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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May 07. 2019

띠커스 #10 배드민턴을 잘 치면 부부관계가 원만하다?

가는 공이 좋아야 오는 공이 좋다

 
 와이프와 내가 함께 하는 취미 생활 중 하나는 배드민턴 치기이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어떤 계기로 배드민턴을 함께 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나 책 읽는 것처럼 주로 정적인 취미생활만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나의 아쉬움 있었을 테고, 맛깔진 데이트 음식과 다이어트 사이에서 갈등하던 와이프의 억제된 욕구 폭발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구기종목을 좋아했던 내게 현대 도시에서의 삶은 산책 못 나가는 강아지 마냥 해소될 수 없는 욕구에 끙끙던 일상의 연속이었다. 와이프 역시 잠시나마 다이어트란 마음의 족쇄를 풀고 데이트의 감흥에 심신을 맡겨 버면, 어김없이 밤마다 몰려오는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연게 시작했던 커플 배드민턴의 재미는 상당히 쏠쏠했었다.



 ‘팍’도 아니고 ‘탁’이나 ‘틱’은 더더욱 아닌, ‘퐁’과 ‘팡’ 사이 그 어딘가에 가까운 셔틀콕의 타격감은 경쾌하면서도 시원시원했다. 어느 정도 랠리가 이어지는 순간이면 ‘퐁’과 ‘팡’의 소리 역시 일정한 리듬을 타기 마련이다. 어느새 우린 까만 밤하늘을 가르며 분주하게 오고 가는 야광 셔틀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상태에 빠져버린다. 귓가에 들여오는 일정한 소리의 파장과 규칙적인 간격을 유지하며 움직이는 빨간 불빛. 기분 좋은 체면에 빠져들기 딱 좋은 상황이다. 우리는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 경쾌한 음악에 맞춰 약속된 움직임을 노련하게 주고받는 포크댄스 커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

 구기운동의 기본적인 룰이 경쟁에 기초한다면, 와이프와 함께 하는 배드민턴의 룰은 조금 다르다. 서로의 빈틈을 노려서 점수를 얻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의 랠리가 오고 간 횟수를 그날 그날 갱신해 나가는 방식이다.

 “자 몸 풀었으니깐 이제 집중해서 30번은 해야지!”
 “힘내자 오늘 40번 하고 가야 뿌듯할 거 같아!”
 “지난 번에 50번 했으니깐 오늘은 60번 한번 해보자!”

 와이프와 나의 운동 능력 차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룰이다. 덕분에 날카로운 스매싱과 허를 찌르는 서브보다는 ‘상대가 딱 치기 좋도록’ 쳐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스킬이 되었다. 내가 잘 쳐서 보내줘야 와이프 역시 안정적으로 쳐서 다시 나에게 보낼 수 있다. 서로서로 ‘가는 공’이 좋아야 당연히 ‘오는 공’도 좋아지는 것이고 좋은 공을 주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랠리 횟수 역시 40번, 50번을 훌쩍 넘어선다.

 연애시절부터 거의 3년째 와이프와 주고받는 배드민턴을 치다 보니, 이게 흡사 ‘부부관계’와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둘이 호흡을 잘 맞춰 집중해서 치다 보면, 랠리 횟수가 금세 늘어가는 클라이막스의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게 뭐라고 참,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맨땅에서 공 차던 시절보다 훨씬 더 스릴 있고 성취감도 크다. 근데 문제는 꼭 횟수가 잘 안 쌓일 때 찾아온다는 것이다. 분명 평소의 우리라면 30-40번은 거뜬히 쳐내야 하는데, 그날따라 유독 10번 남짓 넘어가면 랠리가 뚝뚝 끊길 때가 있다. 그러니 리듬을 탈래야 탈 수가 없고, 공을 주우러 허리 많이 숙이다 보니 몸도 더 고생스럽다. 몸이 힘드니 짜증이 안 날 리가 있나. 그럴 때면 어김없이 괜한 생각들이 파고든다.

 ‘나는 열심히 집중해서 잘 치고 있는데, 와이프는 이상하게 오늘따라 대충대충 하는 것 같네. 아 힘들어.’
 ‘내가 어려운 공을 허슬플레이로 살려서 잘 올려 주는데 와이프는 그런 내 수고도 모르고. 아 재미없어’



 

 14박 15일의 신혼여행 막바지, 비슷한 생각으로 반나절 정도 혼자 뚱해 있던 적이 있었다.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 과정을 분담하게 되었고, 신혼여행 일정 및 일체의 예약, 경비 관리는 내가 도맡아 하기로 했었다. 좋을 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신혼여행을 위해 맹활약(?) 한 내 스스로가 참 대견하고 하나하나 다 좋아해 주는 와이프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신혼여행 스페인으로 정하길 잘한 것 같아! 그치?”
 “내가 이 호텔 좋다고 했지? 히히히 블로그로 보는데 촉이 딱 오더라고!”

 근데 꼭 스케쥴이 어긋나거나 영어가 안 통해서 답답한 상황, 방에서 늑장 부리다 버스 시간이라도 놓칠 때면 꼭 괜한 생각들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아니 내가 구글지도 찾을 동안, 와이프가 번역기 좀 돌려주면.... 얼마나 좋아?’
 ‘내가 짐 들고 길 찾고 다 했는데, 와이프가 식당이라도 알아봐 주면 훨씬 더 편할 텐데’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니 귀국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나의 뚱함이 터져 버렸다. 미세먼지 하나 없고 햇살이 너무도 따사로운 바르셀로나 해변가 식당에서. 하필 또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와 문어 요리를 앞에 두고. 격렬한 설전이 오고 갔다. 화 보다는 삐짐에 가까웠던 나의 토로, 와이프의 항변, 나의 억지, 늦었지만 그나마 재빨랐던 속죄와 죄사함 끝에 내린 결론은,

 ‘나만큼이나 와이프도 준비하고 고생하며 애쓰고 있었구나’  

 ‘나만 죽어라 고생한다고 착각했었네’ 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폭풍우가 지나가고 어느새 순한 양이 되어 바르셀로나 공항 한켠에 앉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얌전히 기다리던 나는 한창 배드민턴을 치던 연애시절 우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힘든 코스의 공을 잘 살려내기 때문에 우리의 ‘커플 배드민턴’이 재밌게 유지되는 거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철부지 총각 김한빛의 모습.

 어느새 차가웠던 밤공기 역시 선선해진 4월의 마지막 날 밤. 결혼 후 처음으로 와이프와 함께 배드민턴 채를 꺼내 들었다. 추운 날씨 땜에 한 몇달 쉰 탓인지, 결혼 후에 살이 오른 덕인지 랠리 횟수가 10-20번을 못 넘고 있었다. 문득 신혼여행 때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혼자만 신혼여행 준비 다하고 나만 희생하고 있다는 착각에 단단히 빠져 있던, 속 좁은 유부남 김한빛의 뚱한 모습.

 신혼생활도 배드민턴도, 잘 안 풀릴 때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도 나만큼이나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이 글을 다 쓰고 와이프에게 보여주면 참 기특한 남편이라고 잔뜩 칭찬해 줄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배드민턴이나 한판 시원하게 치러 가자고 할 것 같다. 우리의 기록이 오십 몇 번쯤이었나? 오늘은 60번을 꼭 넘겨 버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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