, 방향도 잘못된 대안이다.

우선 기본소득 정책은 기술변화가 초래할 미래를 과장한다는 점에서,

생산과 소득의 관계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신고전파 경제학은 소득을 생산에 대한 기여로 규정한다.

소득을 높이려면 생산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생산을 자극하는 인센티브가 된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생산적 투자를 자극하기 위한 소득을 이야기한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이 위험한 설비투자에 나서야 경제가 성장하는데,

정부는 기업이 설비투자에 집중하도록 금융소득을 규제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이윤율 동역학을 통해 생산과 소득의 모순을 분석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이윤은 착취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하지만 고용을 유발하는 기업 투자는 이 착취가 원천이다.

착취가 줄면 투자가 줄고, 고용이 줄면, 노동자 소득이 감소한다.

소득을 얻기 위해 착취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이런 이론을 전제로 신고전파는 생산성에 비례하는 소득을,

케인스주의는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소득을,

마르크스주의는 임금소득의 모순을 혁파할 자본주의 변혁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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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우산이 될까, 돈 새는 항아리가 될까?


기본소득은 ‘생산이론’이 없는 비현실적 정책

그런데 기본소득에는 어떤 생산이론도 없다. 오직 분배 정책만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실 복지이론에도 미달하는 것이다.

복지이론은 노동시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사회임금제도를 설계한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분배의 대상과 방법만 있지, 시쳇말로 “소는 누가 키우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한 분배이론이라는 것이다.

만약 어떤 정부가 그럼에도 기본소득을 실시한다면,

결국 재정적자라는 딜레마에 부딪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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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기본소득은 상상 속 4차 산업혁명의 구빈법이다.

거대한 실업의 공포를 만든 후 그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제시하니 말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하는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은

진보진영 이상으로 기본소득에 우호적이다.

이유는 그들이 지대추구로 독차지하는 사회적 부를

기본소득이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현 엘리트들의 기득권을 전혀 침해하지 않으면서,

시장 경쟁에서 패배한 시민들이 급진적 저항에 나서는 것도 방지한다.”

- 한지원의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에서 인용


*본 포스팅은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한지원 저)에서 인용, 발췌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