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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14. 2019

띠동갑 커플의 스몰웨딩 #1 - 로망 버리기

로망 버리기



 “저 결혼합니다. 근데 부모님, 형제만 초대하는 스몰웨딩 하기로 했어요.”

“그래! 축하한다! 근데 스몰웨딩으로 한 거 진짜 잘 생각했다. 나도 결혼식 끝나고 나니깐 기억에 남는 거 하나도 없고 정신만 없었어 정말. 잘했다 정말. 근데 신부 입장에선 좀 섭섭해하겠는 걸. 여자 친구는 괜찮대?”

 “여자 친구가 먼저 강력하게! 타협의 여지없지! 스몰웨딩으로 하자고 했는데요?”


 결혼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스몰로 하기로 했다는 뜻을 밝히면, 열에 아홉은 쌍수 들어 환영을 한다. 결혼’식’에 대한 기대와 감흥이 있던 사람이든 아니든 유부남, 유부녀들은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안 그래도 나이차 많이 나는 신부를 데리고 가는 도둑놈 주제에 무슨 염치로 스몰웨딩까지 밀어붙이냐?’라는 핀잔을 빼놓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신부에 대한 걱정까지.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 밝힌다. 스몰웨딩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와이프의 자발적인 의사였다.


 연애 시절부터 와이프는 종종 스몰웨딩에 대한 생각을 밝혀 왔다.


 “오빠 나랑 결혼하려면 스몰 웨딩으로 해야 하는데 괜찮아?”

 “스몰? 그럼 친구들이랑 적당히 해서 양가 50명? 100명? 정도만 초대하는 건가?”

 “아니.. 정말 부모님이랑 형제들만 딱 초대하는 진짜 스몰웨딩. 그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생각한 결혼식이야.”

 “으흠...... 어 그게.. 결혼식이 우리 둘만의 문제도 아니고, 일단 우리 아버지가 굉장히 사회성 짙은 사람이라서...”


 처음 와이프의 생각을 들었을 땐 본능적으로 스몰웨딩에 대한 거부감부터 드러냈다. 효자와는 거리가 한참 먼 주제에 비겁하게 아버지 핑계까지 끌어왔었다. 나 역시 결혼’식’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정말 스몰로 나의 평생 한번뿐인 결혼식을 치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이래도 되나?’라는 막연한 거부감이 먼저 앞선 듯했다.


 사실 나는 결혼식 전문가이다. 수십, 수백 번의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 온 베테랑이다. 20대 때부터 마이크를 잡고 이런저런 사를 진행했고, 30대가 넘어서 쇼호스트라는 직업으로 자리 잡은 덕에 주변 지인들, 지인의 지인들, 학연 지연 일절 없는 그냥 알바를 포함해서 300회가 넘는 결혼식의 사회를 보아 온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도 결혼식만큼은 자신 있었다.


 자다가 일어나도 ‘신랑 신부를 축복해 주시기 위해 오늘 이렇게 귀한 발검음.....’ 멘트를 달달 외우는 건 당연하고, 언제 신랑 신부가 마주 보고 어떤 타이밍에 둘이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서야 하는지, 툭치면 탁탁탁 읊어대는 경지다. 본식의 식순은 물론이고 신랑이 어떤 제스처와 표정을 지어야 하객들이 좋아하는지, 사진 촬영 때 친구들은 어떻게 해줘야 사진이 잘 나오는지 사회자 본연의 역할을 넘어서 결혼식 전체를 바라보는 노련미까지 갖춘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 내가 정작 본인이 결혼할 땐 결혼’식’이 없는 스몰로 한다? 재능을 썩히는 짓이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없는 척, 쿨한 척했었지만, 나 역시 남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은근히 있었다. 내가 수많은 지인들과 친구들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는데 내 결혼식의 사회는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 여러 대상자들을 리스트에 올려두고 혼자서 기분 좋은 면접관의 역할을 해보기도 했다.


 ‘걔는 재밌긴 한데 사투리가 너무 심하고, 걔는 확실히 목소리는 좋은데 애드립이 너무 약해서.... 걔는 지가 결혼식 때 나한테 당한 게 있어서 분명히 내 결혼식 때 복수할 생각으로 올 거야 안돼! 절대 안 돼!’


 ‘그러지 말고 아예 내가 사회자로서 멘트를 미리 따놓고 녹음 파일이나 영상을 띄워 놓고 할까? 스크린 속에 내가 나와서 신랑 입장을 외치고 또 내가 입장을 하는 거지. 이 얼마나 신박한 결혼식이야 키키키키’


 결혼식을 상상하며 혼자 많이 신났었다. 로망 수준을 뛰어넘었다.


 사회자만큼이나 중요한 게 축가다. 너무 심플해서도 안되고 쓸데없이 장황하거나 길어서도 안되었다.


 ‘축가는 누구 시키지? 무조건 한 곡은 내가 해야 되는데 음. ‘다행이다’는 좀 지겹고, ‘감사’가 담백하고 괜찮긴 한데 고음이 좀 빡빡하지 않을까? 컨디션 좋을 때 어찌어찌하겠는데, 컨디션 안 좋으면 백퍼 삑사리 나는데 흠...’

 

 ‘축가 부르다가 신부가 울면 어쩌지? 아니다. 이러다 내가 먼저 울겠는데? 차에서 감정 잡고 연습하면서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데.. 확실히 요즘에 눈물이 좀 많아지긴 했어. 호르몬에 문제가 분명히 오긴 왔어. 남자가 마흔 즈음되면......’


 나만 신난 게 아니다. 우리 아버지 역시 분명히 자식 결혼식에서 중요한 코너 정도는 맡고 싶으실게 뻔했다.

 실제로 스몰 웨딩으로 치러진 최종(?) 예식에서도 짧게 한마디 하고 싶으시다던 아버지는 A4 한 장 가득 채운 분량의 설교문(?)을 작성해 오셨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리고 예쁘기까지 한 신부를 데리고 가는 특수 절도범 신분 답지 않게도 난, 참 결혼식에 대해서 많은 욕심과 미련을 가지고 있던 신랑이었다. 물론 그 욕심과 미련을 끝까지 밀어 부칠 정도의 바보 멍청이는 아니었다. 와이프와 결혼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 결혼을 어떻게 할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깐.


 하지만 스몰웨딩을 치르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아직 한참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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