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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22. 2019

띠동갑 커플의 스몰웨딩 #3- 사람들의 반응

사람들의 반응

 

 세상 일 뭐든 마찬가지이겠지만, 진짜 해보기 전엔, 겪어보기 전엔 절대 모를 일들 투성이다. 내겐 군대와 결혼이 그랬다. 특공대가 초딩 시절 장래희망일 정도로 군대 체질이라 믿었던 나는 입대한 지 3일 만에, 제대한 형들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났다.


  “세상에! 헐렁헐렁 비리비리해 보이던 그 형들도 이 힘든 걸 다 겪어낸 거잖아?”


 결혼식도 참여 횟수로 보나, 사회자 경력으로 보나 노련미 넘치는 베테랑이라 믿었는데, 결혼을 결심한 후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자마 대한민국의 모든 신랑 신부들을 우러러 볼 수 밖에 없다. 식장 선정, 스드메, 웨딩 촬영, 예물, 혼수 장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게 없다. 결정권가 누구인지 참 매하고 결재 라인호한 업무(?)의 연속이다. ‘양가 부모님 사이에서 의견 전달이나 조율’,’ 지인들에게 소식 알리면서 비슷한 그룹 별로 식사 약속 잡기’처럼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어쩌면 훨씬 더 골치 아픈 일들도 빠지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소식 알리면서 식사 약속 잡기’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별도로 또 하고 싶다. (결혼 준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전에 결혼 소식, 정확히 말하면 남들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스몰 웨딩에 대한 소식을 알렸을 때 보여준 여러 사람들의 반응들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해보고 싶다. 참 별의별 반응들이 많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일단 아버지의 반응은 참 쿨하면서도 깔끔했다.


 “아버지 저 결혼식, 와이프랑 의논해 봤는데 사람들 초대 안 하고 저희 가족들끼리만 하는 스몰로 할까 생각 중인데...

 친척들도 초대 안 하고 아예 딱 양가 부모님이랑 형제들만 초대하는 거죠.”


 “그리 해라. 사람들 초대하고 그래 봐야 뭐 정신도 없고, 느그만 괜찮으면 뭐 상관있겠나?”


 10년 전에 장남인 형을 먼저 장가보내고 축의금 회수를 포함한 어느 정도의 과업(?)을 이뤄내신 아버지였기에, 큰 반대는 없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첫 번째 관문치곤 너무도 간단했다. ‘본식은 스몰, 양가 친지들은 피로연 형식으로 따로 모시기’라는 플랜 B 전략도 아버지의 쿨함 앞에서는 필요성이 사라졌다.


 “친척들 시간 조율해서 날짜 잡고, 장소 정하고 느그도 서울에서 왔다갔다 하고 그 준비를 다 누가 할낀데? 마 됐고 그냥 설에 둘이 내리와서 다 모였을 때 인사 한번 드리고 끝내라.”


 싸늘할 정도로 쿨했다. 결혼 준비하며 정말 많은 짐을 아버지의 쿨함 덕분에 덜게 되었지만, 너무도 간단 결정을 내려주신 바람에 정작 스몰웨딩 당사자인 내가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쿨한 아버지와 달리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다.


 “스몰로 합니다.”  / “오! 그래 요즘 그게 대세라고 하더라. 잘했다. 그래청첩장은 줘야지.”


 “제가 초대를 못해서 청첩장은 따로 준비를 못..... “ / “아니 그럼 나도 못 가는 거야? 나는 초대해야지!”


 “양가 가족들만! 딱 15명만 오는 결혼식이라....”


 “아.. 그럼 난 니 결혼식 못 가는 거네? 진짜 스몰이네?” (진짜 스몰 가짜 스몰이 어딨나요?)   


 “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초대해야지!” (그렇게 말한 사람이 이미 50명 넘어갔습니다)


 ”오지 말라니깐 갑자기 더 가고 싶네” (매진 임박이라 그러면 괜히 더 사고 싶잖아요?)


 “알고 봤더니 나만 빼놓고 다른 사람들은 다 초대한 거 아냐?” (그러게. 평소에 저한테 좀 잘하시지 그랬어요?)


 심지어 예법과 사회생활 윤리를 앞세워 나를 혼내는 사람도 있었다.


 “결혼식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그렇게 하는 거 아냐. 정식으로 식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소식알리고, 그전에 식사도 하고 그러는 게 도리에 맞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다시 신부한테 말해서 정식으로 올려. 그러는 거 아냐 정말.”


 심지어 나보다 어린 동생이었다. 아니 우리 아버지도 허락한 스몰웨딩을? 니가? 왜?끝까지 완고한 꼰대 모드로 나오길래 연락 끊어 버렸다. 결혼은 이런저런 이유에서 관계 정리에 딱이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반응은 역시나 친한 친구 녀석들이었다.    처음엔 ‘신부가 애 딸린 돌싱 아니냐?’ ‘왜 결혼을 숨어서 하냐?’ 식의 막장에 가까운 농담이 오고 가서 진심 자리를 엎고 나가 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마음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빛이가 내 결혼식에 사회도 봐줬는데.. 내가 사회까진 못 봐줘도 화환이라도 보내줄라 했는데 좀 아쉽네.”


 “빛이 행님이 그동안 우리 결혼식에 현수막 만들어서 들고 오고 했다 아이가~! 아 빛이 행님 장가가면 제대로 준비할라 했는데”

 

 “아니 내가  축가 하려고 했는데! 당연히 축가는 내가 해야지! 식장 어디야? 가서 축가만 딱 하고 나오면 안돼?"


 “축의금이야 어찌 됐든 보내면 되지만, 그래도 제대로 축하를 해주고 싶은데... 참 그럴 기회가 없다는 게 좀 그러네.”


 어차피 내 인생이고, 내가 내린 결정이니 부모님 앞에서도 전혀 거리낄 게 없는 스몰웨딩이었지만, 친구들의 진심 앞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금 앞섰다. '그때 누구누구 결혼식때 뭐뭐 했던거 진짜 웃기지 않았냐?'라며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하나 놓친 것 같아서 정말 아쉽기도 했다.


 한 친구 녀석들도 그런데, 부모님, 친지들은 오죽할까? 그분들께 다시 한번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덕분에 '어차피 내 결혼식인데 뭐 어때?'란 치기 어린 마음을 다스리고 신부를 포함한 주변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래서 결혼하면 어른이 된다고 하나 보다. 세상 모든 신랑들이 연신 '고맙다'라며 고개 숙이는 게 결코 가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랑의 이 훈훈한 마음가짐도 본격적인 결혼준비 '실무' 앞에서는 금세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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