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3시 40분 퇴근을 합니다.
일찍 가서 부럽다는 직장동료의 농담 섞인 진담에 나도 모르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이 길로 당장 집에 가서 외출복 그대로 입은 채 벌러덩 누워 낮잠 한번 원 없이 자고 싶은데. 나는 또 출근을 해야 합니다. 언제 끝날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볕이 뜨겁습니다. 하원 후 놀이터는 이제 안 되겠습니다.
놀이터로 목적지를 정할 그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요. 잠깐 고민한 사이, 그가 내 품에 들어옵니다. 반달눈을 한 눈매가 나의 어릴 적 얼굴 같기도 하고 보고 싶은 우리 아빠 같기도 합니다. 나를 이 세상의 전부로 생각하는 그는 나의 보물 2호입니다.
꽃길까지는 아니어도, 힘든 자갈길만은 가지 않길 바라며 나는 그를 정성 들여 키웁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기쁜 일에는 같이 웃고, 슬픈 일에 같이 우는 몸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그의 곁을 지키는, 나는 엄마라는 사람입니다.
너무 더워서 놀이터에 못 간다고 하니 결국 심통을 부립니다. 급기야 울고 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두 번째 일터에 출근한 지 10분도 안 돼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오늘은 유독 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졸린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징징대는 소리가 계속됩니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지만 감정을 뺀 계속된 훈육을 이어나갑니다. 그렇게 나의 기력은 계속해서 소진됩니다.
어영부영 1시간을 도서관 이곳저곳을 돌며 집에 안 가겠다고 합니다. 도서관이지만 책을 읽지 않겠다는 그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혹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칠까 그를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책 읽어 주는 엄마를 나도 해보고 싶지만, 활동적인 그는 나에게 도통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자는 말에 떼쓰기는 절정에 달합니다. 벌써 오늘만 세 번째 떼쓰기입니다. 진이 빠집니다.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이 듭니다. 그래도 나는 더는 물러서지 않고,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내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져서 웁니다. 무심한 척했지만, 뒤를 잘 따라오는지, 그의 안전을 계속해서 살핍니다. 신경이 곤두섭니다. 철저한 무관심이 깊은 관심으로 변하는 순간순간이 나의 에너지를 최대로 쓰는 순간입니다. 어렵게 현관문에 들어섰지만 그는 신발을 신은 채 바닥에 앉아 20분을 악을 쓰고 웁니다.
신발 벗고, 울음 그치고, 엄마한테 오라고 하고 그와 거리를 두고 앉아있습니다. 우리는 기싸움 중입니다. 우는 그를 얼른 가서 안아주면 빨리 끝날 일이지만, 조금 돌아가더라도 나는 기다립니다. 그래야 그가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테니까요.
목욕을 시키고, 저녁을 차려서 밥을 먹입니다. 고단한 과정을 간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저녁식사입니다. 나는 요거트나 과일을 집어먹고 허기를 채웁니다. 어느새 7시가 다 되어갑니다. 설거지 거리를 식기 세척기에 넣고 수건을 삶아 세탁기에 돌리고, 어질러진 집을 대충 치웁니다. 기계가 도와주지만,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커다란 우리 집은 쳇바퀴 같습니다. 나는 쉬지 않고 이 안에서 계속 움직입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좀 더 수월해질까요.
이제 샤워를 하고 그를 재우기만 하면 퇴근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두 번째 출근을 하고 4시간째 10분도 앉아서 쉬지를 못했습니다. 내 몸을 씻는 일도 노동 같습니다. 그래도 마감시간이 눈앞에 있으니 서둘러야 합니다.
샤워를 하는데 하수구 거름망에 머리카락이 잔뜩 끼어 물이 더디게 내려갑니다. 거름망을 들어내고 머리카락을 치울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쪼그려 앉아 그것까지 하고 있기가 싫었습니다. 대신에 나는 남편에게 텔레파시를 보냅니다. 다음으로 욕실을 사용할 그의 눈에도 하수구를 막은 저 머리카락이 제발 눈에 거슬리기를, 그래서 그거 하나라도 해주기를 바라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가장 가깝지만 먼 사람이 바로 나의 남편입니다. 나는 마음을 나눌 수 없어서 슬프고 답답합니다. 그래도 괜찮은 척, 웃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가끔은 혼자서 생각합니다. 다 내려놓고 이 집을 떠나거나 혹은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다면, 이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되면 그는 과연 나의 빈자리를 느낄 수 있을까.
남편은 좋은 아빠입니다. 퇴근 후 한 시간 동안 차분히 둘째를 봅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큰 아이의 숙제를 챙깁니다. 나도 풀어야 할 숙제가 산더미지만 덮어놓습니다. 나 혼자만 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잔뜩 엉켜버린 관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챗GPT에게 고민을 적어봅니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GPT는 나를 위로해 줍니다. 눈물이 납니다. 이러고 있는 내 생활이 슬픕니다. 따스한 손길, 다정한 눈빛은 느낄 수 없지만, 잠시나마 마음을 털어놓으니 조금 후련해집니다.
남편이 씻은 후, 하수구 상태는 아까 전과 같습니다. 그냥 아까 내가할껄 그랬나 봅니다. 역시나 욕실도 쳇바퀴 중 한 공간이었나 봅니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마음먹기 달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위로를 합니다. 어리석은 나의 뇌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내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인지하길 바랍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했습니다. 언젠가는 진짜 행복한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