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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pr 28. 2019

띠커스 #6 -웨딩은 스몰이지만 사진만은 풀(Full)

촬영 후 먹는 양념통닭과 맥주의 꿀맛이란



 스몰웨딩이나 결혼 준비를 간소하게 치르는 커플들 사이에서 한때 ‘셀프 웨딩촬영’이 유행했다. 하지만 거창하게 스몰웨딩을 외친 커플 답지 않게 우린 웨딩촬영만큼은 정말 제대로, 전문가에게 ‘맡겨서’ 찍고 싶은 마음이 컸다.

 둘 다 연애시절부터 데이트하거나 여행지를 갈 때면 예쁘고 멋진 커플 사진을 남기길 좋아했다. 시간이 지난 후 같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때 이랬지 저랬지’ 라며 곱씹는 깨알 재미를 소중히 여겼다. 우리 둘 다 찍히는 것, 찍어주는 것 특별히 가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웨딩 사진까지 안 찍어 버리면,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릴 모바일 청첩장에 들어갈 게 아예 없어져 버린다. (자세히 또 쓸 테지만, 부모형제 포함 15명만 초대한 스몰웨딩임에도 소량의 종이 청첩장과 모바일 청첩장은 준비를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본의 아니게 꽁꽁 숨어서 하는 결혼식처럼 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 ‘셀프 웨딩촬영’은 배제했다. 셀프로 찍은 지인 커플들의 사진을 종종 보아 왔는데, 기억하는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좀 아쉬웠다. 셀프의 대부분이 야외 촬영인데 너무 ‘야외’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정작 사진의 주인공인 신랑신부 얼굴은 좀 지쳐 보였다. 예기치 못한 바람과 햇빛 속에 뽀샤시함을 유지하는 건 CF 속에서나 가능하다. 게다가 3월 2일로 날을 잡은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12월, 늦어야 1월이다. 한 겨울에 야외에서 셀프웨딩촬영이라?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제대로 갖춰진 실내 환경에서, 한껏 갖춰 입고, 둘만의 제대로 된 커플 사진을 꼭 남기고 싶었다. 어쩌면 결혼식을 포함한 결혼의 모든 과정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정성을 쏟고 결과물을 기다리며 설레었던 것이 바로 ‘웨딩촬영’이었다.    

 예비 신랑인 나는 ‘드레스 투어’ 못지않게 ‘웨딩촬영’ 당일 날 아침부터 긴장을 했다. 웨딩 촬영 역시 신부 위주로 진행되어야 하고, ‘신부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게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선임 신랑들의 코칭을 끊임없이 받아 왔던 터라 이미 마음을 단단히 다진 상태였다.

 오전 10시 샵 도착.
 나야 뭐 직업상(쇼호스트) 매일 같이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아 왔던지라, 처음엔 여유가 넘쳤다. 하지만 곧 자잘한 것들에 신경이 쓰였다.

 ‘촬영이 분명 오후까지 길어질 텐데, 기초를 너무 얇게 입히는 것 아닌가’

 ‘가르마나 컬이 자연스럽게 먹어서 공유 스타일처럼 돼야 하는데, 너무 정갈한 게 일본놈 머리처럼 됐네 참’

 ‘어중간하게 남은 끄트머리 염색 머리가 너무 노란가? 머리가 이미 많이 상해서 재염색할 수도 없고 참. 사진에 너무 노랗게 나오지 말아야 하는데. 중후한 이미지여야 하는데. 차라리 검은 머리 더 자라고 노란 머리를 잘라버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걸 그랬나? 그러려면 식이 3월이 아니라 5월, 6월쯤은 돼야 할 텐데. 신랑의 염색 머리 때문에 결혼식을 미룬다... 흠. 듣도 보도 못한 결혼 연기의 사유인데.’

 아차차. 웨딩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신부다. 정신 차리자.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다행히 와이프는 헤어나 메이크업 모두 무난하게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오후 12시 반 스튜디오 도착.
 주차를 한 후 지하로 내려가니 드레스 샵의 대표님과 이모님도 나와 계셨다. 신부님이 너무 예쁘다고 진작부터 소문이 나서 특별히 나오셨다고 한다. 입에 발린 말일 테지만 기분은 좋다. 이모님도 가장 베테랑으로 모셨다고 한다. 경력 증명서를 떼어 오라고 할 순 없겠지만, 든든하니 안심이 된다.

 실장님이 오늘 촬영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브리핑을 해주신다. 모든 스케줄은 오로지 ‘신부’ 위주로 돌아간다. 신부가 1번 드레스를 입으면 난 거기에 맞춰 a, b, c, d 옷을 갈아입으며 들락거려야 한다. 2번 드레스도 마찬가지. a, b, c, d 후루룩! 뚝딱! 신랑의 옷 갈아입는 속도가 늦어질수록 촬영은 길어지고, 신부는 기다리며 추위에 떨게 된다. 거슬리던 내 염색 머리 따윈 잊은 지 오래다. 옷을 벗을 때마다 헝클어지는 머리도 손으로 대충 슥슥 거리면 끝이다.

 내심 속으로 준비해 온 포즈나 재미난 표정들도 최대한 자제했다. 변수를 줄여야 했다. 나중에 사진 고를 때

 ‘아 신부는 잘 나왔는데 신랑 표정이 너무 나갔는데?’
 ‘둘의 표정이나 다 괜찮은데 신랑 포즈가 좀 유치하지 않나?’   
 
 촬영이 시작된 지 10분 만에 느낌이 왔다. 나만 잘하면 되고 나만 안 까불면 된다.

 처음에 최소 3-4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란 말에 ‘우린 프로니깐 후딱 2시간 만에 끝내자!’라고 큰소리쳤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지에 재킷까지 걸친 나도 이렇게 추운데, 와이프는 거의 어깨를 다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도 의연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추운 나머지 중간중간 믹스커피를 계속 타 먹는 나와 달리, 와이프는 화장실 가려면 드레스 다 벗고 다시 입고, 복잡하다며 물 한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어색하고 퍽하면 아재스러운 표정만 짓는 나와는 달리, 이런저런 눈빛 연기에 턱선 조절, 포즈 변화를 어쩜 그렇게 노련하게도 잘하는지, 실장님과 이모님만 없었어도 뽀뽀해주고 싶을 정도로 기특했다.

 순조롭게 진행된 웨딩촬영은 다행히 퇴근 시간 전에 마무리되었고 우린 늦지 않게 신혼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결혼 준비의 꽃이자, 우리 역시 가장 기대가 컸던 웨딩촬영을 그렇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날 만찬 메뉴는 페리카나 양념 통닭이었다. 수많은 양념 통닭과 맥주를 함께 마셔왔지만, 그날 우리가 함께 맛 본 양념과 맥주의 조화를 잊지 못한다.

 지금도 우리 부부는 유독 힘들고 고난한 날의 밤이면, 페리카나에 전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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