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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비즈 May 07. 2021

“채록아, 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편집원고와 드라마 사이에서 눈물 펑펑 쏟은 편집자 이야기



“채록아, 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편집원고와 드라마 사이에서 눈물 펑펑 쏟은 편집자 이야기   




책 편집자는 보통 원고를 몇 번이나 정주행할까? 2021년 봄, 나는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총 일곱 번 정독했다. 찾아서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이 그만큼 많았다. 매일 반복해도 좋을 삶의 각오를, 책 속의 문장들로 대신하는 기분이었다.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은 수많은 암 환자를 만난 의사가 환자들로부터 배운 삶의 태도를 기록한 책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시미즈 켄은 지금까지 4천 명이 넘는 환자를 상담하면서 같이 울고 웃었다.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 의사로서 절망도 많았던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환자들이 저에게 삶을 더 많이 가르쳤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던 엄마, 다른 사람을 믿지 않던 직장인, 평생 '또 다른 나'에 갇혀 살던 의사. 그들은 정해진 시간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펼침 표지


원고를 편집하는 기간이 마침 드라마 <나빌레라> 방영 시기와 겹쳤다. 드라마는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노인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만난 드라마 초입에서 나는 예민하게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의 냄새를 맡았다. 


드라마 <나빌레라> 포스터 이미지 (출처:tvN 홈페이지)


암 환자와 일흔의 노인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요즘 일흔이면 아직 젊다 우길 법도 하지만, 초보 발레리노를 넘어 무대까지 꿈꾸는 노인에게 세월은 한없이 야속하다. 구슬땀을 흘리지만 자꾸 넘어진다. 그런데 노인은 좌절하는 기색 하나 없다. 


회차가 거듭되면서 노인에게 ‘발레가 갖는 의미’는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불가능한 여정은 점점 더 절실해지고, 점점 더 아프게 나아간다. TV 앞에서 처음에는 슬쩍슬쩍 눈물을 훔치다가 언젠부터인가 아내와 나는 대놓고 서로에게 휴지를 건네는 지경이 됐다.     




채록아, 내가 살아보니까 삶은 딱 한 번이더라. 두 번은 아니야.
내가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반대를 하셨고, 지금은 집사람이 싫어하는데...
솔직히 반대하는 건 별로 안 무서워.
내가 진짜 무서운 건 하고 싶은데 못 하는 상황이 오거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상황인 거지. 그래서 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해.
할 수 있을 때 망설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
- 드라마 <나빌레라> 중에서 


드라마 <나빌레라>의 장면 (출처 :tvN홈페이지)


지금을 살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어요. 암에 걸리기 전에 저는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았어요. 그런데 막상 죽을 때는 모두 혼자예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왜 그렇게 주위를 신경 쓰고 살았나 싶었죠. 지금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은 ‘평범한’ 일이 아니에요. 평범한 날의 연속이 바로 행복인 겁니다.


- 책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중에서 



모든 사람은 정해진 시간을 산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만 실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일’을 또 내일로 미루고 만다. 너무 늦게서야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자책한다. 책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은 바로 오늘, 온전한 내 삶의 주인으로 살라 말한다.  



당신의 마음은 ‘꼭 하고 싶다’ 말하는 게 있는데 그냥 우두커니 있으면
그건 실현되지 않는다. 그냥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기한을 정하지 않고 나중으로 미루면,
그건 결국 실현되지 않는 결과에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길이다.
- 책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중에서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마. 내가 살아 보니까 완벽하게 준비되는 순간은 안 오더라고. 그냥 지금 시작하면서 채워. 아끼다 뭐 된다는 말 알지? 부족해도 무작정 들이밀어.”
- 드라마 <나빌레라> 중에서



드라마 <나빌레라> (출처 : tvN홈페이지)


드라마와 원고가 맞닿아 있으니 낮이고 밤이고 내 마음은 감성 충만 상태. ‘작게나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더 자주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고, 더 자주 꽃을 사들고 퇴근하고, 더 자주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내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드라마는 종영했다. 원고는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약 한 달 여를 내내 눈물 달고 살았다 하니 사람들은 뭐가 제일 슬펐냐고 묻는다. 생각해 보니 슬퍼서가 아니라 나는 ‘아파서’ 더 많이 울었다. 그 찌릿한 아픔은 드라마 속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너는 뭘 할 때 가장 가슴이 뛰니?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시간 두고 고민해도 된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다. 고민하는 김에 드라마 <나빌레라>와 책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정주행도 병행하길 권한다.  


나는 뭘 할 때 가장 가슴이 뛰는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나는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날아오를 날이 있다고 믿는다.  



                                                                                _<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편집자 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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