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인데도 눈이 함박눈처럼 내렸던 지난주에는 고희(古稀)를 넘긴 어르신으로부터 일전에 약속한 내 고향 하동의 화계 10리의 벚꽃 풍경이 담긴 흑백 사진의 액자를 증정받은 것에 대한 답례로 이메일 대신 감사의 편지를 적어 보내기로 했다.
화가이신 이 분이 지역에서 연례 여성 자선 행사를 할 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엽서로 프린트해서 초대장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나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꽃문양이 새겨진 편지지(紙) 라면 보내는 이의 정성이 담겨 있어 좋겠다 싶어 "진달래"와 "수묵 난"이 그려진 그림을 찾아서 새겨 넣었다.
점심시간에 우체국에 들르는 길에 생각난 게, 이왕이면 우표도 꽃 그림이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화사한 꽃 그림의 우표가 샘플로 벽면에 걸려 있어 우체국 직원에게 다짜고짜 물으니 다행히 남아 있어서 12장들이 한 세트를 샀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 미국 우표에 "우정(友情)"이란 한자가 들어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그 내용을 연방 우정국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1912년에 일본이 미국 워싱턴으로 보내진 3천여 그루의 벚꽃나무를 선물로 받은 답례로, 미국 정부가 1915년에 Dogwood(층층나무, 북미대륙이 원산지로 4 잎의 꽃이 오랫동안 펴 정원수로서 사랑받는 나무)를 홍색 40그루, 백색 20그루 이렇게 60그루를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백여 년이 지난 현재는 다 고사(枯死)하고 현재는 동경 원예고등학교 정원에 딱 한그루가 남아 있어 2015년 4월 10일이 백 주년이라 이를 기념하여 JFK의 딸인 케틀린 케네디 미국 대사가 이 기념식에 참가하였으며 이를 기념하여 미국과 일본에서 우정(郵政) 사상 처음으로 동시 발매가 됐다고 한다.
12장이 들어가 있는 우표 세트를 자세히 보면 왼쪽 상단의 2장은 미국 측이 링컨 기념관의 벚꽃과 미 국회의사당의 층층나무를 그렸고, 왼쪽 하단의 2장은 일본 화가가 일본 국회의사당 앞의 벚꽃과 헌정기념관 사탑의 층층나무가 각각 화사히 그려져 있다.
국가 간의 친선을 알리는 차원에서 희귀 동물도 기증하는 판에, 이런 자국(自國)에서만 자라는 나무를 타국에 기념식수로 보내는 것은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국 간의 우정이란 미명(美名) 아래 행해진 이 아름다운 일도 그 후 30여 년이 지나 2차 대전 당시, 일본은 미 태평양 사령부의 본부인 진주만을 공격하고, 미국은 인류 최초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엄청난 목숨을 앗아가는 비운을 품고 있다.
나라 간의 관계도 인간사(人間史)와 같이 때로는 더없이 친하게 지내다가도 때로는 총칼을 가슴에 겨룰 정도로 애증(愛憎)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동서양의 긴 인류사(世界史)를 통해서도 많이 보고 있지만, 그나마 이런 불운한 일을 어느 정도 덮어주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이런 기념식수를 보내고 심는 일은 나무가 오래 살기 때문에 더더욱 기억에 남으리라 본다.
몇 년 전 상영된 영화 "국제시장"에서 빅토리아 선으로 만 4천여 명의 피란민들을 거제도로 옮긴 라우 선장이 잠들어 있는 뉴저지주 뉴톤의 수도원 뒷 뜰에도 어느 뜻있는 한인 독지가에 의해 만 4천여 그루의 라일락, 무궁화 그리고 소나무가 심긴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우리 인간은 과오나 잘못을 너무나도 쉽게 망각하는 탓에 이런 자연의 기념물을 빌어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일이나, 이를 후대에도 그대로 알리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없다면, 그건 기념식수를 심는 행사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고, 그런 나무는 세월이 흐르면 그냥 썩어 없어질 나무임에 틀림없다.