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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루 Apr 24. 2018

러시아에서 유심찾기

아, 피곤하다.

오늘은 러시아 유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어느 나라에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통신 수단이나 연락방법이 달라지겠지. 하지만 요즈음은 대부분의 국가에 방문할 경우 유심 한개를 구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지. 어떤 나라는 에그가 필요하지만 그거야말로 특별한 경우이고. 러시아를 방문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유심을 구입하면 모든 것이 해결돼. 그런데 이게 나를 이토록 피곤하게 할 줄 전혀 몰랐지. 아이슬란드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유심찾기 삼만리가 시작돼.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유심을 구입했어. 그리 늦은 시각도 아니었거든. 저녁 5시-6시 사이였던 것 같아. 출국장에서 나오자마자 발견한 유심 판매소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한 개를 구입했지. 구입할때마다 언제나 확인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용량별 가격인지, 일자별 가격인지 하는 거야. 비용이 달라지거든. 나는 적어도 2주이상을 여행할 생각이므로 일자별보다는 용량별 요금제가 훨씬 유리하지. 그런데 문제는 직원이 이 부분을 헛갈렸던 거야. 400루블을 주고 구입한 유심은 단 10일짜리였던 거지. 블라디보스톡과 알혼섬에 이르기까지 신나게 여행을 해온 나는 어느 날 새벽,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돼. 

내가 처음에 구입했던 mtc 유심


고생의 시작


함께 여행을 시작한 친구들 모두의 인터넷이 일제히 끊겼어.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기도 하네. 왜냐면 다들 끊어진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공유를 하지 않았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거든. 특히 나는 휴대폰을 시계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더 그랬나봐. 그러다 정말 우연히 유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유심 원정대를 결성했지. 일단, 중요한 것은 공항이나 대도시 말고는 유심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어. 러시아 여행 준비 전 많은 사람들이 역에서만 판매한다고 얘기했지 어디서 어떻게 구입해야할지는 전혀 얘기하지 않아. 실제로 부딪혀 보면 될 일이지만 인터넷이 전혀 안되어 다른 칸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어려웠기 때문에 당장 해결해야 했지. 우리는 열차 시간표를 보고 정차 시간이 15분 이상인 역을 헤아리기 시작했어. 역사는 보통 기차가 정차하는 바로 옆에 있고 근처에 매점이나 화장실 대기소가 모두 붙어 있기 때문이지. 


대도시인 노브시르브스키 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6시즈음이었어. 역사에서 유심 판매점을 발견했지만 영업하지 않더라. 어쩔수 없이 발길을 돌렸어. 아침이 밝았고 오전 10시즈음 되는 시간부터 우리는 기차가 설 시간에 맞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역사에 내려서서 탐색을 시작했어. 그런데, 이 날 방문한 역마다 유심을 판매하는 곳이 없더라고. 있다 하더라도 충전식으로 넣어주는 곳이 대부분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우리는 다시 기차로 돌아와야 했지.


개성이 가득한 역사의 모습

참 재미있는 것은, 역마다 느낌이 참 다르더라. 유심을 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쫒기며 내렸던 곳이지만 어쩌면 이렇게 특징이 다를까. 러시아가 워낙 땅이 넓으니까 지역마다 사람들이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 어떤 곳은 딱딱한 건물 양식에, 어떤 곳은 프랑스 베르사이유풍에, 또 어떤 곳은 그리스 신전 같은 느낌으로 보는 재미가 있더라. 나는 오늘 유심을 구입할 수 있을까 없을까 오금을 저리며 이러저리 땀 나도록 뛰어다녔던 거지만. 네가 만약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탑승한다면 오래 정차하는 역에 내려 다른 점이 무엇인지 감상하는 것을 추천해. 물론 시간은 모스크바 기준시니까 절대 열차를 놓쳐서는 안돼지. 걱정된다면 나처럼 러시아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역에 내려보는 것도 좋을거야. 분명 멋진 경험이 될거라고! 




나를 제외한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 도착한 한 역은 꽤 컸어. 그런데 역사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 왜냐하면 육교를 건너 돌아가야 했거든.  철로를 피해 가려다 보니 15분 남짓 정차 시간이 꽤 짧았어. 그 추운 곳을 열차 내에서 입는 얇은 옷을 입고-물론 패딩을 걸쳤지만-마구 뛰어 다녔어. 일단 슈퍼에서는 유심을 팔지 않아. 너를 위해 여기에 기록해 놓을게. 유심은 역 본관 안에서나 찾을 수 있을거야. 어떤 역은 1층에, 어떤 역은 2층에 말이야. 시간이 촉박해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역사 안에서 유심을 팔고 있었지. 여기서 왜 나는 못 샀냐고? 바보같은 나는 여권을 가져가지 않았던 거야!! 거기다 여기 유심은 공항보다 저렴한 300루블이었는데 말이지. 시간은 5분 남짓 남아있었고 우리의 급한 모습을 이해한 러시아 아가씨는 금색 포니테일 머리를 휘날리며 매우 서둘러 주었어. 유심을 손에 들고 우리 열차를 향해 달렸지! 열차가 바로 앞에 서 있지도 않았어. 3번째 정도에 걸쳐져 있었다고.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 앞만 보며 달렸고, 다행히 뀨가 우리 열차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 숨을 헐떡이며 우리 칸 차장님과 눈인사를 하고 열차에 뛰어 오르자 마자 곧 움직이기 시작하더라. 그런데, 아직 나는 유심을 구입하지 못했잖아?  오늘의 숙제를 끝내지 못한 셈이지.. 




