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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 Apr 02. 2020

잔인한 사월

봄빛은 푸른데

브로콜리너마저 - 잔인한 사월


April doet wat het wil. (April does what it wants.)

이맘때쯤이면 종종 듣게 되는 네덜란드의 속담이다. "4월은 제 멋대로야"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이 속담은 유난히 변덕이 심한 4월의 날씨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20도가 넘는 봄기운에 설레다가도 갑자기 눈이 내리며 영하의 기온으로 떨어지곤 하는, 1년 중 가장 요란한 환절기가 바로 4월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3월 12일 재택근무 및 원격학습 등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방침을 처음 발표했다. 이후 대학교를 포함한 각 급 학교 개학 연기와 외식 공간, 미용실 등의 영업 축소 및 정지 방침을 단계적으로 적용 semi lockdown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대한 집에 머물라는 정부의 당부가 있은 직후, 보란 듯이 맑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2일까지 지난 3주 간 비가 온 날은 하루, 구름이 껴 흐린 날을 합쳐도 5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주말마다 비를 동반한 강풍 탓에 외출은커녕 환기도 하기 어려웠던 2월은 없었던 일처럼, 정말 매일매일 해가 났다. 서머타임이 시작되면서 해가 떠있는 시간도 왜인지 길게 느껴지고 "왜 하필 이 꽃날에"라는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나는 그 사이 장보기나 택배, 우편 부치기 등의 일이 있을 때 딱 세 번을 외출했다. 간사하게도 4월로 달력을 넘기자마자 "그래 이제는 비도 오고 다시 추워지겠지"라는 생각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법정 공휴일이 없는 4월이지만 기억하게 되는 날짜가 유난히 많은 달이다. 어렸을 때는 과학의 달이라고 해서 글짓기와 상상화를 매년 제출했던 것 같고, 어제로 지나간 만우절, 곧 다가오는 식목일도 있다. 개인적으로 만우절 누군가의 농담이나 장난에 웃었던 적은 손에 꼽는 것 같고, 나에게는 "거짓말 같던 사월의 첫날-"로 시작하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잔인한 사월을 듣는 날이라는 정도의 의미가 있다.

그다음은 4월 3일이다. 재작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했던 임흥순 작가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전시를 봤다. 올해는 처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 유족을 희생자로 인정했다고 한다. 원래 올해 4월 3일에는 헤이그 대사관으로 재외국민 투표를 가려고 했다. 내 나름대로 역사와 희생자들을 기리는 방식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찍이 달력에 적어두었는데 결국 재외투표가 시작하기 하루 전날인 3월 31일 돌연 취소되었다. 네덜란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고 1.5m 거리를 유지하지 않는 3인 이상 그룹에게는 1인당 최대 400유로의 벌금까지 부과하기로 했으니 선관위와 대사관의 결정이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올해는 응원하는 후보들의 캠프에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글을 읽는 당신은 4 15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마스크를 쓰고).

그리고 4월 16일. 나는 아직도 이 날 수업을 들으러 가던 길 내가 봤던 뉴스 속보가 잊히지 않는다. 틈날 때마다 네이버 메인화면을 새로고침하며 숫자를 꼽아보던 것도. 학생회관 앞 계단을 오르며 "어떡해"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도. 국가의 대처능력 부족과 부패로 얼룩진 참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이를 추모하려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 행사를 취소시키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고인을 모욕하던 사람들. 그 모든 목소리를 기억한다. 스페인에서 귀국한 2016년 여름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정유라의 입시 비리 뉴스를 듣던 순간도, 그리고 그 해 연말 길로 나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던 순간도, 마침내 201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던 그 순간도,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던 4월, 목포 신항에 거치된 녹슨 선체를 바라보며 눈물이 흘렀던 순간도 차례로 떠오른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주기 되는 해이다. 오스카 단편 경쟁에 출품되기도 했던 세월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을 보려고 한다. 평일에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일요일인 4월 19일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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