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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23. 2019

띠커스 #4- 상견례까지 스몰로 해야 진짜 스몰이지!

상견례도 스몰로 해야 진짜 스몰이지


 우린 2019년 3월 2일, 3.1절 다음날 토요일 12시에 우리만의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3월 2일이란 날짜에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통 결혼식 날짜는 상견례 자리에서 정해진 다고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상견례 역시 생략해 버렸다.


 이 정도면 진짜 스몰! 레알, 극 스몰웨딩일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상견례 자리에서 논의되는 안건(?) 또는 그 정상급 회담이 가지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정도가 될 것이다.




 우선 양가 부모님이 사돈, 크게 보면 한 가족으로서 연을 맺게 되는 첫인사, 신혼집을 포함한 예물예단 기타 등등 돈 문제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를) 그리고 결혼식을 언제 치를지 ‘날’을 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극 스몰웨딩이기에 상견례의 의미나 명분 역시 약간 애매했다.


 첫째, 양가 부모님의 한 가족이 됨을 알리는 첫인사.


 결혼식날 뵈면 되지 않을까? 어치피 다들 결혼식날 한껏 차려입고들 오실텐데? 굳이 상견례까지 두번이나 차려입으실 필요가 있을까?양가 부모님 + 형제들만 모시고 결혼식을 치르니깐 어차피 보는 멤버도 상견례나 결혼식이나 거의 똑같다. 더군다나 멀리 나주에 계신 나의 부모님, 울산에 있는 첫째 형님네, 둘째 형 역시 두 번이나 서울을 오가야 한다. 결정적으로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맛도 제대로 못 보는데 비싸기만 한 식당을 두 번이나 예약해야 한다.


 둘째, 신혼집을 포함한 예물예단 같은 돈 문제.

 결혼 전반에 필요한 비용 문제도 정말 중요하다. 특히 요즘 서울, 지방 할 것 없이 집값이 소득 대비 너무 많이 올랐다. 평범한 벌이의 신랑신부들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 역시 퇴직은 빨라지고 감당해야 할 노후는 점점 더 길어진다. 어느 커플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나.

 하지만 그놈의 돈 문제로부터 우린 한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것도 순전히 와이프의 쿨함 덕분이다. (여기저기 쿨함 투성이다.) 와이프는 연애 시절부터 일관되게 말해왔다. 신혼집은 지금 오빠가 살고 있는 이 빌라면 족하다고. 물론 거의 모든 세대가 신혼부부일 정도로 크게 부족함 없는 빌라이긴 하지만, 난 내심 와이프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늘 공존했었다.

 와이프 나이 27살, 또래들에 비해선 훨씬 일찍 가는 시집, 신혼집을 포함한 모든 것을 좀 더 근사하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신혼집은 커녕 어느 것 하나 떵떵거리게 해 줄 수 없는 나의 현실에 마음 한켠엔 늘 미안함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런 내 맘을 와이프도 아는지 ‘다음에 돈 모아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되지’라며 나의 미안한 마음이 자리할 틈을 내주지 않았다. 참 좋은 여자다. 장가 잘 갔다 정말.

 신혼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제로가 되니, 뒤이어 따라오는 예물예단, 혼수 같은 것들도 스몰웨딩의 취지에 맞춰 덩치를 대폭 다 줄여 나갔다. 상견례라는 정상회담에서 따로 논의하기 민망한 수준의 금액이 되어 버렸다.

 셋째, 결혼식 날짜 정하기

  날짜도 정말 큰 의미 없이 정해 버렸다. 당시 난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언제든 몸만 들어와라’고 선포한 상태였고, 와이프는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작년 11월, 그러니깐 결혼식 3개월 전에, 나와 함께 두물머리를 산책하던 와이프의 입에서 갑작스러운 ‘허락’이 떨어졌다.


  “오빠 결혼하자. 언제 할 수 있겠어?”

  마치 팀장님의 업무 지시 같았다. '김 과장, 그때 말한 그 보고자료. 언제까지 할 수 있지?'


  와이프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고삐를 늦출 순 없다.

 
  “응? 진짜? 진짜지? 정말이지? 그래도 되는 거지? 있어보자 흠.. 어차피 스몰이니 준비하고 자시 고도 없이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날짜가 흠..

 일단 웨딩사진은 찍어야 되니깐 한 두 달 잡고 지금이 11월이니 2월쯤? 아! 2월엔 설이 있으니 좀 그렇고, 3월에 할까? 조카들 학교 가야 되니깐 개학하고 바빠지기 전에 첫째 주에 할까? “

 “그래! 그러자!”

 양가 부모님들 역시 ‘뭐 길일이 언제니, 아는 스님이 점지해준 날짜가 있는데..’그런 스타일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분들이었다

 아버지의 멘트는 “느그끼리 정해서 날짜만 알리주라!” 였고 장모님의 한 마디 역시 “우리 딸과 사위 결혼식에 나도 꼭 초대해줘” 였다. 세상 쿨한 분들이다.

 이로써 상견례에서 양가 부모님이 논의 할 주제가 상견례를 치르기도 전에 다 결정 돼버렸다. 논의 할게 없으니 할 얘기도 없었다. 양가 모두 말이 그렇게 많거나 서로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 날 정도로 사교성이 짙은 분들도 아니었다. 그리고 스몰웨딩 때 어차피 우리 식구들밖에 없으니 그래도 할 얘기가 있다면 결혼식 당일날 하면 됐었다. 어차피 커다란 원탁에 양가 식구가 서로 마주 본 상태에서 진행되는 스몰웨딩이니, 그 시간의 뻘쭘함을 메꿔줄 대화 주제를 최대한 아껴둬야 했다.

 “아버지. 집은 이렇게 저렇게 하기로 했고, 혼수야 뭐 필요한 것만 사고, 예물이야 그냥 저희끼리 소소하게 할게요. 그래서 말인데...... 상견례를 굳이....”

  “그래! 상견례 뭐 굳이 할 필요 있겠나? 어차피 결혼식 때 다 오시잖아? 그때 얼굴 보고 식사하믄 되지 뭐”

 글을 쓰다 보니 새삼 겸허해진다. 와이프와 내가 잘나서 해낸 스몰웨딩이 아니라, 양가 부모님의 쿨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스몰웨딩이었다. 효심이 불타 오르는 월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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