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아들, 밑으로 두 살 배기 쌍둥이 아들 둘까지, 도합 세 아들의 아빠이자 외벌이 가장인 친한 동생과 안부 전화를 나눴다. 일상적 질문에 나는 딱히 별 다른 재미는 없다고 답했다. 뜬금없이 돌아오는 말은 ‘철인 3종 경기에 나가 봐라’. 안 그래도 자기는 이번 주말에 통영에서 열리는 철인 3종 경기 나가기로 했는데 선수 등록은 진작에 마쳤고 차에 자전거 실어서 아침 일찍 출발만 하면 된다고.
‘열심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10년 정도 해오던 헬스를 요즘 심각하게 그만둘 생각까지 할 정도로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재미를 잃어버린 난 다시 한번 물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나? 안 귀찮나?”
“행님은 주말에 2시간,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일주일 내내 와이프를 극진히 섬겨야 하는 내 마음을 절대 모를끼야. 와이프가 성질 머리를 슬슬 긁어도 ‘싸우면 주말에 자전거 못 탄다’, 피곤하게 일하고 와서 밤에 애기들 똥 기저귀 갈면서도 ‘이걸 갈아야 주말에 자전거 타러 갈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오로지! 주말 그 2시간의 자전거를 위해 사는 가장의 마음을 행님은 모를끼다! 껄껄껄”
세 아들을 둔 가장답게 평일엔 직장, 주말엔 육아에 지친 와이프가 다섯 살 큰 애를 데리고 친정으로 잠시 피신 간 사이 독박 육아로 쌍둥이를 키우던 놈이었다. 지난 여름엔 주말 내내 애 보느라 집 밖에 나간 적이 없어서 폭염이 뭔지도 모르겠다던 녀석이었다. 고향 친구 무리 중에서 가장 애잔한 삶을 살고 있던 동생 놈이 요즘 가장 의욕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
직장에선 거래처 영업 담당의 은근한 갑질, 집에선 와이프 잔소리와 애기들의 칭얼거림 받아 내느라 삶 자체가 철인 3종 경기인 녀석이 진짜 ‘철인 3종 경기’에 나간다니. 저러다가 뼈 삭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부러웠다. 동생 놈의 자전거나 스윔수트를 본 적도 없으니 고가의 장비 셋팅이 탐났던 것도 아니고 ‘세 아들의 아빠’ 라는 가장의 무게가 욕심났던 건 더 더욱 아니었지만 경기에 참가를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설 생각에 설레 하고 있을 그 녀석이 진심 부러워졌다.
요즘엔 그렇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와이프가 걱정하고 질투할까 봐, 직장 상사가 일 안하고 딴 짓 한다고 눈치 줄 까봐, 그 둘 빼고는 여기저기 자신의 재미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그들. 그 마음을 나도 예전에 잠시나마 느껴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더 부럽기만 하다.
“형은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소!”
서른이 넘어 어렵사리 들어 간 직장을 1년 만에 그만두기로 한 딱 그 시점, 전 직장 동기들과 만난 술자리에서 듣던 단골 대사였다. 월급이라는 마약에 취해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내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자기연민이었는지, 그나마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란 방패막이를 내려 놓은 채 홀로 세상 속에 내버려질 퇴사자를 위한 위로였는지. 당시엔 그 말을 건네는 그들도, 답하는 나 역시 메마른 웃음만 지어 보이곤 했었다.
동기들 사이에 퍼져 있던 퇴사를 앞 둔 나의 이미지, ‘자신의 꿈을 쫓아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한 용기 있는 청년’ 은 누가 만들어 낸지 모를 허상에 불과했다. 퇴사 할 당시 나에게도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있었을 테지만, 솔직한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의외로 심플했다. 꼬장꼬장한 팀장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였다. ‘꿈을 위한 삶, 아프니깐 청춘이다,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삶’ 같은 좀 더 근사한 퇴사의 명분들은 사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생겨났다.
퇴사 전의 소진했어야 될 회사 복지포인트의 사용처만 봐도 명백했다.
‘ㅇㅇㅇ 어학원 토익 900 실전 과정’
아니 좀 더 드넓은 세상을 꿈꿨던 청춘이라면 하다 못해 아웃도어 브랜드에 가서 바람막이 점퍼라도 샀어야 하지 않았을까? 퇴사를 결심할 당시 내 본심은 명백했다. 그냥 지금 이 팀장과 이 사업부, 이 회사 자체를 떠나고 싶은 도피성 퇴사였던 것이다. 도피를 결심한 범죄자들이 밀항할 배편과 위조여권부터 알아보는 것처럼 나 역시 다른 회사 공채에 들이밀 수 있는 영어점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계획한 영어 점수를 만들어 내진 못했지만, 남은 복지 포인트를 토익 학원 등록에 썼던 건 참 잘한 결정이었다. 토익 수업을 듣자마자 진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깐. 5분 정도 늦게 들어간 수업에서는 일타 강사의 짜증 섞인 훈계가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에 나에 대한 악플이나 불만이 넘쳐나는데 짜증난다. 오늘 조교시켜서 다 강퇴 시켜 버렸다. 악플 달 시간 공부나 해라. 그러니깐 너희들이 취업도 못하고 루져 소리 듣는 거다. 취업 한 애들은 악플 달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웠다.’
