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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18. 2018

27년 만에 찾은 고향의 봄 7/9

천리포 수목원

 4월 26일
남도 여행을 슬슬 마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호남 고속도로에서 들린 곳은 충청남도 태안반도에 위치한 천리포 수목원

서해 바람이 차서인지 남도지방에서는 벌써 지고 말았을 벚꽃이 이제야 절정을 이루며 수목원 가는 길목에 흐느려지게 피어 있다. 수목원 입구에서 표를 사고 기다리려고 하니, 좀 더 상세히 수목원에 대해 알고 싶은 욕심에 가이드 서비스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마침 이곳에는 그것을 해주는 봉사원이 있다고 해 그녀를 기다리기를 30여 분. 그 사이에 몇 명의 관광객이 표를 사자 그들에게 다가가 혹시 수목원 안내원의 유료 서비스가 필요하면 내가 벌써 사례는 냈으니 같이 들으시라고 권유를 하니 바쁘다면서 다들 그냥 총총걸음으로 들어가 버린다. 

원내에서 수목 작업을 막 끝냈는지 흙이 약간 묻은 옷으로 가이드가 나를 반기며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나무 하나하나를 설명해 준다. 일단 이곳은 한국에서 식목 종이 제일 많은 곳으로 앞으로 다른 지자체에서 이보다 더 큰 곳을 만들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파란 눈을 가진 Carl Ferris Miller라는 펜실베니아 주 출신의 미군 장교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미군에서 독신으로 근무하던 중, 1979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해 50여 년 넘게 나무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전 재산을 들여 지워진 곳이 바로 이곳이라 한다. 생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을 자비로 수입해 올 정도로 이곳에다 집을 짓고 살았으며 2002년에 세상을 떠났어도 그는 이곳에서 수목장으로 그가 아끼던 나무 아래에 묻혀있다. 

귀화 시 한국명 민병갈이란 자신의 영어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는데 6-70년대 우리가 먹고살기에 바빴을 그 시절에 그는 자신에게서는 이국땅인 이곳에 소금으로 찌든 볼품없는 바닷가 땅들을 매입해서 하나 둘 개간을 해서 오늘날에 한국 최고의 수목원을 만들었다고 하니, 한편으로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그런 자연을 한국땅에 진작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지 못했음에 대한 미안함도 앞선다. 

한국에서 거의 모든 생을 지내는 동안 한국과 식물을 공부했으며 한국 토종 나무를 세계 원예협회에 등록시키는 등의 공로로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수목원 내에는 봄을 부르는 많은 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단풍, 목련, 호랑가시나무, 무궁화, 삼지닥나무, 동백.....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는 낭새섬이 수목원 옆 서해바다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아 그 광경을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기적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인간이 그 기적을 믿고 행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그의 흉상이 장식돼 수목원을 돌면서 마치 내 고향마을의 집 뜰안에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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