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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27. 2019

띠커스 #5 스드메, 흔들리지 않는 그 편안함

진짜 결혼 준비, 드디어 ‘스드메’ 다


 유부남, 유부녀들의 특권 중 하나가 ‘결혼에 관한 훈수 두기’이다.
 
 “내가 결혼해 보니깐 말이야” 와 같은 뻔하지만 근거는 확실한 도입부로 시작되는 조언은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 같은 배우자를....” 따위의 진부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서른 아홉에 조금 늦은 장가를 간 덕에 그 훈수라면 지겹도록 들어왔다. 그래서 나도 이 참에 훈수 한번 두어 보고 싶다.

내가 결혼해 보니깐 결혼은 ‘팔랑 거리지 않는, 주관이 또렷한 사람’과 해야 한다. 결혼 한지 이제 두 달도 안 된 새신랑 주제라 감히 ‘결혼 생활’ 까지는 모르겠고, ‘결혼 준비’ 만큼은  sns나 주변 언니, 친구들 말에 휘둘리지 않는, 시몬스 마냥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가진 사람이 최고다.

 처음 와이프에게 끌렸던 것은 그녀의 얼굴처럼 ‘새하얀 순수함’이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면 할수록 그런 그녀의 순수함 역시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주관과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와이프는 일단 주관이 뚜렷하다. 주로 위생과 관련된 일에 엄격하고 (아직도 내가 화장실에 다녀올 때면 손에서 비누냄새가 나는지 필히 확인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부추긴다 한들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는 법이 없다. 설사 그 부추김이 나 일지라도.

 연애 때는 약간 답답하고 불만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는 그녀의 주관을 숭배하게 되었다. 스몰웨딩의 시작이 와이프였던 것처럼, 결혼 준비의 기본이자 고비라 말하는 ‘스드메’를 둘러보고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주관은 빛을 발했다. 요즘에 뭐가 대세인지, 누가 뭘 하는지, 이게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냥 이걸로 할게요!” “아니요 그건 굳이 필요 없어요!”
 
 당시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뚝심은 조조의 백만 대군 앞에서 홀로 장판교를 지켜내는 장비처럼 흔들림이 없었고, 이런저런 옵션들 사이에서 내려지는 심플하지만 날카로운 그녀의 선택들은 적진을 홀로 누비며 수많은 적의 목을 베어내는 조자룡의 창끝과도 같았다.

 웨딩 플래너의 존재도 애초에 생각조차 안했다. (이 땅의 모든 플래너 분들의 업을 존중합니다.) 허례허식을 거부하며 ‘스몰웨딩’ 이란 과감한 결정을 내린 신부에게 결혼식을 대신 준비해 주는 웨딩플래너가 웬 말인가?

 인스타와 네이버를 통해 대략적인 검색을 마쳤다는 그녀는 내비에 찍을 주소 하나를 불러주었다. ‘ㅇㅇㅇㅇ스튜디오’ 사전에 전화로 상담 약속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상담이 시작된지 5분 만에 스튜디오에 대한 결정을 끝냈다. 이미 인스타에 게시된 몇 장의 웨딩 사진을 통해 내린 결정을 최종 확인한 의미에 가까웠다. 아 물론 액자 추가, 이목구비 뽀샵 옵션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그녀의 유일한 기준은 ‘어차피 유행 지나면 촌스러워질 뽀샤시 효과나 거창한 배경보다는 신랑 신부 얼굴을 크고 또렷이 찍어주는 곳’이었다. 역시 그녀 다웠다.
 
 다음은 드레스다. 노총각이라 좋은 점은 딱 하나, 먼저 간 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신부의 ‘드레스 투어’에 따라나선 수많은 신랑들의 긴장과 공포를 익히 들어왔다. 스튜디오 선택과는 비교도 안될 고비를 앞두고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었다. 일단 신부가 피팅 후 커튼이 겆히는 순간, 확실하고도 재빠른 리액션, 나중에 결정 장애를 일으킬 신부를 위해 미리 사진을 찍어두는 준비성. 사전에 숙지한 체크리스트를 다시 한번 되뇌며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일단 그녀가 드레스를 갈아입는 사이, 더욱더 확실한 자료 준비를 위해 사진이 아닌 동영상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전장을 누비는 그녀의 용맹함 못지않게 나도 분발하고 싶었다. 커튼이 들썩거렸다. 드디어 첫 번째 커튼이 열리려고 했다. 동영상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장착했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목격한 것처럼! 이 땅의 모든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기적을 체험한 것처럼! 할 수 있다! 김한빛! 넌 자랑스러운 예랑님이다!  

 “짝짝짝짝짝!! 브라보오오오오오~~!! 와우~~!”  

 “어머! 신부님 진짜 예쁘세요오오오호. 진짜 올해 본 신부님들 중에서 단연 압도적이세요오오오호”

 직원분들 역시 예상보다 훨씬 더 과한 리액션과 직업적 사명감이 담긴 멘트를 보내왔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우리의 과도한 리액션과는 별개로 드레스에 대한 스스로의 품평을 이미 마친 표정에 가까웠다.

 ‘음 이건 깔끔하긴 한데 너무 심플하군. 좀 심심해’ ‘이건 여성스럽긴 한데 좀 촌스러워’ ‘이건 팔뚝이 좀 두꺼워 보이는 걸.’

 그렇게 서너 벌의 드레스에 대한 피팅과 볼레로 등을 이용한 이런저런 연출을 마친 그녀는 ‘이쯤이면 되겠다’라는 의사표현을 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것 같았다. 난 아직 열렬한 리액션을 보낼 체력이 남아 있는데. 아무튼 어차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신랑 예복 피팅’을 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이제 첫 집이 끝났을 뿐이야. 긴장을 놓으면 안돼. 못해도 앞으로 두세 곳은 더 둘러봐야겠지? 오늘은 대충 둘러보고 다음 주쯤에 시간 맞춰서 또 와서 픽스를 하게 될거야. 절대 지루하거나 지친 표정을 지어선 안돼! 아... 그나저나 메이크업을 받고 입어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다음주엔 메이크업도 받고 와야 하나? 흠. 가봉 스냅이란 것도 있다던데. 아 그건 또 얼마야?’

 “신부님 다음 주에 오시면 지금 촬영 나가 있는 드레스도 있고, 미리 말씀해 주시면 더 입어 보실 것들 준비를....”

 “저 그냥 오늘 결정할게요. 아까 그거랑 저거랑....
  아 그리고 저는 어차피 본식 드레스는 필요 없는데 가격 좀 빼주시면 안돼요?”

 “자기야 지....지이인짜 할 거야? 더.. 더 안 둘러봐도 되겠어? 진짜 괜찮..... 아?”

 “뭐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인데 뭘. 어차피 나 맘에 드는 건 딱 저거밖에 없었어”

 드레스 샵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코칭을 받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온 여자들, 엄마에 이모 심지어 할머님으로 보이는 식구들까지 대거 끌고 온 가족 무리, 쎄 보이는 인상의 웨딩 플래너를 앞세운 신랑 신부까지.

 그 날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연 빛이 났다. 강남에 도착한 지 2시간여 만에 홀로 스드메를 끝내버린 그녀는 진심 멋있었다. 그녀와 함께라면 정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만의 생각이 확고한 그녀만 꽉 붙들고 있으면, 거친 이 세상의 모든 풍파 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지켜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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