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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16. 2019

띠동갑 커플의 스몰웨딩 #2 -스몰웨딩을 결심한 이유

"왜 하필? 어쩌다가 스몰웨딩을?"


  “근데 왜 스몰웨딩이야?”


 결혼 소식을 알리는 과정에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300번 넘게 들었던 질문이다. 훗날 누군가 나에게 <결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스몰웨딩을 하는 이유 설명하기”

  매번 비슷한 대사를 치다 보니 나중에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미리 작성해서 출력한 A4 용지를 건네며 집에 가시는 길에 읽어 보라고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자는 그럴 수도 있다. 그냥 대충 간단하게 답하고 빠지면 되지 뭘. 물론 내 성향이 필요 이상의 부연 설명이 많은 설명 충인 탓에 사서 고생한 것도 있다. 하지만 다른 일도 아니고 내 결혼 소식을 알리는 자리다 보니 늘 지극정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고 간단하게 치고 빠지기엔 사람들의 반문이 매번 따라붙었다.

 “너 알고 봤더니 돌싱이었던 거 아냐?”

 어디 가서 그런 얘기 하지도 마라. 장모님이 들으실까 무섭다. 마흔을 코 앞에 둔 노총각인 건 맞지만, 한 두 번 갔다 온 건 결코 아니다. 유부남 그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오리지널 총각이다.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시간 지나면 신부가 분명 아쉬워할 텐데.”

 지난 글에서도 밝혔지만, 스몰웨딩 아이디어의 출처는 오롯이 전 여자친구, 지금의 와이프였다. 모양새는 와이프가 제안하고 내가 동의 내지 승인을 한 것이지만, 사실 타협의 여지없이 와이프의 의견에 일방적으로 복종했을 뿐이었다.


 와이프는 보기 와는 다르게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고 그런 그녀가 내게 처음 건넸던 말은 ‘난 스몰웨딩으로 할 거야’ 란 결정에 대한 통보였다. 그게 다였다.


  아파트, 외제차, 다이아반지, 드레스, 흔히 말하는 세속적인 결혼 조건 따윈 와이프의 안중에 없었다. 띠동갑 나이 차, 27살 한창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그녀가 내민 유일한 조건은 바로 ‘스몰웨딩’이었다. (이래도 직접 부를 축가, 로망 운운하며 결혼식을 고집하는 미친 신랑은 없을 것이다.)

 “신부는 왜 스몰웨딩을 하고 싶대?”

 와이프가 내게 얘기한 여러 이유 중 가장 뜻밖의 것은 바로 ‘뻘쭘하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우르르 몰려와 있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뻘쭘해서 견딜 수가 없단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와이프의 얘기를 들어보니 곧 수궁이 갔다.

  “친한 친구들이 한 걸음에 달려와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건 참 감사한 일이야. 근데 잘 모르고 친하지도 않은 (부모님과 더 잘 아는) 친척들, 그리고 오빠 친구들, 오빠도 잘 모르는 친척 그리고 회사 동료들까지, 가깝지도 않고 또 그렇게까지 막 기뻐해 주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까지 수 백 명이 앉아서 신부인 나를 멀뚱멀뚱, 힐끗힐끗 쳐다보는 그 상황이 너무 싫을 것 같아.”

 와이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진행했던 300여 차례의 결혼식을 돌아봤을 때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하객은 고작 10프로? 나머지 90프로는 (물론 속마음은 당연히 아닐 테지만) 쉬어야 되는 주말에 억지로 끌려 나온 표정이었다. 오죽했으면 사회 볼 때 내가 이런 멘트를 고정으로 할 정도이다.


“오늘 결혼식 중간중간 박수를 정말 많이 칠 겁니다. 그때마다 하객 분들이 박수를 많이 쳐주셔야 오늘 결혼식이 빛이 날.... 그럼 저와 약속하는 의미로 큰 박수....”

  

 제발 박수 좀 많이 쳐달라는 사회자의 읍소와 함께 식이 거행된다. 이것도 모자라 중간중간 박수와 호응에 대한 부탁과 사정이 끊이질 않는다.

 “양가 어머님께 큰 박수를...”
 “주례 선생님을 환영의 박수로....”
 “신랑에게 힘차고 뜨거운 박수를...”
 “오늘의 주인공! 신부에게 따뜻한 박수를....”
 “눈물 흘리는 두 분께 격려의 박수를....”

 대한민국에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박수가 있는지 나도 결혼식 사회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상황마다 적절한 성격의 박수를 지겹도록 독려한다. 90퍼센트의 시큰둥한 얼굴들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매번 박수를 유도해야 하는 사회자의 역할도 참 죽을 맛이다. 그나마 식장에 들어와 있는 하객들은 낫다. 함께 할 일행이 없어서 뻘쭘하거나 시간이 없어서 축의금 내고 인사만 하고 가는 사람, 같이 데리고 온 애기들 때문에 식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 나가 있는 사람, 본식은 지겹고 나중에 사람 붐비니깐 일단 밥부터 먹고 나중에 사진만 찍자는 사람까지. 결혼식장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축의금 5만원 내고 와이프에 애기까지, 온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왔다? 생각만 해도 최악이다.   

 와이프가 말한 참을 수 없는 ‘뻘쭘함’은 쑥스러움이나 창피함의 종류가 아니었다. 10퍼센트의 진심에 90퍼센트의 허례허식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요즘 결혼식에 대한 환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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