예카테리나역, 왜 나에게?

밤 12시가 됐어. 꼭 유심을 구입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이틀 후면 모스크바니까, 거기서 구입하면 더 수월할 것 같았어. 특별히 인터넷이 꼭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고. 결국 유심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어. 러시아 여행을 왔다고 나를 걱정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해야 했거든.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유심이고 뭐고 별로 큰 의미는 없었을 거야. 다른 친구는 이미 유심을 구입했어서 꽤나 안심한 표정이었어. 부럽더라. 왜 나는 여권을 챙기지 않았을까!!! 밤이 깊어서야 도착한 예카테리나역은 나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여기서 구입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대로 모스크바행을 결정할 생각이었지. 뀨는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나를 위해 함께 어둡고 추운 승강장 위를 함께 달려 주었어. 역사를 통해 본관 건물로 향하고 있었지. 과연 나는 오늘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까?



휘황찬란한 역사 내부

참 예쁘더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기차이건, 반대방향이건 에카테리나역은 내려서 역사를 둘러볼 가치가 있어. 아래 사진을 봐. 어떤 궁전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잖아. 모든 것이 컸고, 잘 정돈돼 있었지. 출발점인 블라디보스톡이나 모스크바에 도착이라도 한 것 같았어. 1층에 있는 직원에게 바디랭귀지로 유심판매처를 급히 물었고 그들은 2층을 가리켰어. 우리는 서로를 보고 위안의 웃음을 웃으며 뛰어올라갔지. 그랬더니 정 중앙에 '나는 인포메이션이오'하는 장소가 있더라. 일단 그녀는 영어를 잘 했기 때문에 유심 판매소가 오른쪽에 있다는 것을 빠르게 알려줄 수 있었어. 중간 유리문을 열자, 드디어 유심판매소가 보이더라!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어. 화려한 내외부 경관과 큼직큼직한 공간배치는 다시 생각해봐도 맘에 들더라.



말이 길어

금발머리 아저씨는 조금 덩치가 있었어. 그는 단지 러시아어로 우리에게 열심히 설명했지. 러시아 유심 종류가 많이 있는데, 내가 처음 사용했던 mtc(빨간색)를 사용하고 싶다고 얘기하니 자꾸 beline(꿀벌모양)을 권하더라.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자꾸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어. 역 정차 시간이 거의 50분으로 여유가 있어 다행이지 나는 점점 오금이 저리더라고. 그는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유심과 러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것이 별도로 있다고 설명하는 중이었어. 공항에서는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그런건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저 저렴한 유심 한개만 구입하고 싶었어. 어차피 이젠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나갔어. 번역기를 사용해 그가 입력하고, 우리가 입력하는 것에 반복됐지. 심지어 내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았어. 나는 기분이 상했지. 나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 
아까 다른 친구들이 200루블을 주고 구입한 MTC유심을 구입하고 싶었는데, 그는 500루블짜리 Beline을 내게 판매했어. 판매인과 더 말을 섞고 싶지 않더라. 유심 겉면에 300루블이라고 적힌 건 뭔데. 어쨌거나 내가 원하는 내용은 전혀 관심도 없이 자기 얘기만 하는 태도에 질려버렸다고. 내 얼굴은 완전히 굳어 버렸어. 

결론적으로 나는 새 유심을 구입했지만 모스크바에 도착할 때까지 인터넷을 거의 사용하지 못해.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도 있었지만 아예 인터넷이 안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을 버려놓았거든. 구입하고 몇 시간 되는 것 같더니 이후에는 단절이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홈페이지에 들어가 등록을 하는 별도 과정이 있더라.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니까.

하얀 호흡을 흩뿌리며 누군가를 위해 춥고 어두운 거리를 달려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이 날 뀨는 나를 위해 편안하고 따뜻한 열차 내 휴식시간을 포기했어. 그게 정말 고맙더라. 여행을 하다보면 시간을 들여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무리 짓는 경험을 하게 돼. 단순한 정보에서 복잡한 일에 이르기까지 그 순간 함께 해 주었다는 것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감사함으로 남지. 러시아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친절과 더불어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거야. 내가 그날 밤 선물했던 피자 한 조각과 콜라 한 병은 고마움을 표현하기엔 정말 약소한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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