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기업, 고대 로마에도 존재했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치열한 패권 투쟁을 벌이던 기원전 218년, 뛰어난 한니발 장군 덕에 카르타고의 승리가 확실시될 무렵, 로마가 기적처럼 한니발을 몰아내고 카르타고를 대패시킨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로마군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대규모 전투를 피하고 소규모 국지전으로 카르타고군의 전력을 소모시키는 전략을 택했죠.
그런데 로마군의 승리에 숨은 공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바로 총 19명으로 구성된 회사 ‘소치에타스’입니다. 오랜 전쟁으로 로마군의 보급품이 떨어지고 국고도 비어있을 때, 이들이 군을 돕겠다고 자원했습니다. 대가로 병역을 면제해줄 것과 해상 운송 중 화물이 분실될 경우 로마에서 손실을 보전해줄 것을 요구했죠.
당시 이 회사가 상당한 규모로 자본, 곡물, 의류, 선박 등의 물자를 조달할 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들의 개입은 전쟁과 세계사의 판세를 뒤집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로마라는 한 공화국이 강력한 민간기업의 지원으로 구제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힘이 더욱 강해지면서 법망을 피해 시민을 노예로 만드는 등 폐해가 커지면서 로마의 몰락을 앞당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식. 지금과 같은 주식거래 형태는 언제 자리잡혔을까요? 1600년대 초 대항해시대의 물결을 제대로 탔던 ‘동인도회사’ 덕분입니다. 주식회사였던 동인도회사는 투자자에게 현금을 받고 자사의 주식을 판매한 뒤, 몇 개월~몇 년 뒤 항해가 끝나 배가 돌아오면 발생하는 이익을 나누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주식의 운영범위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동인도회사는 ‘개별 항해’ 방식을 택해 리스크를 줄여보려고 시도했지만, 주주들끼리의 다툼이 심해지는 등 문제가 많았죠. 결국 1614년 ‘공동출자’ 방식을 채택하면서 주주들이 회사 일부가 아닌 전체를 소유하도록 시스템을 바꾸었습니다.
이 선택으로 동인도회사의 부는 순식간에 증가했고, 이후 두 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막강한 기업의 지위를 누리게 됩니다. 이때 이후 주식중개인과 은행이 등장하며 금융시장이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가를 조작하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생겨났죠.
미국 전역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남북전쟁의 절정기에서도 링컨이 포기하지 않았던 법안, 바로 대륙횡단철도의 건설이었습니다. 링컨은 철도야말로 미국의 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동해와 서해를 연결하는 철도는 주 통합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는 철도노선의 설계와 배치, 건설, 조달 및 운영 권한을 ‘유니언 퍼시픽 철도’라는 공공법인에 부여합니다.
정부는 민간기업이 철도 건설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를 더 잘 수행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환경 변화와 광활한 지역에 철도를 건설하는 일에 필요한 기술력, 자금조달 등의 능력이 정부에는 없지만 기업에는 있었기 때문이죠. ‘유니언 퍼시픽’은 수많은 난관을 넘기며 대륙횡단철도를 완성해냅니다.
철도 건설 후 ‘유니언 퍼시픽’의 경영은 악명 높은 기업인인 제이 굴드가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시장에서 경쟁기업을 제거하는 것이었죠. 그는 해상 운송 기업과 지역 철도 회사를 차례로 인수하며 기업 규모를 크게 성장시킨 뒤, 운송요금 인상 등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1890년 최초의 독점금지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기업의 빛과 그림자
인류의 위대한 창조물 뒤에는 항상 기업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국가와의 이해관계와도 밀접했지요. 고대 로마 시대의 기업은 너무 빨리 커버린 공화국의 공적 의무를 담당하는 ‘국가의 힘줄’로 대접받았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에서는 국경을 넓히고 무역과 항해를 위한 시장 개척을 위해 기업이 탄생합니다. 미국 남북전쟁 기간에는 열차를 통해 분열된 국가를 통일하는 구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도 존재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기업은 주민들을 노예화하고 원로원 의원을 타락시키기도 했고, 동인도회사는 인도부터 미국 보스턴까지 전 세계에 걸쳐 분쟁을 초래했습니다. 남북전쟁 후 유니언 퍼시픽은 미국 정부를 속이고 가난한 농부를 대상으로 철도운임을 인상했죠.
그럼에도 기업의 존재 이유는
오늘날과 더 가까운 기업들도 역사를 바꾸고 있습니다. 하루에 자동차 만 대를 생산하도록 능력치를 끌어올린 헨리 포드의 이야기는 여전히 놀랍습니다. 숨겨진 석유 매장지를 찾아 척박한 환경에서 원유를 추출하는 엑슨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는 경이롭지요.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현 메타)이 전 세계 수십억 명을 연결시킨 것 또한 대단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혼자 일할 때보다 같이 일할 때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해보입니다.
현대의 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합니다. 기업의 결정에 따라 우리의 일상과 가치관이 매우 다양하게 바뀝니다. 『기업의 세계사』를 쓴 윌리엄 매그너슨은 “확고한 운영철학이 없을 때, 기업은 우리에게 무지막지한 해를 끼친다”고 말합니다. 기업이 공공선을 추구하는 조직이 되도록 우리가 끊임없이 견제하고 협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기업의 세계사』를 참고했습니다.
세계를 바꾼 더 많은 기업의 역사를 책에서 만나보세요.
놀랍도록 유용하고 중요한 책!
- 심용환(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