10분 정도 듣고 있다가 못 참고 나와 버렸다.
‘야 김한빛. 지금 뭔가 이상하지 않냐? 아니 팀장 잔소리 듣기 싫어서 준다는 월급도 마다하고나온 놈이 뭐가 아쉬워서 비싼 네 돈 내고 토익 강사 잔소리나 듣고 있냐?’
뭐에 홀렸는지 그 날부터 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에만 몰두했다. 워킹 홀리데이의 막차를 타보려고 보름 정도 서점을 찾아가 관련 서적을 다 뒤졌고,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집안의 반대로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난 쫄보라 홀로 하는 여행이 주는 외로움이 아직 두렵다.)
쇼핑몰 창업을 위해 동대문 밤 시장을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동업 하기로 한 친구는 옷장사보다는 음식 장사를 원했다.) 결국 3순위였던 ‘말하는 직업’을 위한 아카데미를 찾아 갔고, 이미 그곳엔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서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해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과히 폭발적이었다. 누구 하나 월급 때문에, 주변 사람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붙들려 나온 게 아니니 바람 지나가는 소리에도 웃음이 흘러 나왔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결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던 시간이었고, 그 시절 누군가 내게 ‘요즘 재미있냐?’ 라고 묻는다면 ‘재미있어 죽을 것 같다’ 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던 때였다.
퇴사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삶이 한창 재미로 넘쳐났던 그때 까지도 전 직장 동기들은 고맙게도 날 잊지 않고 모임에 불러내 주었다.
“형은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소!”
“부러워만 하지 말고, 너도 하면 돼. 내가 뭐 돈이 있냐 대단한 재능이 있냐. 너도 결정만 하면 돼. 별 거 아냐.”
“………….”
동기들 입장에선 내가 참 얄미울 수도 있었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세상 편한 대답이었지만, 그땐 정말 진심이었다. 우연히 퇴사를 결정했고, 좋아하는 걸 하기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곧이어 하루하루가 미친 듯이 즐거워졌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는 서울대생처럼 당시 내겐 행복이란 게 참 간단하게만 여겨졌다.
“형 말이 맞네요. 근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참 학교 다닐 때 뭐했나 모르겠네요. 여태 지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인생은 새옹지마의 연속이라더니,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는 6년 전 동기 녀석의 깊은 한숨을 이젠 나도 깊이 공감할 수 있다. 글쓰기, 그림, 노래, 게임, 운동, 유투브, TV, 영화, 책 …. 어떻게 된 게 뭐 하나 재미난 게 없다.
그 시절로 잠깐이나 다녀올 수 있다면 ‘맞아. 좋아하고 재미있는 걸 찾는 거. 그게 참 쉽지 않아. 그치?’ 라고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다. ‘형도 요즘 재미 없어 미칠 것 같다’라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나도 이것저것 별의 별 거 다 시도는 해봤거든. 나이가 들어서 게을러진 건지 재미는커녕 만사 다 귀찮아 죽겠다. 괜히 자괴감만 들어.’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같이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심정이다.
며칠 전 회사에서 마주친 후배가 요즘 유투브에 미쳐 있단다. ‘재미있냐?’ 란 내 물음에.
“완전 재밌어요. 유투브도 재미있지만, 편집해서 영상 만드는 게 진짜! 너무 신나요.”
“근데 좋아하는 티 너무 많이 내면 와이프가 뭐라고 할 까봐 와이프 있을 땐 가끔 귀찮은 척, 힘든 척도 해요.”
얼마나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면, 그래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왠 종일 붙들고 있으면 같이 사는 와이프가 싫어할 정도일까. 그리고 그걸 남몰래 숨겨야 하는 후배의 마음은 뭔데 이렇게 애틋하고 절절한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아니고 참.
나도 그때 그 시절, 그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남들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못 한 채, 여기 저기 뻐기고 다닌 죗값을 지금에서야 치르고 있는 걸까?
요즘 내가 제일 부러워 사람은 결혼을 앞 둔 사람도, 집 값이 몇 억 오른 사람도, 외제차를 새로 뽑은 사람도 아니다.
단지 좋아하는 일을 원 없이 재미있게 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인생 노잼 지옥’ 에 빠져 허우적대는 날 구해줄 메시아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