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죽녹원
어릴 적에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토산물을 외우는 것이 있었는데 전라남도 담양은 죽공예품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배운 이외에 딱히 아는 바가 없는 이곳을 찾은 것은 죽녹원 때문이었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지방자치화 시대라 각 지자체마다 지역 특유의 장점을 살린 것들을 만들어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려고 하니, 멀리 외국에서 고국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더 반가운 것도 없다.
어릴 적 고향집 개울 건너편에 낮지만 가파른 앞산이 있었는데 그 중턱에 대나무 밭이 있었다. 늦가을이 돼도 대나무 잎은 그렇게 말려들지 않아 초가집 방문을 열면 늘 푸르름이 내 눈에 들어와 고마웠고, 추운 겨울밤에는 대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는 눈 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와서 좋았고, 봄이면 대바구니를 들고 어머니따라 죽순 따러 대밭에 들어가 소나가가 와도 비를 피할 수 있는 그 넉넉함이 좋았던지 어려서부터 대나무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나무 이전에 자연의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면에서 대나무를 사러 오는데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윗마을 아랫마을 품앗이를 해서 대나무가 한참 물오른 한 여름에 낫을 메고 개울을 건너는 장정들의 모습을 개울가에서 동내 또래들과 멱을 메고 있던 나에게는 전쟁터에 나타난 적들과도 같았다. 대나무를 팔아 가난한 농촌에서 수입원으로 벌목을 해야 한다는 그런 기초적인 경제 개념이 없던 나이라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그 대나무 숲을 파헤치고 세월을 꿋꿋이 이겨온 대나무가 하나둘 그 베임을 받는 소리가 햇살을 가르고 들려오면 힘없는 나로서는 그저 그 정도로 해서 그쳐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손을 쓸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담양군(시?) 내를 가로지르니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준대로 낮은 언덕 위로 커다란 죽녹원 입구가 눈에 다가왔다. 따스한 봄날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온이 올라 제법 더운 날씨였지만, 마침 고등학생들이 소풍을 왔는지 죽녹원 내의 정자마루에서 그곳 안내원에게서 대나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고 귀동냥으로 열심히 들었다.
이 죽녹원에는 모두 7종류의 대나무가 있고 왕대나무가 제일 많이 있는데 그 이유는 생명력이 제일 강해서라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1,500여 종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총 147종류가 서식하고, 종이 제일 많은 나라는 일본으로 65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여느 나무와 달리 대나무의 수명은 15~16년 사이. 햇볕이 잘 들고, 영양분이 풍부한 토양에, 경사가 15 정도 되는 데서 자라는 것이 제일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물,바위,소나무,대나무,달) 중에 나오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대나무가 실제로 지면에 나오기 전까지는 약 5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그다음부터는 폭풍 성장을 거듭해 30센티정도 자란다고 하니 급하게 승부를 봐야 하고 당장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 우리의 습성에 비해면 대나무는 곧기도 곧지만 참 인내를 아는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죽녹원의 여러 갈래로 나와 있는 산책로 사이로 가느다란 봄바람이 소솔 바람이 되어 불어온다. 적당한 경사가 있는 소나무 밭길을 걸어 무작정 올라가다 보니 이내 인적이 드물다. 몸을 기대 벤치가 없어 그냥 덥석 대나무 밭 길가에 앉아 있으니 그 옛날 내 고향 대나무 밭에 들어와 어머니랑 대바구니에 죽순을 따던 생각에 잠시 고향의 그 옛 추억에 젖어든다.
다시 죽녹원을 나오는 그 앞에 몇 군데 대나무 관련 상품을 파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나무를 이용한 공예품과 상품이 있음에 한 종류의 나무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창출해 내는 인간의 머리가 비상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내가 사고자 했던 것은 대나무 통발이 제법 아름들이 잡을 수 있는 큰 대나무였지만, 그 크기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없자, 대나무 상점 주인은 대나무 박물관이 죽녹원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그곳에 가면 더 다양한 종류를 접할 수 있다는 조언에 차로 다시 15분 정도 대나무 박물관을 들리니 곧 문을 닫을 시간이라 사람들이 전혀 없다. 2층으로 된 박물관을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구경하면서 올라가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나무를 삶의 수단으로 삼는 나라가 많다는 것과 곧지만 가공하기 쉬운 이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나무와 달리 결이 뛰어나고 표면이 미끄러워서 인지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